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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

식당 주방 알바 이야기

by 이상은

식당에서 일하는 동안은 머리가 돌덩이처럼 굳어버린 느낌으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유독 심한 날이 있다. 그런 날, 잔소리를 많이 들으면 감정 조절이 잘 안 된다.


잔소리가 심한 집 중에 최악이었던 곳이 있다. 나의 주방 아르바이트 최악의 날도 그 식당에서 있었다.

오전 중이었다. 이 집은 내가 1차로 씻은 그릇들을 세척기에서 2차 세척을 했었는데, 2차 세척이 끝나면 바로 뚜껑을 열어주어야 했다. 그래야 그릇이 빨리 마르기 때문이다. 재료 다듬는 일을 하다가 세척기를 보니 끝나기 10초 전이었다. 나는 뚜껑 여는 걸 잊을까 봐 세척기 옆에 서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주방장이 소리쳤다.

"언니, 거기 왜 그러고 서있어. 일 안 하고!"

'주방장은 내가 10초도 노는 꼴을 못 보는구먼.'

속으로 구시렁대려니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 식당은 워낙 바쁜 집이어서 주방장은 내가 하나의 일을 끝낼 때쯤이면 곧바로 다른 일을 시키고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았었다. 자기 일도 엄청 바쁜데, 어느새 나를 체크하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점심 식사를 하고 나서 주방장은 나에게 커피 마시고 일하라고 했다. 커피를 타서 내 자리로 왔는데 곧바로 일을 시켰다. 할 수 없이 커피를 선반 위에 올려놓고 일을 시작했다. 그녀의 어투는 항상 서두르고 있어서 나까지 커피에 손이 안 가고 곧바로 일을 하게 만들었다. 여기선 뜨거운 커피를 끝까지 마셔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 날따라 화가 올라왔다.


오후에 세 번째 경보가 울렸다. 냉이를 씻을 때였는데, 뿌리에 흙이 너무 많아서 한 뿌리 한 뿌리 씻고 있으니까 한 직원이 와서 잔소리를 했다.

"언니, 그렇게 해서 언제 한 박스를 다 해? 뿌리를 서로 대고 비벼."

"그러면 이파리가 너무 많이 떨어지지 않아요?"

나는 냉이가 아까와서 말했는데 그 직원이 대뜸 핀잔을 주었다.

"언니, 여기서 몇 년 동안이나 계속해온 방법이야. 왜 토를 달아?"

'말 좀 친절하게 하면 안 되나?'

속으로만 삐죽이며 그녀가 시킨 대로 막 비볐다. 다 씻고 나니 역시 이파리들이 바구니에 가득 나왔다. 주방장이 보더니 깜짝 놀라며 말했다.

"이거, 왜 이렇게 많이 떨어졌어?"

"뿌리를 서로 비볐더니."

"그걸 막 비벼대면 어떻게 해요?"

"흙이 너무 많아서... 저 언니가 그러라고 하던데요."

주방장은 그 직원한테는 아무 소리도 않고 나한테만 딱딱하게 지시했다.

"너무 심한 거만 좀 깎아내고, 흙이 안 나올 때까지 물로 네댓 번 씻어요. 다듬는 건 우리가 할 테니까."

나는 화가 턱밑까지 뻗쳐서 대답도 안 하고 일만 했다.


마침내 저녁 피크 타임이 됐다. 이날은 역대급 매출이 일어나는 바람에 전 직원이 파김치가 돼 있었다. 나 역시 머리가 석회질이 돼버린 것 같았다. 그래서 실수가 많았는데, 저녁 내내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나한테 잔소리를 하는 바람에 숨이 막혔었다. 결국 화가 머리꼭지까지 차올라 폭발하고 말았다. 누군가 빈정거리듯 말하면 바로 맞대꾸를 했다.

"언니! 그릇을 그렇게 탑을 쌓으면 소원이 이뤄지나? 빨리 정리해요."

"빈정거리지 좀 말아요! 가뜩이나 힘든데."

"언니! 머리를 써, 머리를!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하는 거 몰라?"

"왜 사람을 그렇게 모욕을 주면서 말을 하나? 뭔 도움이 된다고!"

"언니, 큰 소쿠리는 저 쪽이라 그랬지? 언니도 치매야, 치매. 한번 가르쳐 주면 까먹지 좀 말아요."

"아우, 잔소리 좀 그만해요. 하루 종일 힘들어 죽겠는데 도대체 칭찬 한 마디 하는 사람이 없어."

"어이쿠, 저 음식쓰레기봉투 넘어졌네. 잘했네, 잘했어. 어쨌든 칭찬받았으니 됐지?"


성격 따라 잔소리 스타일도 다 달랐다. 내가 설거지를 멈추고 울그락푸르락 해 있으니까 또 다른 직원이 옆으로 와서 토닥여 주었다.

"참아, 참아. 이것도 다 지나가게 돼 있어."

그의 달래주는 어투가 조금은 효과가 있었다. 나는 진정을 하고 다시 일을 했고 다른 직원들도 입을 닫아 주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은 화를 참지 못하고 터트린 창피함과, 완전히 풀리지 않은 울화로 구깃구깃했다.


주방 아르바이트를 오래 하려면 잔소리에 대한 내성을 길러야 한다. 그래야 잔소리도 농담으로 받아넘기는 여유가 생긴다. 그날 이후 나는 나름대로 방법을 개발했었다.

우선 가슴에 화가 차오른다 싶을 때 스스로 경고등을 켰다. '그날의 운세'를 보고 '오늘 조심해야겠네.' 하듯이 멘털을 미리 강화시켜 놓는 것이다. 그렇게 해놓아도 잔소리를 많이 듣다 보면 고통스럽다. 그럴 때는 내 마음이 마치 광활한 들판인 양 상상하곤 했다. '들판 위에 돌멩이 하나 굴러온다고 뭐 그리 사건이 되겠냐'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구겨졌던 마음이 조금 펴지는 듯했다.

그래도 안되면 다들 하듯이, '시간이 지나면 끝나게 돼 있다. 시간아 빨리 가렴.' 하고 속으로 되뇌는 것이다. 그리고 일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12시간이 흘러 일당을 받는 시간이 돼 있곤 했다.


최악이었던 그날의 끝을 말하자면, 11시, 영업이 끝났을 땐 좀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두 잊은 듯했다. 다들 활짝 웃으며 잘 가라고 손을 흔들었다. 주방장은 며칠 후 나를 또 불렀고 나도 무조건 갔다. 한가로운 시간에는 직원 한 명이 싸온 간식을 나눠먹으며 연예인 뒷담으로 킬킬 킬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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