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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집

식당 주방 알바 이야기

by 이상은

식사 시간에 제일 바쁜 식당은 중국집이다. 홀 손님과 배달이 식사 시간에 집중되기 때문인 듯하다. 내가 일한 중식당은 수도권 변두리의 한적한 이면도로에 있었는데도 너무 바빠서 거의 전쟁터였다.


주방 인력은 나까지 모두 여섯 명. 주방장 급이 세 명이었는데 튀김 전문, 밥 전문, 국수 전문으로 각자 담당하는 분야가 달랐다. 나머지 세 명의 보조들은 주방장을 돕다가 음식이 나오면 주방 창구로 갖다 주는 일을 했다. 홀에는 서빙 담당이 세 명, 전화 주문 한 명, 배달 인력도 칠팔 명은 됐다.


식사 시간이 가까워오자 홀과 방까지 백 수십 개 좌석이 순식간에 찼다. 전화벨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주방 창구에선 거의 초 단위로 주문 음식을 외치는 소리가 들리고, 주방 안은 요리하는 소리, 그릇 부딪치는 소리, 주방장이 보조에게 지시하는 소리들로 시끌벅적했다.


주방장들은 온갖 소음 속에서도 주문 음식을 다 알아듣었고, 종류와 수량을 전부 기억해서 음식을 줄줄이 해냈다. 보조들 역시 어느 음식이 어느 음식과 함께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알고, 주방장들이 만들어 놓은 음식을 이것저것 조합해서는 서둘러 창구로 내주거나 배달 포장대로 넘기면서 '짜장 둘, 볶음밥 하나, 군만두 하나~' 하고 소리쳤다.


주방 출입구에 랩 포장 대가 두 대 있었는데, 한 대는 고정 인력이 붙어서 줄기차게 손을 놀리고 있고, 또 한 곳은 고정 인력이 미처 포장 못한 음식들을 배달 인력들이 직접 포장을 해서 배달통에 넣어 들고나갔다.


내 책임은 두 가지 일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었다. 한 가지는 주방장이 해놓은 볶음밥 위에 계란 프라이 하나를 얹고, 그 옆에 짜장을 부은 후 포장대나 배식구로 갖다 주는 것이었다. 또 한 가지는 군만두를 그릇에 담아 역시 두 곳으로 전달하는 일이었다. 두 가지 일에 불과한데도 실수를 연발했다.

주방장이 계란 프라이를 여러 개 해놓으면 프라이를 접시 위에 5,6층 높이로 겹겹이 쌓아야 하는데, 쌓는 도중 노른자가 터지는 것들이 나오고, 볶음밥 위에 얹으면서 터지고, 바닥으로 떨어지고 등등. 군만두는 배달용, 홀 주문용, 서비스용 등, 용도에 따라 그릇도 다르고 숫자도 다르고 만두를 배열하는 방법까지 달라서 너무 바쁘다 보면 주문이 뭐였는지 까먹고 숫자도 틀리고, 놓는 방법도 틀려서 주방장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북새통의 좁은 통로를 왔다 갔다 해야 했던 나는 요리하는 사람들에게 폐가 안 되도록 몸을 한껏 움츠리고 꼬불꼬불 다녔다. 주방장은 그런 나를 보고 소리쳤다.

"왜 그렇게 주죽이 들어 있어? 누가 뭐라 하나?"

"아니, 저기, 다른 사람들하고 부딪칠까 봐..."

이래저래 오전 동안 아주 혼줄이 났다.


오전 11시부터 두 시간을 그렇게 전쟁을 치렀는데 오후 1시가 되자 신기하게도 주문이 딱, 끊겼다.

오후에는 주방 일은 관두고 설거지만 하라고 했다. 설거지 장소는 넓은 뒷마당에 있었다. 시멘트 바닥에 수도 시설만 다섯 군데가 되고 세 명이 동시에 설거지를 할 수 있게 준비돼 있는 걸 보면서 뭔가 불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역시나 설거지 양이 어마어마했다.


홀에서 뒷마당에 이르는 골목에 파란색 대형 플라스틱 통이 열댓 개가 늘어서 있었다. 폭이 어른 두 명은 너끈이 들어갈 수 있고 높이는 내 가슴까지 오는 거대한 통에 설거지 거리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배달 인력이 수거해 온 그릇들을 비닐봉지 째 쌓아 놓은 것이었다. 그걸 저녁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두 시간 동안 다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비닐을 벗기고 음식을 쏟아내고 정신없이 그릇을 씻었는데, 오후 내내 설거지 그릇 통들이 들어왔다. 여주인은 내가 하는 양을 보더니 결국 홀에서 쉬고 있던 서빙 담당 여자 두 명을 투입했다.


점심 그릇들을 다 치우지도 못한 상태로 나는 허겁지겁 짜장면을 먹고는 곧바로 저녁 설거지를 시작해야 했다. 여섯 시부터 하기 시작했는데 내 딴에는 불이 나게 하는데도 도대체 대형 통들이 줄지를 않았다. 한 번씩 골목 쪽을 돌아보면 파란 통들이 처음 있던 숫자 그대로 늘어서 있었다. 이쪽에서는 분명 빈 통이 나가는데, 금세 비닐봉지들이 수북이 쌓인 통으로 변해 골목 끝에 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저걸 언제 다 하나 걱정되어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여덟 시경, 결국 포장대에서 일하던 남자 두 명이 설거지에 투입됐다. 두 남자가 개수대 하나씩 차지하고 설거지를 시작하는데, 와아, 나는 설거지라는 노동을 그렇게 무술처럼 해치우는 사람들은 처음 봤다. 힘줄이 울퉁불퉁 튀어나온 팔들이 빠르게 공간을 휘젓는데, 두 사람이 마치 속도를 맞추는 듯 덜그럭 덕 덕 덜그럭 덕 덕 하는 소리가 스테레오 리듬을 탔다. 낮에 도와주었던 여자 두 명과는 비교가 안됐다. 나로서는 밤이 새도록 해도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설거지가 한 시간 만에 끝이 났다. 그리고 정확하게 9시에 나는 퇴근했다.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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