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들이 예수를 이끌고 갔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병사들에게 끌려간 예수의 모습을 먼발치에서나마 보려고 안쪽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추위를 못 참고 불을 쬐던 베드로는 예수의 제자가 아니냐고 묻는 질문에 두 번씩이나 부인하고 달아났다가 그들을 보고 다가갔다.
예수의 자취를 살피려다 그들을 발견한 가룟 유다는 사람들 뒤로 몸을 숨겼다.
"니고데모 선생님, 주님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베드로가 주눅 든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 죄가 확정된 건 아닙니다. 산헤드린에서 표결을 해야 합니다. 가야바가 원칙을 어겨 가며 표결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알기 전에 일을 끝내려는 거겠지요. 일단 죄가 확정되면 백성들도 어쩌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너무 염려 마십시오. 산헤드린에는 의로운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니고데모가 말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베드로가 말했다.
"저는 이제 표결에 참여하기 위해 가봐야겠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니 이제 가서 눈을 좀 붙이시지요."
니고데모가 조용조용 베드로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리고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무리들 사이로 빠져나갔다.
"여보시오. 당신 혹시 예수 공동체 사람 아니오."
마침 지나가던 수비대원이 베드로 앞을 가로막았다.
"이 사람이 미쳤소. 나는 아니오."
베드로가 수비대원을 밀치고 어둠 속으로 달아났다. 멀리서 닭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 모습을 지켜본 가룟 유다는 쓴웃음을 웃었다.
'선생은 제자들의 배신을 용서하고 사흘 후면 감옥에서 나와 세상을 구하시리라.'
자기 선생, 즉 예수가 말한 부활의 의미를 가룟 유다는 그렇게 해석했다.
가야바는 자신의 가문을 망치려 드는 예수를 유죄로 처형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소위원회의 판관 23명의 견해는 정확히 둘로 갈렸다. 표결 결과는 예상을 뒤엎고 유죄 11표 무죄 11표 나머지 1표는 기권이었다.
가야바는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의 영향력이 적지 않음을 다시 확인한 셈이었다. 가야바는 예수에게 물든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을 생각하면서 이를 부득 갈았다.
'내 기필코 오늘이 지나기 전에 예수를 죽이고 말리라.'
가야바는 포기하지 않고 대제사장들과 유죄 쪽에 표를 던졌을 것이 확실한 판관들, 그리고 장로들과 서기관들을 불러 모아 대책을 논의했다. 니고데모 쪽 사람들만 제외하고 산헤드린의 의원들이 다 모인 셈이었다.
젊고 어린 사람일수록 파르신과 가까웠고 원로들은 당연히 가야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전직 대제사장인 시몬과 아리마대 요셉, 니고데모 같은 영향력 있는 판관들과 중진들 몇 명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가야바 사람들이었다.
가야바는 어렵게 잡은 예수를 여기서 놓아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처형을 늦춰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들의 권력이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가야바는 그 점을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강조하였다.
예수의 능력과 그를 따르는 백성들을 두려워하는 그들도 가야바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였다.
"그 자를 죽이지 못하면 우리에게 후환이 미칠 거요."
"그 사람을 따르는 백성이 많으니 우리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소."
그들의 걱정이 큰 만큼 결론은 빨리 내려졌다.
"반역죄로 빌라도에게 넘깁시다."
사두개 사람이 제안했다.
"그자가 황제에게 반기를 들었다고 우리가 증언합시다. 그자가 황제에게 바치는 세금을 거부하도록 백성들을 선동하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며 반역을 일으킨 겁니다. 모두들 돌아가서 수하들을 불러 모아 빌라도 법정으로 보내시오. 그들도 나와서 그자의 처형을 외치게 하시오. 집안에 있는 여자들이나 종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하시오. 그들에게 사형을 외치라고 하시오. 명심하시오. 사형이오. 그자를 죽이지 못하면 우리가 죽습니다."
파르신이 외쳤다.
그들이 예수를 죽일 모의를 하는 동안 니고데모 쪽 사람들은 성전을 나와서 집으로 돌아갔다. 표결도 끝났고 밤이 늦었기 때문에 더 이상 어쩌지 못하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적어도 내일 아침까지는 무사할 것이고 내일 아침만 지나면 붙잡아 둘 명분이 없으리라고 여긴 그들은 승리를 자신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성전을 나설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는 아직 채 날이 밝지도 않은 새벽에 빌라도에게 넘겨졌다. 그들은 로마의 힘을 빌려 예수를 죽이고자 했던 것이다. 관저 밖에서 소란스러운 외침이 들려오자 빌라도는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자고 있다가 겉옷도 걸치지 못하고 놀라 뛰어나와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무슨 일이냐!"
빌라도가 경호원에게 물었다.
"유대 사람들이 죄인을 잡아와서 총독님의 판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경호원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밤중에 무슨 일로!"
빌라도가 어이없는 얼굴로 물었다.
"반역자라고 합니다."
경호원이 말했다.
"기다리라고 해."
빌라도가 퉁명스럽게 내뱉고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오늘 로마에 반역한 죄인을 잡았습니다. 판결을 내려주십시오."
빌라도가 의관을 갖추고 나왔을 때 가야바 측 사람들이 예수를 고소했다.
"그런 일이라면 날이 밝은 뒤에 해도 늦지 않소. 우선 요새의 지하 감옥에 집어넣고 심문은 날이 밝으면 하도록 하겠소."
빌라도가 말했다.
'이제야 일이 제대로 돌아가려나 보군.'
군중들 틈에 있던 가룟 유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많은 백성들이 지금 그자를 처형하라고 아우성입니다. 이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지금 판결을 내려주지 않으면 저들은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그의 처형이 지체되면 그의 수하들이 그를 구하기 위해 요새를 불태우려 할지도 모릅니다."
예수를 고발한 자들이 외쳤다.
"이게 무슨 일인가. 유대 사람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로마에 충성했다고 로마에 반역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이렇게 소란인가. 도대체 이 사람을 무슨 일로 고소하는 것이오?"
빌라도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물었다.
"이 사람이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가 총독에게 데려오지 않았을 것이오. 그는 자칭 왕이라며 백성들을 미혹하고 로마에 내는 세금을 내지 말라 하였소."
파르신이 대답했다.
"증인을 데려오시오."
빌라도가 말했다.
"우리 모두가 증인입니다."
무리가 외쳤다.
"네가 이 사람들이 말한 대로 유대인의 왕이냐?"
빌라도가 예수에게 물었다.
"........"
예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 사람이 너희의 왕이라고 하는데 왜 나에게 데려와서 이런 소란을 피우느냐. 헤롯에게 데리고 가라.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
빌라도가 일어서서 관저로 돌아갔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빌라도 총독의 관저에서 멀지 않은 헤롯궁으로 예수를 데리고 갔다. 빌라도가 헤롯에게 미루고 돌아가 버리자 그들은 왕위에 대한 집착과 위기를 동시에 품고 있는 헤롯을 생각하며 무릎을 쳤다.
요한을 참수한 헤롯이라면 자칭 왕이라고 하는 예수를 당장 죽이려 들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헤롯이 옷도 갖춰 입지 않은 채 침실에서 나왔다. 그는 늦게까지 연회를 즐기고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던 참이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으로 반이 가려진 예수의 얼굴을 보는 순간 헤롯은 반갑고 즐거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헤롯은 세례요한의 망령에 시달리고 있던 차여서 또다시 선지자를 죽일 마음이 일지 않았다. 게다가 사람들은 그를 두고 세례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도 하지 않던가.
"네가 소문으로만 듣던 예수로구나. 어디 얼굴을 한번 보자. 누가 너를 때렸느냐. 내가 복수해 주겠다. 오, 가여운 이 선지자를 누가 괴롭혔느냐. 당장 잡아오너라. 내가 요절을 내주겠다."
헤롯은 익살을 부리고 허풍스럽게 웃으며 예수를 조롱하다가 그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문질러댔다.
"그자가 스스로 왕이라 칭하며 백성들을 미혹하였습니다. 세례요한보다 더 사악하고 악독한 마법사입니다. 당장 죽이지 않으면 왕께서 화를 입으실 겁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한 목소리로 예수를 고발했다.
"이 사람을 보라. 세례요한 보다 능력이 많고 놀라운 일을 많이 행하였다. 이 사람은 진정한 너희의 왕이니라. 나는 왕이 아니다. 로마가 나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니 이자가 왕이다. 여봐라 가서 내 홍포를 가져다가 이 위대한 왕에게 입히라. 새 왕이 오신 것을 축하하자."
헤롯이 소리치며 웃었다.
"어서 홍포를 가져오지 않고 뭐 하느냐! 어서 이자에게 홍포를 입히고 왕으로 대우하라."
괴팍한 헤롯이 거듭해서 외쳐대자 경호원이 마지못해 홍포를 가져와 예수에게 입혔다.
"홍포를 입은 이자가 너희의 왕이다. 너희 왕을 처형하고 싶거든 빌라도에게 데려가라."
헤롯은 귀찮고 피곤하다는 듯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들은 다시 예수를 빌라도에게 데려갔다.
"너를 죽이라고 아우성치는 저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네 동족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다.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내게 말하라."
빌라도가 예수를 관저로 데리고 들어간 뒤에 물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내 나라가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아무도 나를 잡지 못한다."
예수가 말했다.
"그러면 네가 왕이냐?"
빌라도가 물었다.
"네가 말한 대로 나는 왕이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다."
예수가 말했다.
"진리가 무엇이냐?"
빌라도가 말했다.
"내가 곧 진리요 생명이요 길이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
예수가 말했다.
"저 사람들이 너를 죽이려고 한 이유를 알겠다. 내가 너를 치지 않으면 저들이 너를 죽일 것이다."
빌라도가 말했다.
"이 사람을 데리고 나가라."
빌라도가 곁에 서 있는 병사에게 명령했다.
뒤뜰에는 채찍을 든 릭토르, 즉 고문을 하는 병사들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자는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칭하며 로마 황제에게 반역을 꾀한 죄인이다. 그자가 자기의 죄를 부인할 때까지 쳐라."
빌라도가 층계참에 서서 외쳤다.
"네가 죄를 부인하면 살 수 있다. 심한 고문을 당하고 부인한 것이니 부끄러울 것도 없을 것이다."
빌라도가 말하는 동안 예수를 인계받은 릭토르들이 홍포를 벗겨 담벼락에 걸었다. 그리고 예수를 뜰 한가운데 서 있는 허리 높이의 형틀에 묶었다.
선 채로 결박당한 예수는 손과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세 명의 릭토르가 차례로 예수의 등과 가슴, 허벅지, 어깨를 채찍으로 사정없이 내리쳤다.
채찍이 예수의 몸을 휘감을 때마다 가죽 채찍 속에 박힌 양의 뼈와 쇠구슬이 그의 여린 살갗을 찢었다. 층계참에 서서 보고 있던 빌라도가 인상을 찌푸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그만하고 법정으로 데리고 나오라."
빌라도가 다시 나와서 소리쳤다.
"이자가 아직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병사가 말했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으니 대답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어서 그 사람을 법정으로 데리고 오너라."
빌라도가 말했다.
"유대인의 왕이시여, 평안할지어다!"
그때 한 병사가 가시를 함부로 엮은 관을 가져와서 예수의 머리에 씌웠다. 예수가 움찔거리자 더 사정없이 눌러버렸다. 이마와 머리가 찢어지고 검붉은 피가 땀처럼 얼굴로 흘러내렸다.
"대관식에 왕의 지팡이가 없을 수 없지."
다른 병사가 긴 막대기를 예수의 손에 쥐어주고 속옷과 겉옷을 입게 한 뒤에 홍포를 다시 입혔다.
"이제 대관식만 하면 그대가 왕이다. 왕이 되거든 우리를 잡아서 죽여라. 우리가 누구인지 너는 알 수 있지 않느냐."
조롱하던 병사들이 예수를 법정으로 끌고 나왔다.
"내가 이 사람을 죽도록 고문하였지만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소."
빌라도가 예수의 무죄를 선포했다.
예수를 모함하는 자들처럼 가룟 유다 역시 실망했다. 요새의 지하 감옥 갇히는 길이 이리도 험난할 줄은 예상 못했던 가룟 유다였다.
"그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빌라도의 무죄 선포에도 무리들이 그악스럽게 예수의 사형을 외쳐댔다. 폭동이라도 일으킬 태세였다.
"좋다. 그러면 이제 너희가 결정하라. 명절의 관례대로 너희가 청원하면 죄수 한 명을 놓아줄 수가 있다. 너희가 무서워하며 처형되기를 원하고 있는 살인강도 바라바를 살리겠느냐. 아니면 예수를 살리겠느냐."
빌라도가 말했다. 그는 유대 사람들이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예수를 놓아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바라바는 로마와 가까운 유대 귀족, 즉 사두개 사람과 바리새 사람들, 대제사장들과 판관들, 그리고 장로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무리들은 바라바를 외쳤다.
"이 무슨 일이냐! 너희는 바라바를 두려워하지 않느냐! 너희가 예수를 살인강도보다 더 두려워하는 까닭이 무엇이냐?"
빌라도가 물었다.
"이 사람이 스스로 왕이라 칭하고 로마 황제를 배신하였으니 만약 로마 총독으로서 이 자를 놓아주면 당신을 황제의 충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를 놓아주려고 안간힘을 쓰자 유대 사람들이 고함쳐 빌라도를 협박했다.
빌라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재판석에 앉았다. 저들이 다시 불충한 신하라며 황제에게 탄원한다면 자신의 권력에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었다.
빌라도가 팔레스타인의 총독으로 부임한 건 로마의 실권자 세자누스 때문이었다. 정치에 신물이 난 로마 황제 디베료는 섬 카프리로 물러가 대리 정치를 하고자 했다.
이때 세자누스는 디베료의 정권 대리인이 되려고 수많은 정적을 숙청시켰다. 한낱 황실 경호대장에 지나지 않았던 세자누스가 디베료의 친아들 드러수스까지 제거하고 황실 친위대장이 되어 실권을 거머쥐는 데 빌라도의 공이 컸다. 덕분에 빌라도는 로마의 명실상부한 실세가 된 것이다.
세자누스는 폭동과 소요가 끊이지 않는 위험한 요충지인 유대를 빌라도에게 맡겼다. 세자누스는 완강한 성품의 빌라도가 골치 아픈 유대를 다스리는데 적격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빌라도는 세자누스의 뜻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속국민에 대한 이해보다는 지배국 로마의 우위를 드러내고 굴복시키려는 빌라도의 의도는 번번이 크고 작은 충돌을 일으켰다.
그는 유대 총독으로 부임한 뒤에 전임 총독들과 달리 예루살렘의 뜰을 훤히 감시할 수 있는 안토니오 요새 꼭대기에 황제 디베료의 반신상을 세워놓았다.
유대 사람들은 사령부가 있는 가이사랴로 가서 빌라도에게 반신상을 내려 줄 것을 요구했다. 그들의 끈질긴 요구는 며칠 째 계속되었다. 빌라도는 하는 수 없이 재판정을 설치하고 유대 사람들을 그리로 오게 했다.
유대 사람들을 꺾지 못하면 정치 일정이 순탄치 않으리란 그의 생각은 극단의 행동으로 이어졌다. 빌라도는 탄원을 포기하고 돌아가지 않으면 모두 죽이겠다고 단호하게 선언했다.
그러나 창검을 쥔 군대로 둘러싸인 유대 사람들은 죽여 달라며 드러누워 버렸다. 그들 모두를 죽일 수는 없었다. 빌라도는 유대 사람들과의 처음 신경전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옛 헤롯 궁이었던 총독의 관저에 디베료를 섬기는 봉헌방패들을 장식해 놓은 것이 알려지면서 빌라도는 또다시 유대 사람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다.
예루살렘이 유대 사람들의 성전이 있는 곳이기는 하지만 로마 황제는 이곳마저 점령한 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었다. 빌라도는 로마의 신인 디베료 봉헌방패를 치울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빌라도가 유대 사람들의 탄원을 무시하자 그들은 결국 카프리 섬으로 찾아가 황제에게 고발했다.
유대 사람들은 빌라도가 속국민의 신앙을 짓밟는 행위 외에도 약탈과 부정행위, 불법 재판을 하고 있다며 그 실상을 소상히 밝혔다.
수로를 건설한다는 명목으로 세금 외에 성전 금고마저 손댄다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그 일로 빌라도는 황제의 노여움을 샀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 실권자인 세자누스에게 변명할 기회가 있었고 그는 빌라도를 보호해 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기둥이던 세자누스가 디베료의 친아들을 살해한 범인으로 밝혀져 처형되었다.
정치적 동반자인 세자누스를 잃은 빌라도는 유대 사람들이 자신을 황제에게 고발하면 자칫 정치 인생이 끝날 수 있다고 빌라도는 판단했다.
아니 정치 인생만 끝나는 게 아니다. 그것은 파멸이요, 죽음이었다. 빌라도에게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빌라도가 무리의 요구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이유였다.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아무런 죄가 없다. 너희가 원했으니 너희가 당하라. 이제 너희가 두려워하던 바라바를 풀어주라. 그리고 이자에 대해서는 너희가 알아서 하라."
빌라도가 손을 씻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