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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불신

등하원 도우미 알바 이야기

by 이상은

등하원 도우미는 나로서는 가장 편안한 아르바이트였다. 아이들이 영리해서 이유를 설명하면 이해도 잘하고 말도 잘 들었다. 몇 번의 갈등이 있었지만 아이들보다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코로나가 시작된 지 여러 달 지났을 때였다. 아침에 아이들 집에 도착했는데 아이들 엄마는 회사에 이미 출근했고 할아버지가 나왔다. 아이들 할아버지는 현관문 앞에서 체온계를 내밀며 체온부터 재 보라고 했다. 체온은 코로나 초기에 몇 번 재다가 그 후로는 몸에 이상 신호가 없는 한 그냥 들어가서 일을 시작했었다.

할아버지는 아마 그런 나의 무책임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별 이의 없이 체온을 쟀는데, 37.4도가 나왔다. 이상해서 다시 쟀더니 37.5도가 나왔다.


"제 자동차가 햇빛 속에 오래 있어서 안이 뜨거웠는데요, 에어컨을 안 켜고 그냥 와서 그런가 봐요."

감기 증상도 없었고 몸에 발열감도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변명하듯 말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밖에서 20분 있다가 다시 와서 재 보라고 했다. 지하 주차장에서 20분 있다가 올라갔다. 37.2도가 나왔다. 할아버지는 안심할 수 없다며 다시 나갔다 오라고 했다.

'37.5도까지는 괜찮은 거 아닌가?'

나는 조금 울화가 치미는 기분으로 주차장에서 다시 20분을 채우고 올라갔다. 그런데 또 37.4도와 37.5도를 왔다 갔다 했다.

'혹시 이거 울화증 온도인가?'

속으로 걱정하고 있는데, 할아버지는 아무래도 위험하다면서 오늘은 집에 가서 쉬라고 했다. 나는 일을 쉰다는 생각에 좋아서 얼른 그러겠다고 했다.


혹시 몰라서 집으로 오는 길에 병원에 들러 체온을 쟀다. 36.7도가 나왔다.

집에 온 후 아이들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병원에서 정상 체온이라 들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나는 그녀가 다행이라고 대답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걱정되니까 나보고 며칠 쉬라고 했다. 마음이 조금 싸해졌다.

'내가 병원 갔다 온 걸 못 믿겠다는 건가?'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아이들 할머니 할아버지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다. 우리 집 자녀들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왔었다. 한 명은 직장 다니고 한 명은 대학생이라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사실대로 얘기했다. 혹시 우리 집이 코로나 바이러스 위험지대로 분류될까 봐 걱정이 되어 추가 설명을 붙였다.

'친정 엄마가 93세이시고 천식도 있으셔서 우리 집은 나뿐 아니라 애들도 엄청 조심하고 있다. 나는 외부 모임을 아예 안 나가고 애들하고도 식사를 따로 한다. 자가용으로 출근하는 것도 내가 코로나 걸리면 우리 엄마는 큰일이기 때문이다.'

다 듣고 난 후에도 그들은 아무 대답을 안했다. 마치 내 말을 믿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마 안 믿는다기보다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불안한 마음이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내 체온이 병원에서 정상으로 나왔다는데도 나보고 며칠 쉬라고 한 게 무척 섭섭했었다.

'내가 코로나 때문에 어떻게 조심해 왔는지를 못 믿고 있다는 거잖아.'

그래도 아이들 엄마에게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질본 지침에 따르면 코로나 증상이 의심되면 3~4일 집에서 쉬면서 증상을 지켜보라고 했으니 이번 주는 화수목금 4일간 쉬고 주말까지 쉬면 완전 휴가구나 생각했다. 생활비가 펑크 나긴 하지만 '이럴 때 쉬지 뭐.' 했다.


그런데 몇 시간 후 아이들 엄마가 다시 전화를 했다. 화수목만 쉬고 금요일은 와 달라고 했다. 아이들 등원시켜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순간 기분이 나빠졌다.

"아, 글쎄요. 제가 금요일도 쉬는 줄 알고 스케줄을 만들어서요... 한번 볼게요."

스케줄은 물론 없었다. 그들에게 뭔가 휘둘리는 게 싫었다. 그동안에도 일을 며칠씩 쉰 적이 있었고 내 급여는 매월 들쭉날쭉했기 때문이다.

'화수목 쉬라는 게 코로나 걱정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오지 말라는 건가?'

'혹시 나한테 나가는 돈을 아끼려는 건가? 그럼 내 3일분 일당은 어디서 메꾸라고?'


불만이 시작되자 그동안 무심하게 흘려보냈던 점들까지 마음에 상처를 주기 시작했다.

처음 계약할 때 아이들 엄마는 나에게 일하면서 꼭 마스크를 써 달라고 했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마스크를 쓰고 아이들을 봐왔다. 하지만 그 집 사람들은 아무도 집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식구들이건, 친척이건 모두 집에 들어오자마자 마스크를 벗어던졌다. 나만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동안은 그게 그리 문제로 생각되지 않았다. 어느 집이나 식구들이 집에 오면 마스크를 벗으니까. 그런데 그것도 화가 났다.

'바깥에서 코로나를 묻혀올 수 있는 확률은 그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사람을 부리는 자기네는 상류 시민이고 부림을 받는 나는 하류 시민이란 말인가?'

기분 나쁜 생각들이 작은 복수를 하게 만들었다. 나는 금요일에 갈 수 없겠다고 말했다. 코로나 잠복기가 길면 2주라니까 정 걱정되면 나 말고 다른 사람 불러도 상관 않겠다고 했다.


복수라고 하지만 2주를 쉴 경우 실은 나만 손해였을 것이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하고 그만큼 생활비는 빚이 되고 새로운 일에 적응하려면 그만큼 힘이 더 들 테고...

전화를 끊고 나서는 그날의 해프닝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열심히 뇌를 굴렸다.

'체온을 자꾸 잰 건 매사 최악에 대비하려는 마음가짐으로 이해하자. 금요일에 와 달라고 한 건, 3일만 지켜보고 증상이 없으면 괜찮다는 말로 해석하자. 마스크 문제도 나를 걱정한 것이라고 생각하자.'

아이들 엄마가 월요일부터 다시 와달라고 연락이 왔을 때 나는 곧바로 '알겠습니다.'하고 대답했다.


그로부터 1년 이상을 그 집에서 일했다. 중간에 아이들 엄마가 월급제로 해 줘서 생활비 걱정도 안 하고 편안하게 아이들을 돌볼 수 있었다. 식구들은 아무도 나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고 항상 고맙다는 말만 해 줬다. 아르바이트를 그때처럼 기분 좋게 한 적이 없으니 고마움은 내가 더 컸다. 나만 마스크를 썼던 문제도 결과적으로는 좋은 일이었다. 그 집에서 아이들까지 온 식구가 감기에 걸렸어도 나는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나는 원래 감기를 자주 앓았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감기를 한 번도 앓지 않았다.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해외로 나가는 바람에 나도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 후 다른 집을 찾지 않았다. 자격증이나 하나 따려고 잠시 쉬었다. 지금도 가끔 아이들이 얼마나 컸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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