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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꿍이 등교하면 하던 작업들

기억하기위해 쓴다

by 열짱


학창 시절, 이름도 잘 떠오르지 않는 내 짝꿍,

짝꿍이 하던 일과만 떠오른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집에서 가까워서, 고등학교 때까지 늘 걸어서 다녔다.
지금 말로 하면 ‘학군’이라고 할까.

내 짝꿍은 버스를 타고 다녔다.
등교 후 쉬는 시간만 되면 늘 시작하는 작업이 있었다.


회수권 2/3 자르기.
반을 자르면 티가 나서 걸리기 쉽고, 그래야 정교하게 2/3만 잘라야 두 장 정도 더 쓸 수 있었다.
물론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 시절엔 기사 아저씨들도 “이 녀석, 이런 머리로 공부를 해라!” 하며 웃으며 넘어가 주시곤 했다.


짝꿍의 두 번째 작업은 쌍꺼풀 테이프 붙이기였다.
딱풀 같은 걸 실핀 끝에 묻혀 손거울을 보며 눈꺼풀에 조심스레 붙였다.
붙인 흔적은 조금 남았지만, 눈을 뜨면 그럴듯하게 쌍꺼풀이 생겼다.
앞머리를 구루프로 말고 오는 날도 있었다.




남녀공학이었지만 인근 학교와 미팅을 하거나 써클 활동을 함께 하기도 했다.
때론 서로 학교 자랑이 지나쳐 다른 학교를 헐뜯기도 했다.
“너희 학교는 운동장이 손바닥만 해서 100m 달리면 낭떠러지로 떨어진다며?”
“너희 학교 주변엔 아담(그 시절 말하던 바바리맨)이 그렇게 많다며?”

그러고는 또 다 같이 분식집에 모여 즉석 떡볶이를 먹으며 웃고 떠들었다.
부모님 세대는 빵집에서 미팅을 했다지만, 우리 세대에 분식집은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었다.

특히 기억나는 건 접시 하나에 떡볶이, 쫄면, 김밥, 만두, 계란까지 다 담겨 나오던 분식집.
둘이서, 때로는 셋이서 하나를 나눠 먹으며 수다를 떨던 기억.
하교길에 용돈을 모아 친구랑 사 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늘 분식집과, 교문 앞의 소소한 노점상, 그리고 서점이 따라온다.
늦게까지 남아 야자하던 시간, 몰래 야자 땡땡이 치던 순간까지도 모두 추억이다.


내 짝꿍, 지금은 눈을 감아도 뜨면 선명한 쌍꺼풀을 갖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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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위해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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