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모집인 알바 이야기
영업 아르바이트는 시작하기 전에 회사에서 영업자의 마음가짐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교육의 초점은 대개 영업자의 의욕을 고취시키는 데 맞춰져 있다. 그래서 항상 감동 드라마를 동원한다. 문제는 이 감동 드라마가 너무 전설적인 사례여서 처음 들을 때는 분기탱천하지만 며칠만 지나면 어이없이 높은 장벽임을 깨닫고 만다는 점이다. 마땅한 직장이 없어서 아르바이트로 흘러들어온 풀이 죽은 사람에게 이런 사례는 사기 캐릭터로 보인다.
나도 신용카드 모집인을 시작했을 때는 윗사람이 얘기해준 사례를 교본으로 삼았었다. 한 달에 60건씩 모집해서 다섯 달만에 300명을 돌파했다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그의 영업 방법은 무작정 걷는 것이었다. 길을 따라 걸으면서 길 가에 늘어선 가게들을 하나씩 방문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 세 시간씩 걸었다고 한다. 뚜벅이 영업으로 하루 평균 2건씩 만들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그 사람과 나의 영업 재주가 동등하다는 전제 하에 단순 계산하면, 한 달에 열흘만 하루 세 시간씩 뚜벅이로 일하면 20건을 만들 수 있고, 몇 건 더하면 기본급과 수당 합해서 백오십만 원 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걸 못하겠나. 영업 재주가 그 사람보다 못하다면 토요일과 일요일 종일 하면 되지 않겠어?'
당시 나는 본업인 광고 영업과 정수기 관리, 카드 모집인 등, 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하기로 했으므로, 카드 영업은 주말을 활용하면 되겠다고 좋아했다.
토요일 오후, 계획대로 뚜벅이 영업을 시작했다. 처음이니 동네 근처의 찻길을 두 시간 동안 걸어 다니며 길거리에 늘어서 있는 식당, 미용실, 각종 가게를 50 군데 정도 들렀다.
"카드 회사에서 나왔습니다. 저희 카드 있으세요? 없으면 하나 만드셔요. 저희 카드요, 어디서나 다 할인되고요, 자영업 하시는 분들한테는 정말 혜택이 많아요."
하나도 못 만들었다. 다들 이미 있다고 하거나 카드는 절대 안 쓴다고 하거나 아내가 다 관리해서 모른다고 하거나 힐끗 쳐다보곤 손만 휙휙 내젓거나 했다. 한 식당 주인은 늦은 점심을 먹던 중 내가 들어가자 손님인 줄 알고 벌떡 일어났다가 카드 만들라고 하니까 헛웃음을 날리며 도로 앉은 후 다시는 쳐다보지 않았다.
뚜벅이 영업은 안되겠다 싶었다. 하지만 한번 하고 포기하면 증거 불충분인 듯하여 하루만 다시 해보자 했다. 월요일 오후, 집에서 좀 더 멀리 진출했다. 근처의 상가 밀집 도로를 무작정 돌며 세 시간을 써 봤다. 토요일과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고 나는 여기저기 돈만 썼다. 고깃집에서 돼지고기 1킬로그램을 사고, 마트에서 고추참치와 소주 한 병을, 복권방에선 로또 5천 원 어치를 구매했다. 구매 목록이 처량해 보였다.
나는 살면서 힘든 영업을 많이 해 봤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절한다고 마음에 상처를 입지는 않는다. 다만, 뚜벅이 영업이라는 것이 과연 효율이 있는가 하는 문제가 고민이었다. 겨우 이틀 해보고 효율을 말한다는 게 우습긴 하지만 나에게 기적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는 이상 여기서 기대를 접어야 했다.
내가 카드 모집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었다. 뚜벅이 영업과 친지 영업.
대형 할인 매장에 가면 테이블을 놓고 카드 모집을 하는 곳이 있다. 회사 대 회사의 계약 하에 영업 활동을 할 수 있는 경우로, 그걸 담당하는 조직은 따로 있었다. 그 외에는 대개 불법이었다. 예를 들어 백화점 매장을 돌면서 고객 옆으로 스윽 다가가 '카드 만드세요.' 하는 건 불법이다. 또한, 사전 연락 없이 무작정 가정집 문을 두드리고 영업을 하는 것도 안된다. 길거리에서 파라솔을 세워놓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권유하는 것도 불법이다. 이런 경우 신고하면 포상금도 나온다.
결국 나는 친구와 친지 영업으로 급한 불을 꺼야 했다.
"미안하다. 한 개씩만 만들어 주라."
친구, 친구의 친구, 친구의 딸, 딸의 친구, 아들의 친구 등등 가지를 뻗어갔다. 내 생각에 카드 만드는 건 보험 들어 달라고 부탁하는 것보다는 민폐가 덜할 것 같았다. 친구니까 연 회비 정도는 감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부탁해 보니 수월한 게 아니었다.
카드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을 때 반응들을 보면 어떤 이들은 내가 이 사람한테 이렇게나 친한 사람이었나 할 정도로 고마운 사람도 있었다. 내가 있는 곳까지 찾아와서 만들어 주고, 자기가 못 만들면 자기 친지라도 찾아내 만들어주는 사람, 두 명이나 해 주고도 더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하는 사람 등, 예전에는 몰랐는데 알고 보니 정말 귀하게 생각해야 할 친구였다.
반면 어떤 사람은 그냥 말로만 친한 척했을 뿐이구나 하는 사람도 있었다. 카드 하나 만드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이리 재고 저리 재나 하는 의구심이 든 적도 있었다. 카드 만들면 낭비하게 된다고 안 만들겠다는 사람, 다른 카드 있다고 안 만들겠다는 사람을 보면 '만들고 나서 쓰지 않아도 되는데', '다른 카드 쓸 거 이 카드 쓰면 안 되나' 하는 생각에 섭섭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이해가 됐다. 카드는 외상 거래이기 때문에 낭비하게 돼 있다. 몇 천 원 단위로 아껴가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망설일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러니, 하나라도 만들어 준 사람은 진짜 고마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더 소개해 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도 했지만, 내가 그 사람의 입장일 경우를 가정해 보면 아마 나도 '나 하나 해 줬으니 됐다'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그 이상 바라는 것은 친구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었다.
카드 영업 한 달간 총 15명의 친지에게 부탁을 했었다. 각기 나온 반응을 보고, 나중에 보답을 하기 위해 친지들을 마치 등급 나누듯이 분류했던 기억이 난다.
카드 모집 영업은 초기에는 생활비에 보탬이 되었다. 하지만 내 경우는 친지 영업을 한번 돌리고 나면 그걸로 끝이 나는 성격의 영업이었다. 게다가 쓰리 잡이라는 게 결국은 과부하로 나타나서 카드 영업은 두 달 만에 포기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