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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되는 식당의 세 가지 특징

식당 주방 알바 이야기

by 이상은

식당 알바를 시작할 때 나는 앞으로 열심히 배워서 식당 하나를 차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장사가 잘 되는 식당을 유심히 보곤 했다.


순전히 알바를 하는 자의 시각인지 모르지만, 잘 되는 식당의 첫 번째 특징은 종업원들 식사를 잘 챙겨주는 집이었다.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밥 먹는 시간이다. 아무리 바빠도 식사 시간만큼은 무조건 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몸을 부리며 일하므로 금방 배가 고파지기 때문인 것도 있다. 나는 주방 알바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뱃살이 다 빠졌었다.


식당이니까 식사만큼은 맛있는 반찬 놓고 실컷 먹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실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같은 반찬만 매일 먹으면 질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주인으로서는 직원들 밥 해 먹이는 일이 엄청 스트레스다. 비용도 만만찮다. 그래도 종업원 식사는 최선을 다하는 게 맞다.

몇 번 가본 집인데 갈 때마다 주방 인력이 바뀌었던 식당이 있다. 고정된 주방장이 없었다. 여주인은 주방 종업원을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했다. 그 집에 자주 일하러 오던 아주머니가 말해 주는데, 사람들이 이 집에 일하러 왔다가 그만둔 이유는 전부 식사가 부실해서였다고 했다. 나는 충분히 공감했다. 내가 일하러 갔을 때 어떤 날의 반찬은 김과 김치뿐이었다.


주방 알바를 하는 동안 제일 좋은 일터로 기억되는 곳은 일의 양도 적당했지만 무엇보다 종업원들에게 먹을 거리를 많이 챙겨준 집이었다. 백반집이었고 주인이 주방장이었데, 이 주인은 잠시라도 짬이 나면 먹을 걸 내놓았다. 식판 놓는 곳에 떡이며, 빵이며, 과자를 수시로 올려놓고 빨리 와서 먹고 일하라고 불렀다. 손님이 뜸한 오후 시간에는 파전에 막걸리도 내놓았다. 주인을 포함해 주방과 홀서빙 종업원들이 다섯 명이었는데 전부 막걸리를 한두 잔씩 들이켰다. 서로 협력도 잘 됐고 나한테 친절하기도 했고 모두가 활기차게 일하던 곳이어서 나도 즐겁게 일했던 기억이 난다. '직원을 가족처럼'은 우선 밥부터 시작해야 한다.


두 번째 특징은 손님 상에 일단 나갔던 반찬은 아무리 아까와도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잔반 처리 문제는 식당 주인에겐 딜레마인 것 같았다. 잔반을 돈으로 계산하면 식재료비의 반을 차지할 정도라고 하니 진짜 아깝긴 하다.


특히 백반 전문집들이 그랬다. 내가 주방 알바를 하던 때는 코로나 이전이었기 때문에 내가 일했던 백반집들의 반 이상이 잔반을 재활용했었다. 주인들은 나에게 재활용하는 이유를 설명하곤 했다. 외부 사람이라 혹시 소문을 퍼트릴까 염려되어서인 것 같았다.

"우리 집 손님들은 단골이고 전부 가족 같은 사람들이니까 먹던 반찬도 다 깨끗해."

코로나 이후에는 어림도 없는 변명이다.

"함부로 음식 버리면 못써. 손도 안 댔는데."

그러면서 손님들이 볼까 봐 몸으로 홀 쪽을 가리고 반찬통에 잔반을 부었다. 재활용 반찬통을 따로 만들어 놓고 저녁에 반찬이 부족하면 그걸 꺼내 썼다.

그런 집에서 일할 때는 종일 마음이 꺼림칙했었다. 홀 쪽이 바빠서 나까지 손님한테 상을 내 가기도 했는데 잔반을 다시 쓴 것 때문에 손님한테 맛있게 드시라는 얘기가 자신 있게 안 나왔다. 식당 주인은 밤에 퇴근할 때면 그날 쓰고 남은 반찬을 나에게 싸줬다. 그때 만일 잔반을 주었다면 나는 집에 와서 바로 버렸을 것이다.


고깃집의 경우 생마늘이나 고추, 상추 등이 손도 안 댄 채 들어오면 그걸 다 버리기가 정말 죄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걸 다 버리는 집도 있었고 재활용하는 집도 있었다. 버리는 집에서 설명하기를, 깨끗해 보여도 고기 기름이 튀었을까 봐 버린다고 했다. 그게 정답이었다.

잔반 처리는 경영자의 기본자세 문제라는 생각을 했다. 처음 식당을 차릴 때는 분명 잔반을 재활용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총매출 대비 수익을 계산했을 것이다. 그리고, 맛있게 만든 반찬을 자신 있게 내놓아야 고객의 잠재의식에도 신뢰가 자리잡지 않을까. 장사도 더 잘 될 것이다. 실제로, 너무 바쁜 집들은 잔반을 살펴서 다시 깨끗하게 차려낼 시간이 없어서 그냥 다 버리고 있었다.


마지막 세 번째 특징은 누군가의 '희생'이었다. 실은 이 세 번째 특징 때문에 나는 식당 창업에 대해 다시 고민했었다. 처음에는 유명 체인점은 비용이 많이 들어 힘들겠지만 작은 식당은 작은 비용으로 혼자 꾸려나갈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었다. 하지만 주방 알바를 하면서 식당 주인이라는 직업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됐다.


기업형 식당이 아닌 작은 식당들은 주인이 주방장인 경우가 많다. 전 직원이 가족인 식당도 많다. 그렇지 않으면 수익을 인건비로 다 써야 하기 때문이다. 온 가족이 일한다 해도 제일 힘든 사람은 주방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대개는 엄마인 여자다.

돼지갈비를 전문으로 하는 집이 있었는데, 사모님은 다리가 아파서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면서 주방일을 하고 있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직접 시장을 보고, 하루 장사를 준비하고, 직원 관리며 장사 마감까지 하루 네다섯 시간만 자고 쉴 틈 없이 일해야 해서 다리가 낫질 않는다고 했다. 카운터를 담당하고 있는 남편은 점심시간에 잠깐 나왔다 들어간 후로 하루 종일 안 보이더니 마감 시간쯤 나타나서 주방을 향해 툭 말했다.

"어이, 힘들어! 내일은 그냥 문 닫아!"

사모님은 대답은 안 하고 혼자 구시렁대었다.

"체, 저만 힘든가. 난 더 죽겠어."


또 다른 식당의 주방장이자 역시 똑같은 시간을 일하는 사모님한테 이 얘기를 했더니 말했다.

"식당은 여자가 살림을 틀어쥐고 희생을 해야 살아남아요. 그렇지 않은 데는 다 망했어요."

이제는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싶지 않은 나이가 됐는데 내가 식당을 운영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창업 상담 전문가가 한 말이 있다. '창업은 또 다른 직장을 갖는 거라는 생각으로 시작해야 한다. 자신의 인건비라도 벌면 성공이다.' 또 다른 상담가에 의하면 '식당은 잘 되나 못 되나 3년이 고비이고 장사가 아주 잘 돼도 5년 후엔 90프로가 나가떨어진다.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시급도 올랐으니 언론에서 말하듯 이젠 진짜 사장보다 알바가 더 나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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