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탈진, 집에선 2차 근무 시작

숙제, 밥, 감정 노동까지 퇴근 없는 워킹맘

by 나무가치

퇴근후 저녁 식사를 차리고 운동을 나가지 않는 날이거나, 혹은 운동을 나갔다 돌아오면, 나의 두 번째 근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물리적인 노동이 아니라, 말과 표정, 눈빛 하나하나에 신경 써야 하는 감정 노동이다.


중학교 1학년이 된 큰아이는 어느새 말투가 살짝 비스듬해졌다. 예전에는 “엄마, 나 이거 해도 돼?”였던 말이 “아, 그냥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로 바뀐다. 아이의 반응에 최대한 이성적으로는 이해하려고 노력해 본다. 사춘기는 감정이 요동치고,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시기라고 하니깐. 하지만 그걸 이해하는 것과 내 기분이 상하지 않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걸 종종 느끼곤 한다. "엄마는 너한테 그 말 한마디 들으려고 하루 종일 일한 거 아니야"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지 않고 꾹 참는 것도 일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는 숙제를 시작할 때마다 “하기 싫어”로 문을 연다. 그 말은 사실상 ‘엄마, 나랑 한번 해볼래’는 시그널처럼 들린다. 나는 피곤한 목소리로, 하지만 최대한 다정하게말한다. “일단 하고, 끝나면 쉬자.”로 회유도 해보고 "지금 당장 안 하면 용돈 줄일 거야!"라고 협박도 해보지만, 사실 그때뿐이다. 아이의 거절을 여러 번 듣다 보면 ‘내가 이걸 왜 매일 반복하고 있지?’ 싶다가도, 결국은 다시 아이 곁에 앉아 있다.


그게 엄마의 감정 노동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하루종일 안 보다가 아이 잠깐 보는 건데, 최대한 너그럽고 정중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아이의 징징과 거절을 매일 같이 마주하면 그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알게된다. 숙제의 너무 어려운가 싶어서 난이도도 낮춰보고, 아이에게 의사를 물어보기도 하지만, 결국 아이는 피곤하니 하기 싫다로 마무리 된다. 저녁밥을 짓고 나면 모든 게 끝날 줄 알았는데, 사실 그건 단지 ‘워밍업’이었다. 아이들의 숙제, 내일 준비물, 그날 하루 있었던 감정의 찌꺼기까지 받아내는 건 하루의 마지막 업무이자, 가장 고된 업무다.


남편이 설거지는 한다. 밥은 내가 했으니 설거지는 남편이 하는 걸로, 이제는 자연스럽게 자리가 잡혔다. 예전엔 이런 사소한 집안일 하나 가지고도 싸움이 붙었는데, 이젠 말 안 해도 알아서 움직여주는 걸 보면 서로 많이 단련됐구나 싶다. 남편이 싱크대 앞에 서 있는 걸 보면 ‘그래, 애쓰네’ 싶다가도 “그냥 식세기나 돌리지…” 싶은 마음이 동시에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암묵적으로 서로의 일을 나누며 살아가는 게 지금 우리 방식의 평화다.


가끔은 필라테스를 다녀오고, 러닝을 하며 땀을 빼고 밤공기를 마시며 조용히 숨을 고를 때도 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다시 '나'로 돌아온다. 그냥 엄마도 아니고, 직원도 아니고, 누구의 아내도 아닌 그저 '상아'라는 사람으로 말이다. 소중하고 어여쁜 아이를 돌보는 일이 왜 감정 노동이냐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말할 거다. “그 아이의 표정 하나, 말 한마디, 눈빛을 늘 예민하게 감지해야 하고 해결책도 생각해야 해요.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게 힘든 사람이니까요.”


지금도,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아이에게 좀 더 웃으며 너그럽게 말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또 금세 "숙제는 했어?"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미안하지만, 그게 지금 나의 정직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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