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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자 Sep 16. 2022

난 이제 더이상 소녀가 아니에요

"엄마! 나 미미랑 이날 여수 가기로 했어, 기차표 끊어 줘"


대학 첫 방학을 맞이한 쁨이는 한껏 들뜬 목소리로 친구와 여수에 놀러 가기로 했다며 기차표를 끊어달라고 했다. 단 한 번도 타지에 혼자 보내본 적이 없기에 걱정은 됐었지만, 이제는 스무 살 성인이고 친구도 함께 가는 것이라니 잘 다녀올 거라는 믿음으로 가는 기차표부터 예매했다.



"오는 건 몇 시로 할까? 도착해서 막차 버스는 타야 하니까 저녁 7시 이후면 되겠지?"

"자고 올 건데?"

"자고 온다고?"

"응!"

"... 잘 곳은 정했어?"

"가서 정할 건데?"


삐................................ TV 조정 화면 같은 소리도 아니고 이게 지금 무슨 소리지? 외박이라고는 수학여행, 졸업여행, 임원 MT, 교회 수련회, 10분 거리에 있는 친구 집에서 작년에 딱 한 번 자본 게 전부인데 타지로 가면서 의논 한번 없이 외박을 통보하는 거야? 몇 분간의 정적이 흐르는 사이 이상기류를 감지한 쁨이는 방으로 들어갔고 생각을 정리한 뒤 쁨이를 불렀다.


"외박하는 거는 엄마한테 미리 말했어야 하는 거 아냐?"

"왜 그래야 하는데?"

"외박은 안전과 관련 있는 거잖아. 우리 지역도 아니고 타 지역까지 기차 타고 가서 자고 오는 건데 엄마한테 한마디 말도 없이 그렇게 결정하고 통보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말이 왜 안 되는데?

"다른 것도 아닌 외박이잖아. 엄마한테 물어보고 허락을 받았어야지."

"엄마, 내가 스무 살인데 허락이라는 말을 하면 안 되지."

"뭐...???"

"내가 왜 허락을 받아야 하냐고, 스무 살인데. 이제 성인인데."

"네가 어떻게 되는 말든 상관없는 남이랑 사는 게 아니잖아. 너를 사랑하고 걱정하고 생각하는 엄마랑 살고 있는 거잖니. 그런 엄마한테 미리 말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닐까? 그건 한집에 같이 사는 엄마에 대한 예의이고 배려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일언반구도 없이 허락도 받지 않고 갑자기 외박하겠다고 통보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는 당황스러웠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내 딸인데...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다며 지금도 매일매일 뽀뽀하고 보듬는 우리 쁨이인데... 어떻게 저런 생각과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지? 조금만 더 하면 언성이 높아질 것 같아서 말하기를 멈추고 쳐다만 봤다. 화가 난 쁨이는 정적이 흐르는 사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도 우리 쁨이가 스무 살인 거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 성인이 됐다는 것도 안다. 알면서도 나는 엄마이기에 걱정이 앞섰을 뿐이지, 무작정 반대만 하려던 건 아니었다.


숨 고르기가 끝나고 쁨이를 다시 불렀다. 쁨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생각해 봤는데 자고 온다는 말을 안 한 건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은 한데 허락은 왜 받아야 하는 건지를 정말 모르겠다고 했다. 내 생각이 어떻든 어차피 외박할 거라며. 이제 스무 살이 됐으니, 허락이라는 말을 하면 안 되는 거라고 했다. 기가 막혀서... 다른 친구들도 그러냐고 물으니 스무 살인데 허락을 왜 받냐고 되물었다. 상상치도 못한 내 딸의 낯선 모습에 말문이 턱 턱 막혔다.


"그래, 스무 살... 쁨아 엄마가 지금껏 살면서 너에게 허락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적 있니? 처음이지?"

"응."

"엄마는 순전히 너의 안전. 그거 딱 하나 걱정돼서 그런 건데"

"그게 무슨 걱정이야? 말이 안 되잖아?"

"그렇게 엄마 생각은 안 하고 발끈하면서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엄마는 더 할 말이 없다."

"이게 무슨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이야? 사람을 왜 발끈한 사람으로 만들어? 나는 허락받을 이유가 없는데 엄마가 허락이라는 말을 하니까 그렇지."

"그럼 엄마는 자식이 뭘 하든 말든 상관하지 말고 먹여 살리기만 하면 되는 거니?"

"낳았으니까, 책임을 져야지."


심장에 비수가 꽂힌다는 말이 이런 기분이었구나. 당연한 말이지만, 그 책임이 언제까지냐고 물으니 나는 모르는데 엄마가 알면 말해 보든가라는 심상으로 언제까지냐고 반문해 왔다. 욱하는 마음에 굳이 따지자면 근로 능력이 되는 성년까지가 아니겠냐고 했더니 그게 어디에 나와있는 거냐며 또 따져 묻길래 목이 메어 직접 찾아보라고 했다. 쁨이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굳게 닫힌 문을 보니 꾹 참았던 눈물이 푹 쏟아졌다.




모든 부모가 다 그러하듯 나 또한 우리 쁨이 낳았던 그때를 잊지 못한다. 병원에 가기 전 속옷을 세 번 갈아입었을 정도로 양수가 흘러나왔었는데, 나는 그게 만삭의 자궁이 방광을 압박해 새 나온다는 소변인 줄로만 알았다. 예정일이 한 달이나 남았고 산통도 없었으니까.


통화 중에 그 증상을 듣던 동생은 양수가 터진 것 같다며 빨리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병원에 도착해 보니 이미 자궁문이 3센티 이상 열린 상태라며 간호사는 아기가 곧 나올 거라고 했다. 산통도 무엇도 없었는데 아기가 나온다고 하니 덜컥 겁부터 났다.


출산 후, 의사는 우리 쁨이가 병원에 왔을 때부터 자연분만은 어려운 상태였다고 했다. 기력 약한 나는 계속 기절하고 태아 머리는 절개할 수 없는 위치까지 내려와 있어서 처음 당직 서는 날이었는데 긴박한 상황이었다며 둘 다 무사해서 다행이고 고맙다고 말했다. 쁨이 할아버지에게 만일의 사태에 산모와 태아 둘 중 누구를 택할 것인지를 정하고 그에 따르는 책임은 묻지 않겠다는 동의서까지 내밀었었다며.


그런 상황을 몰랐던 나는 "눈 떠요! 자면 안 돼! 아기 낳아야지! 둘이 합심해야 돼!"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간호사에게 몇 차례인지 기억도 안 날 만큼 뺨을 맞아가며 쁨이 낳는 데 성공했다. 간호사들은 울지 않는 쁨이를 보이지 않는 머리 위쪽으로 데려가 분주히 움직였고 의사는 때 되면 볼 것이라며 아직 나오지 않은 태반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상한 기류를 감지했고 아기를 데려오라고, 지금 당장 보여달라고 했다. 애타게 찾는 엄마의 소리를 들었던 걸까. 2.48kg의 작은 쁨이는 짧고 옅은 울음을 터트렸고 간호사들은 그제야 기쁘게 내 품에 쁨이를 안겨줬다. 신생아는 초점이 없다던데 우리는 분명히 서로를 바라봤다. 하얀 첫눈이 소복이 내린 새벽이었다.


우리 쁨이는 나올 때도 그렇게 조용히 나오더니 나와서도 정말 조용하고 순하디순하게 잘 자라줬다. 갓난아기들은 낮과 밤이 바뀌어 엄마들이 힘들다던데 나는 그런 경험이 없어서 그 고충은 알지 못한다. 주변 어르신들이 애 있는 집에서 애 소리가 안 난다며 수시로 안부 묻고 들여다봤을 정도였으니까. 신통방통한 놈이라고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잠들기 전 떼쓰는 거, 일어나서 엄마 찾아 우는 거, 제 말 안 들어주면 때굴때굴 구르며 떼쓰는 거, 뭐 안 사 주면 왕왕 울며 떼쓰는 거, 마음에 안 들면 신경질 부리는 그런 것도 일절 없었다. 이런 자식이면 열이 아니라 백도 키우겠다며 주변에서 신기해할 정도로 우리 쁨이는 정말이지 순하게 자라주었다. 애교는 또 얼마나 많고 내 생각은 또 얼마나 많이 하는지. 우리 엄마가 환생한 거 아니냐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우리 쁨이는 일어서기 시작하면서부터 몇 시간 전 그 기차표를 끊기 전까지 나를 무척이나 아끼고 챙겼었다.


떨리는 손으로 '요즘 스무 살'에 대해 검색해 봤다.

다른 부모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처하는지 알고 싶어 맘 카페에 글도 써봤다. 우리 집 애들은 중학교 때부터 그러고 돌아다녔다, 딸 혼자 키우는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스무 살 성인인데 간섭하지 말라는 등의 여러 충고와 요즘 애들은 스무 살이 무슨 벼슬인 줄 안다, 품 안의 자식이란 말도 있지 않으냐는 등의 위로와 격려가 담긴 조언의 댓글들이 순식간에 몇백 개 이상 달렸다.


생각을 정리한 뒤, 다음날 늦은 오후쯤 쁨이를 다시 불렀다. 거실로 나온 쁨이는 하루 사이에 얼굴이 반쪽이 돼버렸다. 나를 닮아 마음고생하면 살이 쭉쭉 빠지는 체질인데 식음까지 전폐했으니 그 모양새가 오죽할까. 속이 상해 화가 났다.


"엄마는 네가 스무 살 성인이 됐어도 아직은 애 같아서, 걱정되고 그러니까... 그래서 그랬어, 미안해..."라고 진심으로 말하고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이럴 때 딸바보 아빠라면 어떨까 생각하다가 속상한 마음과는 달리 나름의 초강수를 두었다.


지금은 엄빠가 되어야 할 때

· 네가 원하는 대로 이제부터 성인 대우해 주겠다. 어제 네 말이 99.9프로는 다 맞다.

· 너는 스무 살이고 성인이니까 네 멋대로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성인은 자기 앞가림도 자기가 하는 거다.

· 학교 졸업할 때까지 학비 및 학업에 필요한 모든 경비는 지원해 주겠지만 이제부터 친구들 만나서 노는 거, 갖고 싶은 거, 누리고 싶은 것들에 대한 비용은 네가 벌어서 직접 해결해라.

· 학교 졸업하면 성인답게 독립해서 나가라.

· 독립해서 5년간은 네 생일, 내 생일, 명절, 크리스마스 이런 어떤 기념일 외에는 집에 오지도 마라. 안 보고 살아야 아는 게 없으니 싸울 일도 없을 것 아니겠냐.

· 집에 와서 쌀 가져가고 김치 가져가는 것. 그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겠다. 성인이니까 혼자서 다 해결하면서 성인답게 살아 봐라.

· 남남끼리 만나 같이 사는 부부도 늦게 들어오거나 외박하게 되면 양해를 구한다. 하물며 피를 나눈 부모 자식이 한집에 살면서 그런 예의와 배려도 차리 않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나는 내 자식이 어떻게 살건 말건 나 몰라라 하면서 먹여 살리기만 하는 바보, 호구 봉으로는 살고 싶지 않다.

· 그리고 어제 새벽에 장학금 남은 거 네 통장으로 다 보내 놨으니까 다음 주에 미미랑 여수 여행 가는 비용도 거기서 해결하든지 말든지 다 너 알아서 해라. 용돈 없다, 앞으로.


알았으니까, 기차표 취소해.

쁨이는 또다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 그거 아닌데. 내 마음은 그게 아니었는데... 혼자 살아보고 싶어 했으니 학교 졸업하면 독립하라고 했던 것뿐인데... 그 말을 할 때까지만 해도 극적인 화해를 기대하며 얼른 밥 먹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었는데...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대차게 앉아서 듣고 있는 모양새에 욱하고 약이 올라 독립하면 집에도 오지 말라는 둥, 김치도 안 주고, 쌀도 안 주겠다는 둥, 나는 호구 봉이 아니라는 등의 유치찬란한 말들만 짖어대 버렸다.


쁨이가 상처받았으면 어떡하지?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 어쩌면 독립해야 할 사람은 나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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