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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와 바구니 속 고백

기억하기 위해 쓴

by 열짱


영화 '고백의 역사'가 꺼낸 나의 바구니 속 고백


나는 지치고 힘들 때 영화를 본다.
주로 육아로 고단한 순간들이다.

(너희 형제들이 커서 볼 때쯤, 엄마가 왜 이렇게 적어뒀는지 느끼길 바란다!)

어린 시절 나의 스트레스 탈출구는 책, 만화책이었다. 성인이 된 뒤에는 술 한잔, 드라마와 영화가 되었다. 집의 TV를 늘 점령하고 있는 세 남자가 없는 시간대에, 드라마를 끊어보기 시작했다. 요즘은 OTT 덕분에 언제든 몰아보기가 가능하니, 이보다 고마운 게 없다.

건조기에서 꺼낸 빨래를 개며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그 한 시간이 나의 힐링타임이다.
그 시간만큼은 아주 평화롭고, 이보다 좋을 수 없다.

며칠 전, 곱슬머리 여학생이 나오는 영화 '고백의 역사'를 틀었다. 주인공이 꼭 나같이 느껴져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삐삐까지 나오니 말 다 했다.




라떼, 혜성과도 같이 서태지가 등장했다.
뭘 사달라고 잘 하지 않았는데, 서태지 모자는 갖고 싶었다.

사회초년생이 된 언니는 내 바람을 들어주었다.

나는 조용하고 튀지 않는, 공부를 좋아하는 모범생이었다. 언니의 영향으로 CD 듣기가 취미였는데, 내가 듣던 잔잔한 노래들과 달리 서태지의 강렬한 음악은 나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타이틀곡뿐 아니라 수록곡까지 전부 좋았다. 집에서는 TV를 보며 춤을 연습하기도 했다.



소풍날이었다.
둥글게 모여 앉아 수건 돌리기를 하며, 카세트로 음악을 틀고 놀고 있었다.

“야, 너 서태지 춤 좀 춘다며? 얼른 춰봐~”
“오오~ 그래, 춰봐.”


“아니, 나는…”
“아, 안 춰? 다들 기대하는 거 안 보여?”

소위 ‘노는’ 무리 중 한 친구가 내 등을 툭 찔렀다.
며칠 전, 발표회 준비를 하던 그들의 춤 동작을 내가 괜히 교정해줬던 게 화근이었다.

“뭐야? 너 서태지 춤도 춰?”
“세상에 범생이가 별일이네. 자, 여기서 이 동작 어떻게 하는 거야?”

그렇게 몇몇 동작을 고쳐줬을 뿐인데, 소풍날 나는 등 떠밀려 무대(?)에 섰다.

젠장. 저쪽에는 남학생 반도 있는데…
울고 싶은 심정으로, 결국 서태지의 난 알아요를 춰야 했다.




그날 이후, 나는 반 아이들에게 ‘서태지를 좋아하는 소녀팬’으로 각인됐다.
나쁘지 않은 별명이었다.

우리 학교는 남녀공학이었지만, 남자반과 여자반은 층이 달랐다. 그래서 공학 느낌은 별로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쉬는 시간, 창가 쪽으로 바구니 하나가 스르르 내려왔다. 윗층 남자반에서였다.

안에는 쪽지와 작은 물건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편지에는 “펜팔 친구를 구한다”, “관심사가 같은 친구를 찾는다”는 글들이 적혀 있었다.

그 시절, 펜팔은 일상이었다.

군부대 위문편지, 외국인 친구와의 영문 펜팔까지 유행이었다.
윗층 남학생들의 시도는 신선했고, 우리도 곧 이름 모를 펜팔을 시작했다. 때로는 마니또처럼 선물이 오가기도 했다.

그중 내 손에 들어온 한 장.
<서태지를 좋아하는 소녀에게 바칩니다> 라고 쓰인 뒷면. 거기엔 서태지 사진이 붙어 있었다.


소풍날의 춤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서태지 사진은 내 손에 들어왔고, 나는 내가 아끼던 엽서를 답장 삼아 보냈다.

“혹시 우리 위층 2학년 5반이면… 누구지?”

친구들이 추측을 쏟아냈다.
“야, 5반에 서태지 팬이면 걔 아냐?”
“서태지 춤춘다던 여드름 잔뜩 난 걔…”

"하지 마....알고 싶지 않아."
제발, 내게 서태지를 좋아하는 소녀에게 바친다는 그 남학생의 환상을 깨지 말아 줘.

몇 번의 바구니가 오간 뒤, 선생님께 들켰는지 더는 바구니가 오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을 꺼내면,
그 바구니 속 서태지 사진의 설렘이 따라온다.
그리고 지금도 힘든 날, 영화 한 편을 틀면
그때의 설렘이 다시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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