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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이 Nov 14. 2023

채칼이 뭐예요?

내게 돌을 던져라

 

당근채칼


둘째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김장 담그기 행사를 한다고 준비물을 몇 가지 챙겨달라고 했다. 머릿수건, 앞치마, 김칫국물이 묻어도 되는 옷 한 벌, 그리고 (문제의) 채칼. 아이들과 함께 김장을 도울 성인들이 쓰려고 하니, 각 가정에서는 채칼 하나씩을 보내 달라는 알림장의 글을 보자마자 난감해졌다. 집에 채칼이 있었나......


이전 글들에도 써놨고 자랑은 아니지만 요리를 못하고 또 안하는 편이다.(참고로 우리 아이들이 나보다 김장 경험 많음.) 그래서 채 썰 일이 거의 없기도 하거니와, 필요할 땐 그냥 식칼로 채를 썰었다. 예전에 감자 껍질을 벗기려고 채칼을 쓰다 손을 다친 적도 있었고.


한참을 찬장 여기저기를 어지럽게 뒤지다가 겨우 낡은 채칼을 하나 찾을 수 있었는데 벌써 약간 녹이 슬려고 했다. 어쩌겠나, 이거라도 보내야지. 형광 주황색의 오래된 채칼은 언젠가 시어머니가 나 쓰라고 하나 챙겨주신 것이었다. 손잡이 부분에 ㅇㅇ새마을금고라 인쇄된 것을 보니 당신도 아마 사은품으로 받으신 걸 게다. 채칼에 아이 이름 스티커를 붙여 플라스틱 통과 지퍼백으로 이중 포장을 한 후 어린이집 가방에 넣었다.




아침에 아이 손을 잡고 어린이집에 갔다. 그런데 어린이집에 들어서는 엄마들마다 잔뜩 상기된 얼굴이다. 그러더니 등원을 돕는 선생님께 하나 둘씩 채칼 얘기를 꺼내는데 표정이며 말투가 꼭 엄마에게 응석 부리는 아이들 같았다.


- 선생님, 채칼이 뭔지 몰라서 친정 엄마에게 물어봤어요.

- 저희 집에 채칼이 없어서 어제 다이소 가서 사왔잖아요. 호호호.

- 선생님, 그런데 채칼이 꼭 필요한가요?

- 저희 집 원래 김장 안 하는데... 그냥 사 먹으면 안될까요.


옆에서 듣다가 쿡, 하고 웃음이 나왔다. 중년의 선생님은 안그래도 어제 어린이집으로도 문의 전화가 많이 왔다면서, 괜히 젊은 엄마들 난감하게 했나보다며 민망해했다. 선생님이 미안해하실 건 없지만 저희 살림 못하는 게 들통나서 부끄럽다는 농담이 나왔고 다들 웃었다. 속으로 나만 이런 건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든다. 나를 포함한 여기 어린이집의 엄마들은 채칼과는 안친한 걸로 결론을 땅땅땅, 내려본다.


채-칼(명사)  

1. 야채나 과일 따위를 가늘고 길쭉하게 채 치는 데 쓰는 칼.                                 
                                                                                                         -표준 국어 대사전-  




갑자기 생각난 지난 날의 에피소드 2.

  


- 에미야, 저기 깨소금 좀 가져와봐라.

- 넵! 어... 어머니, 깨소금이 안보이는데요? 깨도 있고 소금도 있는데 둘이 섞은 건 안보여요.

- 너... 깨소금도 모르니?


깨-소금(명사)

1. 볶은 참깨를 빻은 것. 또는 여기에 소금을 약간 넣은 양념. 고소한 맛과 냄새가 난다.                                                                                                                              -표준 국어 대사전-





갑자기 생각난 지난 날의 에피소드 3.



-자, 다음 문제는 채소 이름을 맞추는 겁니다. 7-8월이 제철인데요, 가을에 이 국은 사립문 닫고 먹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맛과 영양이 뛰어납니다. 보관할 때는 줄기 껍질을 제거해서 손질한 상태로 신문지에 싸서 냉장 보관하면 좋다고 해요. 주로 나물 무침이나 쌈밥, 된장국에 넣어서 많이 먹는 이 채소 이름은 무엇일까요?

- 어어...채소...잘 모르는데... 시금치?

- (장내의 탄식) 땡! 아닙니다. 정답은 아욱입니다.


아욱(명사)  
1.      식물 아욱과의 두해살이풀. 높이는 50~70cm이고, 잎은 어긋나는데 단풍잎처럼 다섯 갈래로 갈라져 있다. 연한 줄기와 잎은 국을 끓여 먹고, 씨는 동규자(冬葵子)라고 하여 한방에서 이뇨제로 사용한다.
                                                                                                           -표준 국어 대사전-


*이번 글은 좀 부끄럽다. 그러나 함부로 비웃지는 마시라. 오직, 김장을 해본 적 있고 채칼과 깨소금을 알며 아욱 된장국을 끓여본 자들만 돌을 던질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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