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몬과 요셉의 다툼
17. 십자가 위에서 길을 묻다
바라바가 풀려난 것은 잘 된 일이었다. 하지만 예수가 붙잡힌 지 하루가 지나기 전에 가로대인 파티불룸을 짊어지고 비아돌로로사, 즉 가로대를 맨 죄수들이 지나가는 고난의 길을 걸어가게 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가룟 유다는 바라바 대신 피로 범벅이 된 얼굴로 파티불룸을 어깨에 지고 바들바들 떨며 비아돌로로사를 걸어가는 선생의 모습을 보며 말할 수 없는 참담함과 고통과 절망에 빠졌다.
목에 걸린 허술한 나무로 만든 티툴루스, 즉 죄패에 새긴 죄목도 생소했다.
'유대인의 왕.'
그런 죄목은 유래 없는 것이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시민들의 오해를 막기 위해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고쳐 줄 것을 요구했지만 빌라도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구경 나온 백성들은 가시관을 쓰고 홍포를 입은 유대인의 왕이 무슨 이유로 파티불룸을 지고 가는지 알지 못했다.
처음에 사람들은 가시관을 쓰고 홍포를 두른 그가 예수라는 사실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그만큼 소리소문나기 전에 신속하게 재판이 진행되고 집행이 이루어지는 탓이었다.
가룟 유다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예수에 대한 믿음을 내려놓지 않고 십자가 행렬을 뒤따라갔다.
'예수는 언제든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고 구원하리라.'
요셉과 라몬도 끌려 나와 파티불룸을 어깨에 짊어지고 비아돌로로사로 향했다. 그러나 앞서가는 죄수가 예수라는 걸 알게 된 것은 비아돌로로사 중간쯤에서였다.
처형이 급작스럽게 집행되는 것도, 바라바가 풀려난 것도 의아했지만 앞서가는 죄수가 예수라는 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로마병사들은 유달리 라몬을 괴롭혔다. 발을 걸어 넘어트리려고 하다가 라몬이 용케 피하면 발길질을 하고 침을 뱉었다. 자기 동료들을 죽인 데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 찬 로마 병사들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한 라몬이 파티불룸을 짊어진 채 앞으로 고꾸라져 얼굴을 길바닥에 찧는 일도 있었다.
반면 요셉은 자신이 짊어져야 할 파티불룸을 노예에게 대신 지게 하고 온갖 불평과 불만을 내뱉으며 구경 나온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었다.
그의 재산을 맡은 자가 어찌 알고 달려와서 유언을 요구하자 그는 이때다 싶었는지 자기 가진 재산의 일부를 4명의 사형집행관과 창검을 든 병사들에게 나누어주라 하였다.
그는 자신을 대신해서 파티불룸을 짊어지는 노예에게도 재산을 떼어주었다. 그 덕택에 로마병사들은 그가 시민들을 향해 소리치고 난동을 부려도 눈감아주었다. 그가 누리는 생의 마지막 호사였다.
예수가 넘어져 돌 위에 무릎을 찧었다. 그는 파티불룸을 오른쪽으로 기울여 땅을 짚고 일어서려고 바들바들 떨었다.
예수 때문에 행렬이 지체되자 병사들은 그에게 발길질을 하며 재촉했다.
백부장이 다가와서 무리하게 죄수를 다루지 말라며 예수를 도왔다.
아침에 교대를 한 그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티툴루스를 목에 건 죄수를 보고 놀랐다.
그는 예수가 성전을 뒤엎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부터 안나스의 보복이 있으리라는 짐작을 했다. 하지만 하룻만에 처형되리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어쨌거나 그는 비아 돌로로사를 걸어 골고다, 즉 해골골짜기까지 이송해야 하는 임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말단 수장으로서 거절할 수도 없었다.
골고다 언덕에는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의원들과 참관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형집행관들은 골고다 언덕에 세워져 있던 스티페스를 가져와서 예수가 지고 있던 파티불룸의 홈에 끼워 맞추려고 망치질을 했다.
그리고 양손과 발에 못을 박기 시작했다.
어디에다 못을 박는 게 더 아프고 덜 아픈지 잘 알고 있는 노련한 집행자들은 죄수에 대한 적개심 정도에 따라 못 박는 곳을 정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집행자는 손바닥을 통과한 못이 손목을 지나 팔뚝을 관통하도록 박았다. 그래야 동맥을 끊지 않으면서 무게를 못 이긴 손바닥이 찢어져서 죄수가 거꾸로 쑤셔 박히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못을 박다가 동맥을 끊는 것은 집행자의 미숙함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신중을 기해 못질을 했다.
그들은 죄수를 단 몇 시간 만에 죽게 할 수도 있고 며칠 동안 살아서 고통을 받게 할 수도 있었다. 사형 집행자들은 그것을 대단한 기술로 여기며 신참들에게 전수해 주었다. 그들의 전통이었다.
요셉과 라몬에게도 스티페스가 조립되었고 양손과 모둔 발에도 못질이 끝났다.
예수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라몬이 왼쪽에는 요셉이 세워졌다.
"너는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짓는다고 하지 않았느냐. 네가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였으면서 너는 구원하지 못하느냐.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지 않았느냐. 십자가에서 뛰어내려 네가 그리스도임을 보여라. 그러면 우리 모두가 너를 믿을 것이다."
십자가 아래서 올려다보고 있던 파르신이 외쳤다.
"이스라엘의 왕이여, 너도 구하고 우리도 구하여 보라."
예수의 왼쪽에 매달려 있던 요셉이 비아냥댔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사람들 말처럼 당신이 그리스도면 당신도 구하고 우리도 구하십시오. 저는 당신을 믿었습니다."
라몬이 절망에 빠진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라몬아, 네가 본 그 아기가 나다. 나는 그때 보았던 너의 눈을 지금도 기억한다."
예수가 말했다. 그때 왼쪽에 있던 요셉이 예수를 향해 거칠게 욕을 퍼부었다.
"요셉, 너는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어디다 대고 욕설이냐."
라몬이 지친 가운데도 큰 소리로 요셉을 나무랐다. 그러자 요셉은 라몬에게까지 욕을 퍼부었다.
"우리는 죄 값을 치르는 것이지만 이분은 죄가 없다."
라몬이 힘겹게 소리쳤다.
"저들이 아직 기운이 남아서 십자가 위에서까지 싸운다."
아래서 지켜보던 산헤드린 의원들이 죄수들을 비웃었다.
"예수여,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오늘 당신의 나라에 가시면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저를 기억하시고 잃어버린 양을 찾아 주신 것처럼 그곳에서도 저를 기억하고 제 영혼을 찾아주십시오."
라몬이 울며 말했다.
"라몬아,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하는데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예수가 말했다.
예수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가룟 유다는 골고다 언덕 가까운 숲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목을 맸다. 그의 발치에는 은 삼십 세갤이 나뒹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