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녹색 바다는 그렇게 차갑지만은 않았다.
또래에 비해 조금 늦은 나이 이곳에 들어왔다.
20년도 11월 입대, 전역은 22년 시간만 두고 본다면 1년 8개월이지만
그사이 나이가 세 번 바뀐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더 억울하다.
내가 군대에서 어영부영 나이를 먹는 동안
사회의 친구들은 저마다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문득 지금 이곳에서의 시간이 미칠 듯 아까웠다.
그 아까움은 정도를 넘어 조급하고 초조하게 만들더니
이내 숨을 턱 막히게 만들었다.
애가 타 미칠 것 같았지만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정해진 시간을 의무적으로 채워야 했고
그 시간 동안 주어진 임무를 해냈어야 했으니까.
그런 이곳은 마치 판타지 영화 속 용사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갑작스럽게 다른 세계로 소환되어 제 의사와는 상관없이
정해진 임무를 다해야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그런 용사 이야기.
그 용사도 미처 몰랐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친구들은 이미 어른이 되어버렸다는 걸.
당장 막연하게 지나가는 오늘만 해도 너무 아까웠다.
시간이 집착하게 되었고 그래서 쓰기 시작했다.
종이에 볼펜으로 사라져 버리는 시간을 붙잡아 묶어두기로 했다.
그날로 이곳에서의 매일을 기록하게 되었다.
적어도 낭비라는 아깝다는 생각을 떨쳐내야만
비로소 이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오늘도 하루를 남기며 마음속으로 되뇐다.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오늘도 내 인생에서는 단 한번뿐인 하루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