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떤 경우든 아이들 잘못은 없다.

등하원 도우미 알바 이야기

by 이상은

청소 알바를 그만두고 등하원 도우미 일을 시작했다. 청소 알바를 그만두려던 차에 마지막까지 갔던 집 할머니가 외손녀 두 명을 봐 달라고 해서 바로 시작했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처음이어서 걱정되긴 했지만 나도 두 아이를 길러낸 엄마이니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 네 살, 여섯 살 된 여자 아이 두 명을 낮동안 돌보기로 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활동량이 많은 어린아이들이다 보니 사소한 사고에 항상 노출돼 있기 때문에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 수 없었다. 놀이터에 나가면 두 아이가 각자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기 때문에 나는 양쪽으로 왔다 갔다 해야 했다.

나이가 두 살 차이에 불과해서 뭔가 욕심나는 것이 있으면 서로 양보하기보다는 일단 빼앗고 본다. 곧바로 싸움이 나고 빼앗긴 아이는 울고 나는 중재를 하느라 애를 써야 했다. 집안에서든 바깥에서든 가만히 앉아 쉴 시간이 없는 일이었다.


아이들 식사와 생활습관 관리도 만만치 않았다. 뚱뚱해질까 봐 기름기와 단 음식, 인스턴트를 자제시켜야 했고, 고기만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야채를 어떻게든 먹여야 하고, 간식은 주되 과자 사탕 아이스크림도 자제, TV 보는 시간 자제, 아파트에서 뛰는 것 자제, 시끄럽게 소리 지르는 것 자제, 등등 끊임없이 아이들을 통제해야 했다. 통제가 안되면 사탕과 TV 시간을 바꾸는 식의 협상 거리를 매일 만들어내야 했다. 요즘 아이들은 자제력이 너무 많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스트레스가 과중하다는 얘기다.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스트레스가 배가 된 듯하여 진짜 측은해졌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 부모가 특히 신경 쓰는 것 말고는 아이들에게 되도록 많은 걸 허용하려고 했었다. 밥을 하려고 쌀을 씻을 때 아이들이 와서 같이 쌀을 휘저으려 하면 그냥 하게 했다. 나중에 바닥 청소를 해야 하는 건 내 몫이지만 어쨌든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은 노는 거고 나의 노동 시간에도 들어가는 거니까 하게 했다. 놀이터에 가면 모래더미가 있는데 다른 집 아이들은 부모가 금지해서 모래장난을 안 했다. 나는 옆에서 물휴지와 손소독제를 들고 조금이라도 놀게 했다. 될 수 있으면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안 받도록 '절대 안 돼'라는 말은 안 쓰려고 애썼다. 물론 '절대'를 빼고 '안돼.'는 좀 썼지만.


한 달 여 동안 그렇게 조심해서 보냈는데, 하루는 아주 난해한 문제에 봉착했다.

아이들이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게 안됐어서 점심을 먹고 나면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가거나 근처 등산로 입구에 조성된 작은 숲에 데리고 갔었다. 숲에 갈 때는 보통 바지를 입고 갔었는데 그날은 큰 아이가 치마를 입고 가겠다고 고집했다. 나는 치마를 입으면 자칫 넘어질 경우 다리에 상처를 입으니까 안된다고 말했다. 아이는 내가 이유를 설명하면 대개 수긍하고 말을 들었었는데 그날따라 아이가 컨디션이 안 좋은지 계속 떼를 썼다. 나는 바지를 입지 않으면 나갈 수 없다고 강경하게 말했고 아이는 끝내 울음을 터트리며 소리쳤다.

"할머니, 꼴도 보기 싫어!"


나는 아이에게 그렇게 심한 말을 하면 못쓴다고 설교를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는 나와 동생 모두에게 밉다고, 꼴도 보기 싫다며 울었다. 나는 상대방에게 꼴도 보기 싫다고 하는 말이 얼마나 나쁜 말인지 가르치기 위해 또다시 장황하게 설명을 했다.

"만일 네 친구가 너한테 꼴도 보기 싫다고 말하면 너 마음이 어떻겠어? 할머니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고 위해 주는데 네가 할머니한테 그렇게 말하면 할머니 마음이 아프잖아."

아이가 울면서 대답했다.

"나도 처음엔 할머니한테 마음을 많이 썼는데 이젠 할머니가 싫어졌어."

나는 화가 나는 어투로 대답했다.

"그래? 그럼, 할머니 이젠 오지 말까?"

아이는 울먹이면서 잠시 있더니 물어왔다.

"할머니 안 오면 우린 어떻게 되는 거야?"

"그러면 엄마가 다른 할머니를 불러서 너희를 봐주도록 하겠지."

"그래서 할머니 지금 갈 거야?"

"지금은 갈 수 없지. 저녁에 엄마 오실 때까지는 너희 봐야지. 어쨌든 오늘은 밖에 나가지 말자. 치마는 안돼. 더워서 스타킹도 못 신는데 넘어지면 큰일 나."

그때 아이가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난 지금 할머니를 계속 오라고 할지 아니면 엄마한테 다른 사람을 불러 달라고 할지 고민하는 중이야."


나는 아이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멍하니 아이를 바라보며 한참이나 있었다. 속으로는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혹시 아이들 엄마 아빠가 아이들 앞에서 저런 식으로 말했던 걸까?'

'아이들까지 나를 쓸까 말까를 갖고 협박을 할 정도라면 뭔가 나의 정체성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혹시 내 모습이, 혹은 그동안의 내 처신이 너무 비굴하거나 하찮게 보여서 아이들까지 나를 돈 주고 쓰고 버리는 사람으로 보는 건가?'

'혹시 내가 아이에게 지나치게 역정을 내서 아이도 화가 나서 나를 공격하는 것일까? 어른들끼리도 별일 아닌 걸로 나투다가 나중엔 지독한 말이 오가기도 하니까.'


여러 생각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오후 내내 아이들을 돌보면서도 내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이런저런 긍정적인 생각들을 끌어내려고 애썼다.

내가 보기에 아이들 엄마는 무척 예의 바르고 과묵한 사람이었다. 그동안 나한테 뭔가 불만이라거나 고쳐 달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이들을 친정 엄마처럼 사랑해 줘서 고맙다는 말만 했었다. 그러니까 아이들 앞에서 그런 말을 했더라도 악의는 결코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잊어버리려 애썼지만 며칠이 지날 때까지 내 마음의 한 편에 쌓인 찌꺼기를 다 쓸어버리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다 잊어버린 듯했다. 이튿날부터 나와 아이들은 평소처럼 하루하루 신나게 놀고 맛있게 밥을 먹고 깔깔대며 산보를 했다.


며칠 후 금요일 저녁이 되었다. 아이들 엄마가 퇴근해 오고 나는 집에 가려고 아이들에게 인사를 했다.

"아가들, 월요일에 보자. 잘 자~."

큰 아이가 달려와서 물었다.

"할머니 몇 밤 자고 와?"

"세 밤 자고."

"안돼에!!"

"왜?"

"내일도 와, 할머니이."

울먹울먹 하면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동생도 함께 내일도 오라며 칭얼댔다. 아이들 엄마가 큰 아이를 안고 달랬다. 겨우 진정한 아이들은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를 그리며 소리쳤다.

"할머니 사랑해~."

나도 엄지와 검지를 붙여 하트를 그렸다.

"나도 사랑해.~"


그 순간, 내 마음속에 남았던 찌꺼기들이 후드득 떨어졌다. 대신 후회가 밀려왔다.

내가 큰 아이에게 '할머니 이제 오지 말까?' 하고 말한 것은 아이에게는 협박이었다. 그 말을 들은 아이의 마음 속에선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휘몰아쳤을까. 아이는 상처 입은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자신도 같은 협박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날 큰 아이가 '할머니가 싫어졌어.'라고 말했을 때 내가 아이를 안아주면서 '그래도 할머니는 네가 좋은 걸.'이라고 말했다면 그날의 스토리는 훨씬 정다운 방향으로 흘렀을 것이다.

그 후로도 나는 아이들을 돌보며 자주 깨닫곤 했다. 어떤 경우든 아이들 잘못은 없다. 언제나 어른이 먼저 잘못하는 것이다.

keyword
이전 14화4개월만에 끝난 청소 알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