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기 위해 쓴다
PC방에서 시작된 청춘의 전쟁과 사발면의 맛,
그 뜨거운 기억은 지금도 ‘방’이라는 공간에 남아 있다.
새내기 대학생이던 시절, 동네에 낯선 간판이 생겼다.
PC방.
공강 시간이면 당구장이나 포켓볼을 치던 우리에게, 새로운 선택지가 열린 것이다.
호기심에 들어선 그곳은 삐걱거리는 철제 의자와 좁은 책상, 커다란 CRT 모니터가 줄지어 선 신세계였다. 친구 여럿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첫 게임을 켰다. 이름부터 낯설던 레드얼럿.(Red Alert)
처음엔 단순한 전쟁놀이 같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눈빛이 달라졌다.
탱크를 몰아 전진하고, 몰래 상대 기지를 엿보며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작은 모니터 속 세상은 대륙이었고, 우리의 전장 그 자체였다.
누군가가 가자! 라고 외치면, 옆자리 모두가 동시에 아우성을 질렀다. 서로 다른 컴퓨터였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같은 군대, 같은 편대였다.
그 후 워크래프트와 스타크래프트가 잇달아 등장하면서, PC방은 단순한 놀이터가 아닌 전쟁터가 됐다.
팀을 짜고 전략을 세우며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교수님이 전공 얘기를 할 때보다, 친구가 “앞마당 짓냐, 멀티 가냐” 묻는 게 더 진지했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건, 그 좁은 공간에서 먹던 사발면의 맛.
뜨거운 물을 부어 PC 앞에서 먹는 육개장 사발면.
면발을 후루룩 삼키다 보면 키보드에 국물이 튀고, 마우스에 손가락이 눅눅해졌다. 그럼에도 그 한 그릇은, 바닷가에서 먹는 라면과 견줄 만큼 짜릿했다.
전쟁을 할 땐 누구보다 용맹한 전사였지만,
스카이러브 채팅방이나 하두리 캠 영상 채팅을 켜면, 우리는 또 누구보다 새침하고 성숙한 요조숙녀가 되었다.
인터넷은 동창을 다시 만나게도 했다. 어릴 적 모습이 선명하던 친구들은 어느새 훌쩍 커서 전혀 다른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거기서 연인이 되기도 했고, 선생님과 학창시절을 추억하며 우정을 이어가기도 했다.
인터넷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활력소였고, 과거를 이어주는 인연의 끈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PC방, 코인노래방, DVD방, 그리고 지금의 방탈출 카페까지.
우리는 늘 어떤 공간 안으로 들어가 그 시대의 ‘방’을 맛보며 살아왔다.
그리고 문득 묻는다.
앞으로 우리에겐 어떤 방이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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