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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이 Dec 01. 2023

신도시의 아파트를 짓는 사람들



 년 전에 다른 신도시에 살았을 때였다.


우리집 거실 창으로 또 다 아파트의 건설 현장이 보였다. 그래서 우리집 거실 뷰는 처음에는 '공사장 뷰'다가 건물이 조금씩 올라가면서 어느새  '아파트 뷰'로 변하게 됐다.


어느 날, 창 밖의 그 아파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연기는 좀처럼 꺼질 줄을 몰랐다. 처음에는 가늘던 연기가 점점 굵어지나 싶더니 곧이어 수많은 소방차들이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몰려 들어왔. 그날은 불안한 마음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며칠이 지났다. TV 화면에 우리 동네나왔다. 화재는 겨우 진압했지만 건물을 빠져나오지 못한 공사장의 인부 몇 명은 끝내 사망했다는, 그 뉴스를 보는데 기분이 아주 엿 같았다. 죽은 인부 중 한 명은 아버지를 돕고자 그날 처음 일하러 온 20대 청년이라 했다. 한동안 거실에 커튼을 치고 지내야만 . 그곳만 보면 울적해지고 마음이 힘들었으니까.




새로 이사를 온  집에서도 실 창 한 쪽으로 아파트 공사 현장이 다 보이는 걸 았을 때, 잊고 있던 그날이 자연스레 떠올랐.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래도 그때와 달리 건설 현장이 정면으로 보이진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저 멀리 산도 보이고 호수도 보여 빠른 심신 안정에 도움이 됐달까. 그 후로 거실 소파에 앉으면 분주한 공사 현장을  훑어보는 게 버릇처럼 됐다. 


딸아이가 엄마, 비행기가 지나가요, 하면서 탄성을 지르거나 바깥 날씨가 어떤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밖을 내다볼 때면 하늘을 올려 보다가도 꼭 마지막에는 눈길이 아래쪽으로 머물렀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크레인이며 회색의 건물... 그리고 흰 안전모를 쓰고 이동중이거나 자재를 나르는 인부들을 위에서 내려다 보면 마치 작은 레고 블럭들처럼 보였다. 끼 손톱만 한 형상들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은 철없는 말이지만 귀엽게 느껴졌고 멍하니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부지런한 움직임을 보고 있노라어느새 나도 따라서 활기가 도는 듯했으니까.




얼마 전에 드디어 그들을 가까이에서 보게 되었다. 아들이 학교 준비물로 줄자와 10칸 노트를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던 날이었다. 서둘러 이른 저녁을 먹고 문구점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아들과 횡단보도 앞에 서서 파란 신호등이 켜지기를 기다리는데, 마침 일을 마치는 시간인지 근처 공사장에서 사람들이 내려왔다. 순식간에 우리는 방사형 모양으로 퍼지는 인부의 무리에 휩쓸리고 말았다.


밀물처럼 밀려드는 그들은 멀리서 볼 때는 다들 비슷해 보였으나 차츰 가까워지니 각자 다른 개인들의 형상이 두 눈에 선명히 들어왔다. 니트 모자를 쓴 남자, 뿌옇게 김 서린 안경을 콧등에 걸친 남자,  백팩을 둘러 멘 남자, 몸에 걸친 검은 옷보다 더 어두운 얼굴색의 남자... 다들 피곤과 추위에 어지간히 질린 듯한 표정이었. 외국인도 꽤 많았다. 라이라이 손짓하며 동료를 부르는 남자는 중국인이겠고, 몸통두껍고 눈빛이 강한 남자들은 낯선 언어를 썼는데 느낌  몽골인인 것 같았다. 가끔 여자들도 보였는데 그녀들도 중국말을 했다. 배우 제임스 맥어보이를 똑닮은 백인도 보였다. 금갈색 머리에 피부의 얼굴이 아무래도 눈에 확 튀었는데 그가 투박한 안전화와 작업복 차림만 아니었다면 아마도 근처 기업 회사원이나 아니면 영어 유치원의 원어민 강사 쯤으로 착각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인부들우리 말고도 순백색의 비숑 프리제를 끌고 산책하던 여자들과 교복을 입은 어린 연인, 노란 색의 학원 차량들과 뒤엉키며 아주 혼잡한 저녁 풍경을 만들어냈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벌겋고 꺼먼 얼굴들, 전신에 짙게 밴 피로감, 전투복 패턴의 작업복, 허리춤의 수건, 안전화 같은 것이 묘하게 튀어서 일상복 차림의 주민들과는 불협화음을 냈는데, 우리가 아무리 가까이 붙어 있어도 콩과 팥마냥 서로 좀처럼 섞이지 못하는 모습이 좀 멋쩍어질 정도였다. 하여튼 같은 곳에 서 있어도 유독 그들만 낯선 이방인들처럼 느껴지는 게  희한했다.


잠시 후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뀌자 인부들은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횡단보도를 건넜다. 썰물처럼 빠르게 건물들 사이로 사라졌다. 잿빛의 무리가 잠시나마 점령하길거리가 순식간에 다시 일상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방금 전에 누가 있었 싶을 정도로 아주 빠른 퇴장이었다.




이상했다. 문구점에서 아들의 준비물을 사가지고 집에 돌아온 그 날 저녁, 나는 자꾸만 그들을 떠올렸다. 이 신도시의 아파트를 짓는 사람들을 그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다. 평소에 거실에서 내려다 볼 때에는 그저 막연한 작은 피사체에 불과했는데 그날 그렇게나 가까이서 마주하고 보니 참 당연하지만 그들도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사람들이었다. 고유한 개성과 영혼이 깃든 인간들이 근육을 움직이며 고된 노동을 할 적에, 또 다른 인간은 저 위에서 커피 한 잔을 홀짝이며 그들에게서 귀여운 레고 블럭 따위를 연상했던 것이다. 


자각하자 많은 것이 신경쓰였다. 특히 이곳의 집들을 지으면서도 정작 이 도시와는 썩 어울리지 않는 그들의 묘한 분위기가 어쩐지 불편해졌다. 그날 나는 그들에게 뭐라도 좋으니 한 마디의 말을 걸고 싶었던 듯하다.


피곤하시죠. 얼른 들어가 쉬세요.

오늘 같은 추운 에는 일 하기가 힘드시겠어. 

다들 집에서 자는 건가요, 아니면 근처 숙소에서 자는 건가요. 

종종 지켜보고 있었어요.

이런 날에는 뜨끈한 찌개가 최고죠. 김치찌개 추천합니다.

(외국에서 이들에게는)고국의 음식을 차려 먹으면 허기와 향수가 좀 달래지던가.


그들에게 정말 그런 말들을 걸었다면 어땠을까.

어떠긴, 웬 미친 여자인가 싶었겠지.


시답잖은 상상은 그쯤에서 그만 두기로 했다.

정작 묻고 싶고 하고 싶던 말들은 꺼내지도 못한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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