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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이 Aug 15. 2024

4년 만에 다시 출근해 보니


2024년 2월 20일


어느새 학교 건물이 보였어. 바로 어제도 왔던 것처럼 익숙한 풍경이더군. 적갈색 벽돌로 쌓아올린 건물, 살짝 모난 운동장, 국기 게양대, 화단, 신입생 환영을 알리는 플래카드... 모든 게 그대로더라. 이렇게 금방 다시 올 줄 모르고 그때는 왜 그렇게 도망치듯이 나왔을까.


내 복직 결정 소식에 주변 지인들의 반응은 정확히 반반으로 나뉘었어. 철 없이 오래 쉬더니 이제라도 정신차려 다행이다 반, 아예 그만 둘 줄 알았는데 복직이라니 의외구나 반으로 말이야. 시어머님은 전자인지 후자인지 모르겠지만 몇 달 전 며느리가 정말 일을 그만 두나요? 하고 점사까지 보셨대. 내가 진짜 퇴직할 것처럼 굴긴 했었봐. 


나도 잘 모르겠어. 그때는 왜 그렇게 힘들었 건... 그래도 확실한 건 지금은(여전히 두렵지만) 그때와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졌다는 거야.


교무실은 신학기 준비로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였어. 모두들 새로운 자리로 짐을 옮기 노트북에 프로그램을 깔고... 그런데 그 정신 없는 와중에도 책상이 창가 구석 자리라는 걸 알자마자 기분이 좋아지더라고. 햇빛이 책상 위로 한 가득 쏟아지 파란  잘 보이는 창가 자리. 마음이 편안해졌어. 나는 책상 덮개 유리를 살짝 들어 그 사이로 챙겨온 가족 사진을 끼워 넣었어. 앞으로 감정이 일렁이는 순간이 오면 그 사진을 보며 마음을 다잡을 거야.




난 학년 부장 업무를 맡았어. 장은 처음이지. 얼마 전 복직 희망원을 쓰러 학교에 갔는데 교감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 이 학교는 다문화 학생 비율이 높은 편이다,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도 적지 않다, 그래도 다들 순하고 예의가 발라 지도하기는 어렵지 않을 거다, 다른 선생님들도 모두 좋은 분들이다, 다만 지금은 신규 및 저경력 교사가 많은 편이라 부장 업무를 할 선생님이 부족하다... 그리 말 끝에 내게 1급 정교사 자격증이 있는지 물어보시더라. 있다 하니 그 다음 말씀이 뭐였더라. 


-잘됐네요. 지원자가 없으면 선생님이 부장을 할 수도 있습니다.


. 그리고 정말 이 업무를 맡게 된 거지. 처음에는 어찌나 두렵고 당황스럽던지. 진지한 표정으로 말씀하시는 교감 선생님 앞에서 그야말로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렀.


'제가요? 괜찮을까요? 자신이 없는데요. 아무래도 경력도 적고...무엇보다 올해 복직을 해서요. 교감 선생님은 걱정이 안되시나요? 그러니까 제 걱정 말고 학교 걱정이요... 아, 죄송한데 정말 못하겠...'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해보지도 않고 못한다는 말이 나오는 건 너무 비겁하다는 생각. 나는 내 자신을 못믿는 걸까. 몇 년 전 모멸감을 느끼게 하던 몇몇 분의 얼굴도 떠올랐지. 그거 봐, 못하잖아. 쯧쯧.


-교감 선생님, 제가 실수도 잦 일 처리가 서툰 편입니다. 그래서 교감 선생님의 마음에 안 드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해보고 싶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실제로 말씀드린 건 아니고 마음으로 한 말이었지만 일단 부딪쳐 보기로 결심했어. 마음을 정하니 비로소 홀가분한 기분이 들더라. 그래, 이왕 하기로 한 거 열심히 한 번 해 보자.




앞으로 한동안은 정신 없겠지.


오랜만에 출근한다고 화장을 하고 옷도 갖춰 입으니 이것부터 어찌나 갑갑하고 불편하던지. 출근길 운전을 하는데 길은 또 왜 이렇게 막히는지. 그래도 이런 건 문제도 아니야. 당장 첫 수업은 어떻게 구상할 것이며 업무 계획서는 어떻게 올려야 하냐고.


사실 이건 비밀인데, 오늘 업무 관련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데 정말 하나도 기억이 안 나더라고. 사이트에 로그인 할 때부터 한참 버벅거렸어. 장롱면허 소지자가 10년 만에 다시 운전대를 잡은 거나 마찬가지랄까. 문서 결재나 복무 상신과 같은 가장 기초적인 일들마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니 정신이 아찔해지더라. 차라리 신규 선생님이면 대놓고 여쭤봐도 당연한데(귀엽기라도 하지), 바쁜  젊은 선생님들 붙잡고 일일이 물어볼 수도 없고 난감했어.  


'나이스 업무파악', '생활기록부 작성방법', '신학기 수업준비', '에듀테크 수업 활용 연수', '복무 상신 방법'... 

한참 멍하게 있으려니 지나가던 한 선생님이 웃으며 말씀하시더라. 일주일만 근무하면 다 기억나실 거라고. 그게 정말일까?




퇴근하고 집에 가니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와 안겼어. 


집에만 있던 엄마가 날이 저물 때까지 들어오질 않으니 많이 놀랐나 . 코알라처럼 양 다리를 하나씩 붙잡고 놓지를 않더라. 가슴이 먹먹했어. 나도 하루 종일 애들이 많이 보고 싶었거든.


첫날이라 그렇겠지? 어차피 다 감내해야 할 일인데 울지 않겠어! 조금만 기다려, 일하는 멋진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마.


참, 그래도 피곤하긴 했는지 좀 전에는 소파에 잠깐 누웠다가 화장도 못 지우고 그대로 잠들 뻔 했잖아. 남편이 씻고 자라며 흔들어 깨워서 겨우 일어났지. 그러다 그이가 조심스레 묻더라. 오늘 어땠냐고. 좋았냐고 싫었냐고. 그런데 그렇게 단순히 대답하기가 오히려 쉽지 않더라고. 한참 머뭇거렸지. 그러다 결국 멋쩍게 동문서답인  대답한 말이 뭐였는지 알아?


-여보, 복직 일기를 한번 써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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