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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만에 끝난 청소 알바

청소 알바 이야기

by 이상은

정수기를 그만두고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찾아보았다. 전에 일하던 식당에서 여러 번 전화가 왔었지만 식당일은 안 하기로 했다. 과거로 돌아가기 싫었다. 종일 일하는 거 말고, 하루에 일하는 시간이 짧은 새로운 일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나이 든 여자가 당장 구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여전히 별로 없었다. 대개 나이 제한이 있었다. 그래서 일반 가정집 청소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아파트나 건물 청소는 고정직을 뽑아서 제외했다.

고정직을 찾지 않고 아르바이트만 찾는 이유가 있었다. 기존에 하던 광고영업 일도 해야 했지만 그보다 자격증 하나를 따고 싶었다. 자격증을 따기 위해 교육을 받으려면 내 스케줄대로 시간을 쓸 수 있어야 했다.


청소와 함께 택배 아르바이트 신청도 해놓았다. 아줌마들이 자가용 하나 갖고 반나절만 일해도 한 달에 백 만원씩 번다는 소리를 이곳저곳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하루에 두 집 청소를 하는 것보다는 청소 일은 오전에 하고 오후는 택배로 쓰면 될 것 같았다. 택배는 돌아다니는 일이니 답답함도 덜하리라.

'또 쓰리 잡인가? 이번에도 중간에 하나를 버려야 할까? 해 봐야 알겠지. 어떻게든 하루를 알차게 쓰면 적어도 생활비는 나오겠지.'


하지만 택배 일은 시작도 못했다. 주변에서 나이 든 여자는 힘들다고 하도 말려서 그렇게 되었다. 구순이 넘으신 친정 엄마는 거의 울면서 말리셨다. 지인들 중에 한때 택배 회사를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도 극구 말렸다.

"김장철에 절임배추 박스를 4층 계단을 오르내리며 배달한다고 생각해 봐요. 언니 못해요. 팔꿈치, 무릎, 고관절 다 나가요. 돈 좀 벌어도 주차 위반 벌금으로만 한 달에 몇 십만 원씩 나가요. 하지 말아요."

결국 택배는 패스했다.


청소는 주 1회, 지정 요일에 청소를 원하는 집을 요일마다 하나씩 정했다. 나중에 숙달이 되면 하루 두 집도 하고 주말을 활용하자는 생각이었다. 주로 30평~40평형대 아파트를 선택했는데 30평 형대는 4시간 안에 일을 끝내야 했고, 40평 형대는 30분을 더 주었다. 시급은 서울시 안에서는 1만 1천 원이고 경기도 주소지로 가면 1만 2천 원이라고 했다. 경기도 인근 서울에 살던 나는 주로 경기도 고객을 선택했다. 주 5일을 일하면 월 100만 원 정도 버는 셈이었다. 하루 두 군데씩 일하면 2백 버는 거고.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집안일 중에서 내가 제일 잘하는 게 청소였기에 걱정이 안 됐다. 청소할 때는 고객이 집을 비워주기 때문에 눈치 볼 일도 없이 내 집 일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역시나 쉬운 일은 없었다. 내 집 청소가 아니라 돈을 받고 남의 집 청소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부담을 주는 일인지 몰랐었다. 우리 집 청소는 대충 해도 되지만 남의 집 청소는 꼼꼼하게 하지 않을 수 없다. 주어진 시간 안에 일을 마쳐야 하는데, 구석구석 하다 보면 아무리 서둘러도 시간을 초과했다. 그런데도 나올 때는 항상 뭔가 미흡했다. 어딘가 먼지를 안 닦은 것 같고, 그게 고객 불만이 될까 봐 또 걱정되고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였다.


나중에 선배들에게 물어보니 나한테 문제가 있었다. 예를 들어 화장실 청소는 10분 안에 끝내야 한다고 했다. 나는 20분이 걸렸고 화장실이 보통 한 집에 두 개 있으니 40분이 걸렸다. 다른 구역도 다 나는 느렸다. 선배들에 따르면 마감 시간 30분 전에는 일이 완전히 끝나 있어야 하고 남은 30분간 집안을 둘러보며 미진한 뒷정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시간 분배를 잘해놓고 거기에 맞춰 착착 일해야 했는데 나는 그걸 못했다.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고객 불만도 몇 번 있었다.

한 집은 베란다 청소를 잘해 달라는 것이었다. 베란다 청소는 고객이 추가 금액을 부담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나는 그냥 해줬다. 그런데 다음 주에 또 올라왔다. 그 집 베란다에는 곰국을 끓이는 가스렌지와 세탁기가 있었다. 곰국 끓이고 난 가스레인지가 더러워져 있어서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열심히 닦느라 그날도 시간이 초과되었다. 그런데 그 주에도 또 베란다 청소를 안 했다고 불만이 올라왔다. 잊지 말고 청소하라고 계속 올리는 것인지, 아니면 며느리가 베란다를 검사하기 전에 시어머니가 뭔가를 또 거기서 끓인 건지 모르겠는데 나는 매주 회사에서 지적을 받아야 했다. 회사에 얘기를 할까 하다가 나는 그냥 그 집 청소를 끊어버렸다.


또 한 집은 30평형대라고 해서 갔는데 실제로 일을 해 보니 40평형대도 넘는 느낌이었다. 단독 건물로 다락방까지 3층 구조여서 계단 청소만 30분 이상이 걸렸다. 다락방도 여주인이 작업실로 이용하고 있어서 매주 청소를 해야 했다.

'다락방은 등기부 상의 전체 건평에 빠져 있는 건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계속 말없이 했고, 항상 시간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우 회사에 얘기해서 소요 시간을 늘리고 급여를 더 받아야 하는 거라는데 나는 몰랐다. 당시에는 내가 손이 느린 줄로만 알았다.


이 집에서는 내가 청소하다가 실수로 탁자를 쓰러트려서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유리판을 깨는 사고까지 있었다. 그날은 내가 감기에 독하게 걸린 상태였다. 온몸이 많이 아팠고 정신도 멍한 상태였기 때문에 일하기가 정말 힘들었었다. 탁자 값은 회사에서 보험 처리를 해서 내가 돈을 낼 일은 없었지만 마음은 몹시 안 좋았다. 이 집은 고객 쪽에서 다른 사람으로 교체해 달라는 요청을 해서 그만두게 되었다.


청소 일은 그만두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 알바가 싫었다. 어떤 고객이 집안 사정이 생겼다며 정기 청소를 중단하면 다른 집을 다시 잡기가 싫었다. 한 번이라도 고객이 다음 주로 미루면 다음 주엔 내가 개인 사정으로 일을 못하게 되었다고 뺐다. 처음 시작할 때는 주당 다섯 집에서 일했는데 두 달 후엔 세 집으로, 세 달 후엔 두 집으로, 4개월째는 한 집만 남았다.


마지막까지 남은 집은 주인이 정말 좋았다. 일을 하러 갔을 때 혹시 전주에 미진한 부분이 없었느냐고 물으면 주인이 대답했다.

"항상 깔끔하게 해 주셔서 다 좋아요. 굳이 얘기하라고 하신다면, 현관 옆에 있는 거울을 애들이 나가면서 보는데 오늘 거기 좀 닦아주시겠어요?"

나는 속으로 '어머' 했다. 그곳은 한 번도 안 닦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집주인은 '굳이 얘기하라고 하면'이라는 서두를 붙이며 나를 배려했다.

그녀의 어투는 항상 그랬다. 상대방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청소 알바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보려는 중에 이 집에서 다른 집안 일도 해줄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얼른 수락했다. 외손녀들이 있어서 아이들을 돌보며 식사 준비를 하면 되었는데 나로서는 당장의 돈벌이가 해결되었고 주인이 좋은 분이라 아주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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