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주방 알바 이야기
주방 알바를 하면서 다시 일하고 싶은 집의 조건을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중간에 한 시간씩 자유롭게 쉬게 해 주는 집을 선택하겠다. 하루 12시간 일하는 사람에겐 아주 꿀 같은 시간이다.
식당은 보통 점심식사 시간과 저녁식사 시간 사이에 손님이 별로 없다. 직원들은 이 시간에 휴식을 갖거나 잠을 잔다. 주식회사급 식당들은 종업원이 잠을 잘 수 있는 방을 따로 만들어 놓았다. 방이 따로 없는 식당의 경우, 홀이 온돌이면 홀 바닥에 누워 탁자를 병풍 삼아 잠을 잔다. 식탁과 의자만 있는 홀이라면 잠을 못 자고 옥수수 뻥튀기를 놓고 수다만 떤다.
나는 식당에서 잠을 자기 싫었다. 그 시간에 식당 밖으로 나가 바람을 쐬는 게 좋았다. 그것만 허락되면 어떤 식당이든 좋았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는 걸 금하는 곳이 많았다. 그런 곳은 다시 불러도 되도록이면 안 갔다.
약 3개월간 고정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식당이 있었다. 기업형 식당이었고 주방장도 월급 직원이었다. 그 식당에는 직원용 방이 하나뿐이었다. 처음 일할 때 그 방을 봤었는데, 방은 넓었지만 젊은 남자들 여러 명과 나이 든 여자들 여러 명이 줄줄이 누워서 자는 걸 보고 나는 그 방에 들어가기 싫었었다. 직원들끼리는 가족 같겠지만 외부인이던 나는 영 불편했었다. 그래서 주방장이 나에게 고정 아르바이트를 제안했을 때 나는 한 가지 조건만 말했었다.
'쉬는 시간에 바람을 쐴 수만 있다면'.
그런데 어느 날, 나의 외출이 문제가 되었다. 그곳에선 정규 직원들이 휴식 시간에 밖에 나가면 안 되었는데 나만 밖으로 나가니까 매니저가 주방장한테 한 마디 했다고 한다. 큰일이었다. 주방장이 말했다.
"식당에선 종업원들이 중간에 밖에 나가면 안 되거든."
내가 반발했다.
"일반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에 밖에 나가서 자유롭게 있다가 오잖아요."
그때 주방장이 한 대답에 나는 맥이 빠졌다.
"8시간 노동하는 사람하고 12시간 노동하는 사람은 다르죠."
"뭐가 다른데요?"
"12시간 일하면 힘드니까 잠깐이라도 쉬라고 건물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거죠."
"저는 공원에 앉아서 쉬는 게 더 피로가 풀려요."
주방장은 직원들을 위해서라고 했지만 나는 문득 젊은 직원들이 그 시간에 잠깐이나마 애인을 만나고 오면 오히려 더 힘이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혹시 여기 사장은 젊은 직원들이 밖에 나갔다가 그대로 도망가면 어쩌나 하는 걸까?'
결국 나는 주방장과 타협을 했다. 주말에만 한 시간씩 나갔다 오고 평일에는 식당 안에서 한 시간을 쉬기로 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나는 점점 식당 일이 싫어졌고 주방 아르바이트를 그만둘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 일은 많이 익숙해져 있었다. 내 담당은 재료들의 일차 손질과 설거지, 그리고 저녁에 영업이 끝날 때쯤이면 그날 썼던 고기판과 기름받이, 물받이 통, 후드들을 씻는 일이었다.
그중에서도 저녁에 불판 4종 세트를 씻는 일을 잘했었다. 잘했다는 건 속도가 빨랐다는 뜻이다. 다른 직원들은 불판 닦는 일을 제일 싫어했는데 초보자인 나는 그 일을 제일 즐겨했었다.
손이 델만큼 뜨거운 물을 대형 개수대에 받아놓고 주방세제를 반 통 가까이 들이붓고는 기름받이와 물받이 통 등을 왕창 왕창 차례로 넣는다. 물이 뜨겁기 때문에 면 장갑 위에 다시 고무장갑을 끼고 더운 수증기가 뿜어져 올라오는 곳에서 씩씩하게 불판을 닦았다. 한 번에 100세트 가까이 됐으니, 깨끗한 물로 가시는 일을 포함하면 800번씩 수세미를 돌려야 했던 셈이다. 그 일을 하고 나면 그날 아르바이트가 끝난다는 생각 때문에 그렇게 신나게 해치웠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불판 닦는 일을 잘하니까 직원들이 나한테는 다른 잔소리를 안 할 정도였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뜨거운 물로 작업하다 보니 일이 끝나고 나면 머리는 물론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었다. 그대로 퇴근을 하면 몸에서 땀 냄새가 심하게 났다. 퇴근 후 바로 지하철을 타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11시가 넘은 시간이어서 버스는 끊겼고 근처 공원에서 5분 정도만 몸을 털며 있다가 할 수 없이 지하철에 오르곤 했다. 지하철 내에서는 가능한 한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있었다. 세 정거장뿐이 안되었던 게 다행이었다.
하루는 지하철에서 아들을 만났다. 자기 친구와 함께 하필 내가 있던 칸으로 아들이 들어왔다. 아들이 반갑게 나한테 다가오는데 순간 나는 모른 척하고 싶었다. 아들이야 그냥 넘기겠지만 아들 친구가 내 몸에서 나는 땀 냄새 때문에 몹시 불쾌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아들은 아무 얘기도 안 했다. 나도 그날 나한테 땀냄새가 났었는지 아들에게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나는 주방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어야겠다고 최종 결정했다. 이제는 8시간 노동자로 일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알아봐야 하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