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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알바에서 얻은 것

식당 주방 알바 이야기

by 이상은

식당 주방 알바를 8개월 가까이했다. 월 200만 원 가까이 벌어 생활비에 보탰으니 그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몇 가지 얻은 것도 있었다.


첫째, 주방 일 전체의 실력이 부쩍 늘었다.

설거지 속도는 물론이거니와 각종 식재료를 다듬는 일도 가뿐히 해냈다. 과거에는 감자 깎는 일, 파 다듬는 일, 나물 다듬는 일같이 손이 많이 가는 일은 친정 엄마가 전부 했었다. 그런데 이후로는 친정 엄마의 손놀림이 답답해서 내가 후딱 해치우곤 했다.

신기한 건, 반찬 실력도 늘었다는 점이다. 나는 초보였기 때문에 조리 쪽은 아예 시키지도 않았었는데 희한한 일이었다. 이유를 생각해 보면, 하나는 귀동냥인 듯하다.

"천일염 볶은 데다 녹차 가루 넣으면 녹차 소금 되는 거야. 별 거 없어."

"떡볶이엔 양배추를 왕창 넣어야 맛있지."

이런 정도의 사소한 팁이었는데, 집에서 반찬 하다 보면 알뜰 정보였다.

또 하나의 이유는 주방 일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인 것 같다. 식당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설거지를 하다보니 집에서 하는 주방 일이 우스워 보였다고나 할까. 그냥 느낌이 오는 대로 툭 툭 하다 보면 반찬이 완성되고 게다가 맛이 있었다.


삭당 알바에서 두 번째로 얻은 것은, 앞으로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겠다는 배짱이 늘었다.

이것도 식당에서 극기 훈련을 했기 때문에 얻은 배포인 것 같다. 하루 12시간 쉬지 않고 육체노동을 주당 5일씩 반년만 해 보면 아마 누구나 그런 마음이 들 것이다. 물론 원래 주방장이던 사람 말고 나처럼 주방 보조로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 얘기다.


세 번째, 그동안 내 마음을 지배해 온 각종 구매욕을 스트레스 없이도 털어내는 자제력이 늘었다.

최저 시급이라는 돈은 사람을 욕구불만으로 내몰 줄 알았는데, 오히려 돈의 가치를 뇌리에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1만 원이라는 돈이 얼마나 힘들게 구해지는 것인지 깨닫고 나면 욕망을 함부로 폭주시킬 수 없다. 그렇게 자제하는 훈련을 나도 모르게 계속하다 보니 일상이 되었던 것 같다.


식당 알바를 한 이후 나는 몇 년 전보다 수입은 적었지만 돈에 쪼들리는 일은 오히려 줄어들었고 심지어 저축도 했다. 이 분분은 주방 직원들한테 배운 게 많다. 내가 만난 주방장이나 종업원 중에 나보다 못 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모두 자신만의 계획을 갖고 착실하게 돈을 모으고 있었다. 서빙하는 20대의 남자 직원들도 돈을 얼마씩 언제까지 모아 무엇을 어떻게 이루겠다는 마스터플랜을 확실하게 갖고 있었다. 아버지가 식품 유통업을 하므로 장차 식당을 차리고자 다른 식당에서 경험과 실전을 위해 일하고 있는 젊은이, 수도권 근교에 큰 땅덩어리를 갖고 있지만 놀면 뭐하냐고 일을 나오는 아주머니, 주택부금이 어느새 2천만 원이 쌓였는데 이걸 어느 자식한테 줄까 행복한 고민을 하는 아주머니 등등, 전부 나보다 짜임새 있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네 번째, 나는 육체노동을 하다 보면 정신적으로 피폐해질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나의 허황된 자아도취를 걷어내 주었다. 그동안 나는 나도 모르게 '갑'이 되고 싶은 욕망 속에서 살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주방 아르바이트를 하는 내내 심리적으로 위축이 됐었던 것이 그 때문이었다.

이젠 갑이건 을이건 다 미혹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더 이상 내가 알바 한다는 것 때문에 위축되진 않는다. 뭔가 극복하고 난 다음의 자신감 같은 것이다. 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마지막으로 얻은 것은 내가 식당을 할 경우의 모델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바로 낚시터 식당이다. 내가 일한 식당 중 외견상으로는 제일 마음에 들었었다. 낚시하러 오는 사람들을 상대로 식사를 제공하는 곳인데 식당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산과 물이 있어서 정말 좋았다.

손님은 확정돼 있었고 일은 한가했다. 그 집은 요일마다 메인 찌개를 정해 놓고 점심 저녁을 그걸로 해결했다. 뷔페식이어서 밑반찬들만 여러 가지 해 놓으면 신경 쓸 일이 없어 보였다. 다른 메뉴는 라면과 비빔국수, 물국수가 전부였다.


낚시터 주변의 언덕을 개간하여 농사를 짓고 있었다. 거기서 나오는 채소들도 반찬으로 올라왔다. 여주인이 주방을 맡고 있고 남주인이 농사와 카운터를 보고 있었다. 남편은 틈만 나면 밭에 나갔다. 그런 남편이 여주인은 몹시 불만이었지만 남편은 모른 척했다.

많은 장년층이 귀향을 꿈꾸듯이 나도 농사나 지을까 고민한 적이 있었다. 농사는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에겐 누구나 로망 같은 것이리라. 물론 그런 자세로 농사지으면 폭망이라는 걸 다들 알고 있으니, 선뜻 결정할 수는 없다. 낚시터 식당은 바로 그 로망을 이루는 데 딱이었다.


무엇보다, 한가한 오후 시간에 낚시터 호변을 휘적휘적 돌아다니는 맛은 낭만적이라 할 만큼 좋았다. 낚시꾼들 구경도 하고, 텃밭에서 토마토도 따 먹고, 인적 없는 따가운 햇빛 속에서 혼자 이방인 감성에 젖기도 하고, 산 밑에서 나물도 캐고, 그늘에 앉아 졸기도 하고. 일하러 갔는데 여행을 온 기분이었다. 밤에 퇴근하면서 쳐다본 밤하늘엔 별이 가득 흐르고 있었다.


그 집에서 부르면 언제든 가려고 했는데 아쉽지만 3일을 일한 후에는 다시 가보지 못했다. 내가 너무 초보라 주인으로서는 마음에 안 찬 것 같다. 여주인은 다리가 아파서 알바한테 주방을 종일 맡겨야 할 때가 많은데 아무래도 나 갖고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듯했다.


내가 만일 식당을 하게 된다면 낚시터 식당부터 알아봐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 시작하면 거기에도 수많은 장애가 있겠지만 오후의 낭만만 있다면 뭐든 감수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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