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주방 알바 이야기
일용직을 알선하는 사무소에서 나에게 처음 소개해준 식당은 일본식 라멘집이었다. 내가 주방일은 처음이라고 하니까 일단 오후 일만 해 보라고 했다.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5만 원.
테이블이 스무 개가 안 되는 깔끔한 식당이었다. 홀 서빙 한 명. 주방장도 한 명. 둘 다 남자였고 주방장이 주인이었다. 두 사람은 과묵하고 무뚝뚝했다. 내가 웃으며 인사를 하는데도 두 사람 다 고개만 끄덕했다. 나는 내가 뭔가 안 좋은 인상을 주었나 해서 바짝 긴장했다.
'혹시 내가 왕초보라는 말을 들은 걸까?'
불안한 마음에 주인한테 말했다.
"저... 제가 초보자여서 손이 좀 느릴 것 같은데요... 괜찮을까요?"
주인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그리곤 전기 식기 건조기 사용법만 간단히 설명해주고 주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나는 한 마디로 졸았고, 개수대 앞에 딱 붙어서 극히 조심하며 움직였다. 다행히 손님이 많았다. 정신없이 설거지를 했다. 라멘 그릇이 도자기여서 무거웠는데, 힘들다는 생각도 못하고 깨지지 않게 하는 데만 온 신경을 썼다.
8시 반이 넘으면서 홀이 한가해지자 설거지도 확 줄었다. 여유가 좀 생겨서 무심코 주인을 돌아보았는데, 깜짝 놀랐다. 주인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원래 이렇게 유순한 사람이었구나 생각될 정도였다. 겨우 한 시름 덜은 기분이었다.
주인은 저녁 식사로 그 집에서 제일 비싼 라멘을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맛있는 일본 라멘은 처음 먹어봤다. 마지막 설거지를 끝내고 퇴근하려는데 홀 담당은 활짝 웃는 얼굴로 다가와 '오늘 아주 수고했어요.'라고 말했고, 주인은 일당을 내주며 '내일 또 올 거죠?'라고 했다. 나도 환히 웃으며 기꺼이 그러겠다고 했다.
다음날은 공휴일이었다. 근데 이상하게 손님이 없었다. 테이블이 두 개 이상 차 있는 때가 없었다. 손님 숫자가 총 열 명이 안되었던 것 같다. 홀 담당은 TV만 쳐다보다가 슬그머니 일어나 가게 밖으로 어슬렁거리며 나갔다 오곤 했다. 주인은 주방 안쪽에 있는 간이 의자에 걸터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가끔 휴대폰을 보는 듯했지만 대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다섯 시간 내내 개수대 앞에 서서 벽만 쳐다보며 눈을 멀뚱멀뚱 굴리고 있었다.
주방 한쪽에서 말 한마디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주인 때문에 나는 알 수 없는 압박감을 느끼며 '오늘 일당을 안 받겠다고 해야 하나' 하는 걱정을 하곤 했다. 주인이 일어나 주방 밖으로 나가려고 내 옆을 지나칠 때 나는 미안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주저하듯 말했다.
"오늘은 장사가 잘 안 되네요. 오늘은 제가 올 필요가 없는데 왔나 봐요."
주인이 나를 돌아봤다. 가슴이 철렁했다. 주인의 얼굴은 화가 나서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주인은 고개를 돌리고 허공을 잠시 보더니 아무 대꾸도 없이 휙 나가 버렸다. 홀 담당을 쳐다보니 곁눈으로 날 쳐다보던 눈길을 얼른 돌리고 있었다.
순간 '아차' 했다. '이거, 내가 뭔가 금기어를 뱉었구나.'
이후 식당 안에서는 누구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TV 소리만 웅웅대고 있었다. 10시에 퇴근할 때 주인은 나에게 다음날 일하러 오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당시 빵집 알바를 하고 있던 아들에게 이 얘기를 하니 아들이 말했었다.
"엄마, 그런 거 상관하지 마. 원래 알바 하기 편한 집은 장사가 안 되는 집이야. 엄마 편하면 좋잖아. 그렇게 생각하고 말아."
아마 세대차이인 것 같다. 아들과 달리 그 후로도 나는 장사가 안 되는 집에 가서 일하면 속으로 괜히 내가 미안했다. 장사가 안 되는 날 주인의 얼굴을 보면 정말 안쓰럽다. 대개는 너무 울적해져 있어서 나는 주인과 눈도 못 맞췄다. 주방 알바를 하는 동안 나는 장사 문제에 관한 한 절대 아는 척 안 했고 관심조차 끊었다. 그 후로는 식당에 손님으로 가서도 '장사가 안 되는 집' 같다는 식의 말은 절대 입밖에 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