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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연 Apr 26. 2024

첫 만남은 정말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딩크부부의 갑작스러운 임신


나는 신혼 때 짠순이라고 불릴 만큼 돈을 아꼈다.

각종 쿠폰과 적립금을 알뜰살뜰 모아 생활비에 보템이되게 하고 싶었다. 내가 번거롭고 ,귀찮지만 그렇게 산이유는 모두 여행을 위해서 였다.

옷살 돈이 아까워 패션 테러리스트처럼 다녀도 괜찮았다.

나는 그때부터 우리집 아저씨의 티셔츠를 입기 시작했다.

남편은 지금도 이를 상당히 못마땅히 여기지만,

처음엔 돈을 아끼기 위해서였고,

나중엔 입다 보니 남자옷이 편해졌고,

지금은 그때의 습관을 버리지 못해 남편옷을 입는다.   


여행을 이제 그만 가야지 싶다가도 3달쯤 지나면, 금단현상처럼 엉덩이가 들썩거리기 시작한다.

또 다시 슬금슬금 미어캣처럼 눈치를 보다 나갈 준비를한다.



지금 이렇게 집안과 치료실 안에 갇혀 사는 신세가 되니, 한편으로는 그때 돈을 아까워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사람들은 여행 좀 그만 가라고, ‘걸어서 세계 속으로’라는 티비 다큐만 봐도 충분하다며 우리를 말렸지만, 그때 다른 사람의 말을 안듣고 나 하고 싶은대로

산 것이 정말 다행이지 싶다.

  

여행만 다니는 것이 아쉬워 우리는 실제 그 나라에서 살아보기로 한다.

남편은 나름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가 되길 자처했다.  

처음 우리가 살아보기로 한 곳은 대만,

그곳에서 3개월 살면서 남편은 어학연수를 했고,

그곳의 사람들과 뒤엉켜 섞여 살기 시작했다.

야밤에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밤거리를 질주했고,

야시장에서 초두부 같은 이상한 음식을 도전하듯 먹어도 보았고 ,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맥주 한캔과 버블티 한잔에, 대만 영화의 주걸륜과 샤오위가 되어 보기도 했다.  



되지도 않는 중국어 실력으로 현지인 친구를 만들었고남편은 심지어 대만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으니

얼굴이 점점 대만 사람처럼 바뀌기 시작했다.


대만은 바퀴벌레가 엄청나게 크며 심지어 사람 앞에서도 도망가지 않고 당당하다.

야시장엔 가끔 쥐가 뛰어다닌다. 그리고 창문이 흔들릴 정도의 심한 지진도 경험한다.

덥고 습한 날씨 때문에 밖을 나갔다 집에 오면 열사병에 걸린 사람처럼, 더위를 먹은 채 몇시간을 잠만 자는

일도 있었다.

모든 일이 한국의 삶과 비교해 편리성과 쾌적함이 현저히 떨어지지만, 그곳의 사람들과 섞여사는 3개월 동안하루하루가 흥미진진했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오니 다시 엉덩이가 들썩이면서 여행 금단증세가 오기 시작했다.

뭔가 가슴 뛰는 일을 다시 경험하고 싶었다.

제2의 빠니보틀을 꿈꾸며, 여행하는 삶을 목표로 공들여 탑을 세우듯,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기로 한다.



먼저 우리는 신혼집으로 산 빌라를
팔기로 한다.  

빌라가 처음엔 잘 팔리지가 않아 거진 일 년 이상을 애를 먹고, 딱 4년 전 우리가 산 가격에서 천 원 항장 더 받지 못한 채, 빌라는 빌면서 판다는 공식을 깨지도 못하고 그렇게 억지로 집을 팔게 되었다. 금전적인 손해가 있었지만 , 여행하는 삶이 목표인 우리에겐 모두 즐겁게 감내할 일이었다.

신혼 때 쓰던 정든 살림살이들,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이 아끼던 첫차를 팔고 , 옷가지와 남은 짐들은 강원도에 있는 친정집 방 한구석에 쌓아 두었다.

모든 계획이 완벽히 착착 진행된다 생각했었다.

그렇게 친정에 지내면서 드디어 내일이면 비행기를 타러 간다는 마음에 설레어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몸이 일주일 내내 좋지 않다.


이상하게 하루종일 잠이 오고 피곤하다.

뭔가 싸했지만 , 아닐 거야…. 하는 마음으로 임테기를 해본다.

뚜둥!!!!! “두줄이네… 두줄이면 임신인 건가? “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내일 비행기 타야 하는데, 에어비앤비 숙소랑 비행기도 다 예약해 놨는데 어쩌지? ”


곧장 남편과 산부인과로 달려간다.

의사 선생님이 초음파를 보신다.

“축하합니다. 임신 4주입니다 ”

의사 선생님은 환히 웃으시며 축하한다고 했는데 , 나와 남편이 당황한 표정을 짓자 의사 선생님 이게 뭔가 쎄하다는 표정이시다.

“저 내일 비행기 타야 하는데요?”

“비행기는 타셔도 됩니다 ”

“여행이 아니라 살러가야 하는데, 어떡해야 하죠?”

의사 선생님은 그냥 웃으시며 별말씀이 없으시다가

“다음 주면 아기 초음파 사진이랑, 심장소리를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자, 순간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한다.

그 많은 여행을 다녀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이건 또 다른 설렘과 두근거림이었다.

내 뱃속에 생명이 있다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 좋은 낯섦과 신비로운 감정이 들었다.


그래도 갑작스러운 임신 소식에
우린 많이 당황했다.


산부인과를 나오며 내손엔 산모수첩과 임산부 엽산이 들려있었고 모든 것이 비현실 적이었다.

그저 “와~~ ”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나와 남편은 산부인과를 나와 집까지 가는 길 어이가 없어 실성한 듯 웃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공들여 쌓은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듯하였다. 쌓은 탑이 무너져 한참을 넋을 놓고 그 광경을 바라보는 사람 같았다.



그날 저녁 친정 아빠와 대만 가기 전 마지막 식사를 하기로 해서, 일단 식당으로 향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든 상황을 모르셨던 아빠는 우리를 보자마자 들뜬 표정이시다.


”이야 ~ 너네들 가면 나도 한달 살기 하러 가야겠다. 나 요즘 중국어 공부도 열심히 하는데 말 좀 통하려나? “


그렇게 한참을 신나 하시는 아빠 앞에서 차마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고 말씀드리기 어려웠다.

우리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네…“라고 말할 뿐이었다.

아빠가 체하실까 봐 우린 밥을 다 드실 때까지 기다린다. 밥을 다 드신 것 같아 나는 입을 뗀다.


“아빠 나 사실 임신했어 “

” 어… 그래?….. 어이쿠……어떡하냐……”

아버지의 눈동자가 좌우로 심하게 떨리신다.

당황한 기색이 영력 하신대, 애써 표정관리를 해보시려 노력하시는 듯해 보였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붙잡으시고 말씀하신다.

“어….. 그래도 축하한다. ”

그리곤 한동안 정적이 흐른 채, 우리 모두 말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슈퍼 파워 긍정이신

친정 엄마는 “ 잘됬어, 애를 낳아야지, 자꾸 그렇게 쏘 다니면 안 좋아, ”라며 내 맘은 신경도 안 쓰시고, 깔깔깔 웃으시며 좋아하셨다.  



공든 탑이 와르르르 무너지고, 우린 주섬수섬 탑의 잔해물을 줍는 사람처럼, 일의 뒷수습을 해야 했다.

대만에 미리 예약해 둔 2주 치의 에어비앤비 숙소 값은 모두 날려야 했고 , 항공권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남편이 아끼고 소중히 다뤘던 차를 판 것이 후회스러웠다.

한동안 우리는 뚜벅이로 지내며, 택시와 버스를 타고 다녔고, 다시 차부터 사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 대만에서 입으려고 캐리어에 넣어둔 원피스는 다시 고스란히 꺼내 옷장에 넣어두어야만 했다.




그렇게 10달이 지나 아이를 낳았고, 아이가 아팠고,

모든 계획은 무용지물로 돌아갔다.

인생길, 예상치 못한 변수에 부딪쳤을때, 당황스럽고 난감한 일투성이지만, 그런 일들은 지나고 보면 결국엔 미화되어 아름답게 추억된다.


여행을 쏘다니면서 깨달았던 것은

이벤트 없이 평화롭게만 다니기만한 여행은 오래 기억에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야 재미있고, 예상치 못한 깨달음도 얻게 된다

파리에서 집시를 만나 돈이 털릴 뻔했을 때, 집시를 따라가면서 그렇게 살지 말라며 한국말로 훈수를 두었던일은 오래도록 기억되고 나를 웃게 해 준다.

프랑스 남부 한 시골길을 덜컹거리며 달리다 갑자기 낭떠러지를 만나 고꾸라질 뻔했을때도, 우연치 않게 발 앞에 놓인 압도되는 협곡의 경치를 보게 되었던 일도 기억에 남는다.


아이와의 첫 만남은 이 모든 것을 통튼 것보다 훨씬 더 난감했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 만남이었다.

계획되로 되지 않아 황당하고, 어렵고, 그렇지만 뜻밖의 설레고 행복한 일이었다.

계획에 없던 아이를 만나 그 동안 힘든 일도 많았지만,

나는 이렇게라도 나의 아이를 만난 것을 감사히 여긴다.

그 모든 어이없고 황당했던 일들이

“모두 다 너를 만나기 위해서였구나 … 그렇지, 너를 만나기 위한 거였다면 뭐든 감내할 수 있어 “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세상은 예상치 못한 길들이 가득했다.

계획대로 걷고 싶어도, 좌우로 꺾이는 길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낭떠러지를 만나기도 한다.

때로는 길을 잃기도 하고, 어둠 속에서 헤매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새로운 풍경을 만나게 된다는 건 필수 공식이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할 이유도, 겁먹을 필요도 없다.


여행도, 아이도, 그리고 우리의 인생도 계획대로 되지 않아야 재미있고 사랑스럽다.

그렇기에 가끔은 예상되지 않는 새로운 길을 떠나보는 것도 괜찮다.  

누가 알까? 어떤 아름다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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