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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na Oct 27. 2022

망한 영화에도 좋아하게 되는 장면이 있다


나는 영화를 아주 개인적으로 감상한다. 아주 사소한 이유로 어떤 영화를 좋아하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먹어보고 싶은 음식이나 가보고 싶은 식당이 나온다든지, 주인공이 키우는 개가 귀여워서라든지. 초록색 색감이나 대사 한 줄이 그냥 맘에 들어서. 그런 식으로 나는 아주 작고 다양한 이유로 영화를 좋아해 왔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망한 영화, 그러니까 혹평받는 영화에도 좋아하게 되는 한 장면 정도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장면을 일부러 찾으려는 건 아니지만 나는 그런 방식으로 영화를 봐왔다. 마음에 드는 노래가 나와서 어떤 영화를 좋아하게 되고, 들른 가게에 그 노래가 우연히 흘러나와서 그 가게를 좋아하게 되고, 그 가게에 갈 때 그 영화를 떠올리고. 그런 식으로 영화의 작은 요소가 내 삶의 사소한 순간을 좀 더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프랑스 와서 여러 영화관을 다니며 주섬주섬 모은 포스터와 엽서. 맘에 드는 것들을 골라 벽에 붙여놨는데 어째 다 옛날 영화다.



프랑스에 와서 영화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역사상 중요하다는 영화도 의무적으로 보고, 영화를 분석하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그게 영화를 좀 더 잘 느끼도록 도와주진 않았다. 오히려 공부를 할수록 영화를 볼 때 점점 시큰둥해지는 것 같아서 당황스럽기도 했다. 어떤 영화가 싫다면 왜 싫은지 고민해보고 비판하는 것도 분명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영화를 평가하는 데엔 관심이 가지 않았다. 영화에 대해 공부를 할수록 더더욱 그랬다. 어떤 크기와 각도에서 인물을 찍었고, 편집이 어느 지점에서 됐고 이런 점을 세세하게 분석하는 것은 영화를 이해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되기는 한다. 하지만 그런 부분을 잘 모를 때도 나는 영화를 보며 울고 웃었고 어떤 영화들은 그냥 본능적으로, 보자마자 좋아하게 됐다. 내게 영화를 보는 행위란 신기하게도 시각이나 청각이 아닌 촉각에 가까웠다. 비 오는 날 딱히 갈 곳이 없을 때 혼자 영화관의 구석진 자리에 앉아 앞에서 움직이는 빛을 보고 있으면 외로운 동시에 철저하게 외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냥 그 빛이 나를 감싸는 느낌 때문에 영화관에 가고, 영화를 계속 보았던 거다.


같이 공부하는 친구와 어설프게 만들어진 단편 영화를 함께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이런 말을 했었다. 이 영화가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알지만, 내 마음속에 와닿는 점이 있다고. 그래서 결점을 그냥 두는 것도 좋다고. 난 영화를 볼 때 완벽함을 바라면서 보진 않는다고. 이상하게 나는 시간이 흐른 후에도 계속 그 말이 생각났다.

내가 영화를 사랑하게   마음은 완벽한 영화에 대한 감탄이 아니라, 영화와  사이에서 이루어진 연결 같은,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였다. 단점을 드러낸 영화가 결점 많은 나를 끌어안아주었을 , 그렇게 처음 영화를 사랑하게 됐다. 나는 여전히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도시를 때려 부수는 블록버스터든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는 지루한 무성 영화든, 다들 좋아하는 영화든 누구나 싫어하는 영화든, 엉성한 영화든 이상한 영화든 어떤 영화든 간에 나는  영화에 대답하려고 노력한다.  삶의 순간순간에 영화가 들어올 작은 자리를 마련해놓고, 나의 답이 전해지기를 소망한다. 그런 식으로 영화를 보다 보면 별 거 없는  삶에도 좋아하는 장면들이   많이 생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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