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영업 알바 시작

정수기 관리와 카드 모집인 알바 이야기

by 이상은

식당 주방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결정적인 이유는 손가락이 아파서였다. 갑자기 손을 많이 써서 그런지 어느 날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손 전체가 부어 있고 중지와 약지 손가락이 잘 펴지질 않았다. 억지로 펴면 드드득하며 뻑뻑하게 펴지곤 했다. 10분 정도 몸을 움직이고 나면 손가락도 유연해지긴 했는데 얼얼한 느낌은 하루 종일 갔고 아르바이트를 연일 계속하면 일하는 도중에도 아팠다.


일을 쉬고 병원에 다녔었다. 정형외과 의사의 설명으로는 손가락을 움직여 주는 신경을 보호하고 있는 호스 모양의 근육에 염증이 생겨서 그렇다고 했다. 심해지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겁이 나서 병원에 다녔는데 별 효과는 없었다. 약은 진통과 소염제일 뿐이었다. 치료 방법은 일을 안 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주방 아르바이트는 내가 일하고 싶은 날 일하고, 또 그날 돈을 받기 때문에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기존에 하던 광고 영업도 매월 며칠은 써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루 12시간을 주방에만 있어야 한다는 것과 아픈 손가락 때문에 결국 포기했다.

각종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뒤졌지만 마땅한 일자리가 없었다. 당장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시간을 갖고 자격증을 딴다거나 느긋하게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결국은 나의 전공이라 할 수 있는 영업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하나는 정수기 관리 및 판매하는 일이었고 또 하나는 신용카드 모집인이었다.

알바 사이트에서 정수기 관리자 모집 광고를 보았을 때 우려했던 점은 이 일도 혹시 친지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영업은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면접 볼 때 영업을 못하면 그만두어야 하는가를 물어봤다.

"절대 아니에요. 한 사람 당 월 200개 안팎의 정수기 관리를 맡기는데요, 영업 안 하고 그것만 관리해 줘도 고마운 일이죠."

"관리해주던 집에서 새로 물건을 살 경우는 어떻게 되지요?"

"그게 판매 실적이 되는 거죠. 그러면 판매 수당도 받고 관리 수당도 올라갑니다."


새로운 고객을 개척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도 없고, 성실하기만 하면 관리비와 영업 수당을 챙길 수 있다는데 안 할 이유가 없었다. 교육을 받으면서 듣게 된 한 강사의 얘기는 나에게 영업 의욕을 북돋워주었다.

산등성이 마을을 자동차 없이 두 발로 걸어 가가호호 방문하며 정수기 관리와 영업을 해온 사람에 대한 얘기였다. 월간 약 500만 원을 번다고 하는데, 걸어 다니면서 어떻게 그렇게 영업을 잘하는지 비결을 물었다고 한다. 그 사람의 대답이 마음에 와닿았다.

"우리 일은 하면 할수록 쉬운 일이에요. 오래 하는 게 비결이죠."

말하자면 정수기를 관리하러 고객 집에 꾸준히 가다 보면 그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친해지게 된다. 이해관계가 아니라 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때부터 소개의 소개가 이어진다는 얘기였다.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논리였다. 선배의 강의는 '1년만 버텨라'는 말로 끝맺었고, 나는 속으로 '오케이, 1년은 해 보자.'라고 했다.


카드 모집인의 경우는 카드 회사에서 전화가 왔었다. 아르바이트 사이트에 이력서를 공개하면서 희망 직종에 영업을 포함시켰기 때문이었다.

정수기 일을 하려고 이미 마음먹은 상황에서 이런 전화가 오면 나는 보통 설명도 안 들어보고 끊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전화가 많기 때문이다. 기획 부동산이니, 시장조사 업무라느니, 출판 업무, 계약 대행, 채무 상환 대행 등, 자세히 알고자 하면 무슨 일인지 수상한 곳이 많다.

그런데 카드회사 전화를 받았을 때, 그냥 끊어버리지 않고 계속 설명을 듣게 된 것은 전화를 건 사람의 성의 있는 어투 때문이었다. 초보자 티가 나는 어리숙한 말솜씨가 오히려 진실하게 들렸다. 그 느낌 때문에 직접 만나 자세한 설명을 들어 보기로 했고, 신용카드 모집인도 해 보기로 작정했다.


정수기 관리와 카드 모집인 중 하나만 선택하여 올인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어느 쪽 일이 더 나을지 몰라서 일단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시작하기로 했다.

예상하기로는 카드 모집 수당은 초기에 좋다가 시간이 갈수록 떨어질 것 같았고 정수기 쪽은 처음엔 수입이 적어도 시간이 갈수록 많아지리라 추측되었다. 영업하던 감으로는 그랬다. 그렇다면 둘 다 시작한 후 어느 시점에 이르러 하나를 버리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후일 따져보니 두 일의 전망에 대한 예상은 맞았다. 하지만 실제 손에 쥐는 수익 면에서는 어느 쪽이나 초라했다. 나의 경우가 그랬다는 말이다. 나의 경우란 당장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나의 사정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도 성공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keyword
이전 08화식당 알바에서 얻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