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기 위해 쓴다
“아이의 ‘킁킁 간시’ 한마디에, 그 시절 강시와 헐크호건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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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아이가 말했다.
“엄마, 킁킁 간시 알아?”
“킁킁 간식? 뭘까? 맛있는 거야?”
“아니~~~ 이거이거 킁킁 간시!”
아이의 양손이 앞으로 뻗더니 콩콩 뛰어다녔다. 얼른 맞혀보라는 성화 같았다. 나는 층간소음을 의식하며 웃다가, 눈치챘다.
“아, 콩콩 강시! 알았어, 이제 그만 뛰어~”
어디서 배웠는지 아이는 강시를 설명하며 더 뛰려 했고, 나는 살살 뛰라고 소파 위로 보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떠올랐다.
초등학교 교실 한켠, 레이스가 덮인 작은 브라운관 TV.
그 안에서 부적 하나 붙이면 꼼짝 못 하던 강시. 그때의 기억이 소환됐다.
그 시절 방학 전날이나 행사 때면 교실에서 TV를 틀어주곤 했다. 강시 영화는 인기였다. 다음 날이면 몇몇 아이들이 와서 떠들었다.
“야, 어제 옆반 ○○이가 골목에서 홍콩할매 봤대. 이름 물으면 잡아간대!”
그럴 리가 있냐며 반박해도, “봤대, 진짜 봤대!” 하며 으스대던 친구들. 지금 들으면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같은 유치한 얘기지만, 그때는 진짜로 덜덜 떨며 믿었다.
또 하나의 인기, 프로레슬링.
헐크 호건 아저씨가 노란 두건을 두르고 링 위에 오르면 아이들은 열광했다. 상대를 들어 올려 내려치고, 로프를 밟아 뛰어내릴 때면 TV 속 근육이 클로즈업되며 교실 안도 흥분의 도가니가 됐다.
내 책받침엔 유덕화와 에드워드 펄롱이 있었다.
친구들과는 “훠롱이 맞다”, “아니 펄롱이다” 하며 이름을 두고 더 열을 올렸다.
잘생김보다도 뭐라고 부르느냐가 더 뜨거운 화제가 됐던 그 시절이었다.
홍콩 영화와 미국 드라마가 뒤섞였던 그 시절.
싸움과 눈물, 그리고 주인공의 희생.
나는 그 속에서 울고, 따라 하며 나도 배우가 된 듯 몰입했다.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울며 맨발로 뛰어가는 천장지구 엔딩씬은, 줄거리는 가물가물해도 지금까지 선명하다.
AI에게도 쉽게 그려 달라 할 수 있을 만큼.
이따금 옛 영화를 다시 본다. 새 드라마의 화려함도 좋지만, 낡은 앨범을 꺼내듯 옛 장면을 다시 보면 감상이 달라져 있다. 내가 성숙해진 건지, 무뎌진 건지.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나는 걸 보면서, 나도 어린 날의 나를 꺼내본다.
교실에 앉아, 작은 TV를 바라보며 헐크 호건을 응원하던 그때의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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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 위해 쓴다 - 시리즈]
• 민방위훈련이 불러온 기억
• 삐라를 아시나요
• 할머니의 여름휴가, 뮤지컬
• MZ가 되고 싶은 70년대생
• 수돗물로 보는 바뀐 세상
• 강시로 소환된 그 시절 기억
(계속 업데이트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