좋은 일들은 한 번에 오는가, 2016년, 11~12월
2015년 6월 쯤에야 합류했던 회사에,
2016년 6월 1년만에 조그만 전시공간을 갖춘 사무실로 확장 이전, 동시에 업계 경력자를 스카우트해왔고,
그와는 별개로 2015년 7억 남짓이었던 매출을 2016년 15억을 달성하였다.
2015년의 절반이 없었던 것을 감안하더라도 어쨌든 매출은 성장한 것이다.
사장님의 전략처럼 어쨌든 기본적으로 매출 규모가 어느정도 나와야 부족한 자본을 은행 또는 신용보증기금 등을 통해 확보할 수 있고, 그러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다시 성장을 하면서 이익률을 높일 수 있다는 선순환구조 (희망회로 일수도 있지만)에 한 걸음 가까워진 것 같았다.
이와 별개로 2016년은 내가 처음으로 유럽에 가보면서 그야말로 '견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경험, 그를 토대로 알게된 몇 업체들의 샘플들이 물밀듯이 밀려드는 탓에 엘리베이터도 없는 2층에 위치한 극악의 사무실에 한 번 오면 1톤 가까이 (타일은 1장 1장이 무겁기 때문에, 디자인 보자고 20~30장만 받아도 금방 1톤이 될 위험이 있다. 특히 최근 타일들은 크기가 커지고 있기 때문에 한 장 한 장 무게는 장난이 아니다.)
우리가 커지고 있으니 공급자들 쪽에서는 알아서(?) 연락이 오기도 했다. 신흥 성장국들에서는 건축자재 관련한 사업들이 권력과 결탁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건축 붐 = 권력층의 이익 극대화) 특히 왕이 남아있는 국가들에서는 모두 국영 (왕족)의 비즈니스에 속했다. (태국, 아랍에미레이트 등이 그 예)
아무튼 어릴 적 아시안컵에서나 보던 아랍에미레이트에 단일 플랜트 규모로는 세계 최대의 공장이 있었고
(재미있게 태국은 여러 국가의 플랜트를 합쳐서는 압도적인 세계 1위 규모인데, 태국 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들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의 플랜트들을 인수하여 하나의 거대한 그룹을 만들어냈다.).
건너 건너 우리를 소개받게 된 아랍에미레이트의 공장의 골칫덩이는 생산설비 규모가 큰 만큼 수도 없이 쏟아져나오는 재고들이었다. 그렇기에 각 나라별로 단독 에이전트십을 주던 기존 방침에서 벗어나 수입을 많이 하는 업체라면 누구든 접촉하여 물건을 거의 '덤핑'하고 있었다.
우리가 처음 그 공장과 거래를 시작할 무렵, 우리는 흔히 말하는 논현동 바닥 (건축자재 업체의 대다수가 논현동에 위치해 있으며 역시나 수많은 인테리어, 건설, 건축사 등이 강남 쪽에 위치하여 국내의 대다수 프로젝트는 강남 안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 중에서도 타일은 논현동이 그 중심지이다.)에서 가장 친구가 없었던 우리는 남의 밥그릇에 갑자기 침투한 악덕 기업으로 소문이 나기도 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릴 적 나는 연말이 주는 특유의 분위기에 휩쓸리는 타입이다. 웬지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회포를 풀어야 할 것 같고, 항상 좋아하는 피자를 넉넉하게 시켜 술을 마시면서 이번 년도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 중의 하나였다. 특히 2016년이 재밌었던 것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목전에 두고 있었던 때로 (사실상 탄핵 소추안 가결이 줬던 충격과 카타르시스가 이정미 권한 대행의 '파면한다' 보다 더 크게 다가왔던 것은 나 뿐일까) 고등학교, 대학교 때 정치니 철학이니 인문학이니 입씨름 하던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날 구실이 이보다도 더 좋을 수가 없었다.
매주 점점 더 청와대와 가까워 지던 폴리스라인. 우리는 멈춰야 하는 그 공간 근처에서 항상 기념 음식을 먹곤 했다. 그 날 봉피양 평양냉면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던 순간에도 나는 우리 이제 정말 어른이구나 했는데, 이제 되돌아보면 그때는 정말 어렸다.
2016년 12월은 내 개인적으로도 매우 큰 행운이 찾아왔던 때 이기도 하다. 전역 이후에 간간이 불러주는 곳에서 디제이를 하곤 했었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 꼴로 있는 플레이는 내가 디제이로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데에는 큰 무리가 있었다. 그러던 중 한남동 00 뮤지엄 내에 있는 라운지에 처음에는 일단 1인 디제이로서 합류를 하였다.
원래 2017년 2월 경 정식 오픈 예정이었지만, 연말 특수를 놓칠 수 없다보니 급하게 디제이를 섭외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급하게 음악만 틀러 갔던 것에서, 평일에는 디제이를 부를 수는 없으니 틀어놓을 음악들을 믹스해서 업데이트 해달라는 요청으로 이어졌고, 오픈 준비를 하면서 테스트 해볼 수 있는 이벤트들을 열기 위해 필요한 다른 디제이들을 섭외해달라는 요청으로, 결국에는 당분간 임시 디렉터 식으로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디제이 섭외 및 음악 방향 설정을 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디제이를 떠올릴 때 꽉 차 있는 무대에서 신나서 뛰는 공연형 디제이를 생각하기 쉽지만, 내가 되고 싶어했던 디제이는 사람이 적으면 적은대로, 또는 서서히 사람을 채울 수 있는 자연스러운 공간, 또한 브랜드나 업장에서 원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내주는 역할로써의 디제이였다.
그렇기에 이때 맡았던 업무는 어쩌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업무의 디제이였고, 일반 클럽들과는 다르게 새하얀 테라조를 온 벽과 바닥에 사용한, 말 그대로 유니크한 이런 공간을 내가 디렉팅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꿈같은 이야기였다.
이렇듯 좋은 일들은 지나고보니 한 번에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