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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톤 Jan 01. 2024

다른 그림 찾기

Let the good times roll

겨울마다 돌아오는 습관이 있다면 허공에 입김을 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잠시 솜사탕처럼 뭉쳐졌다 순식간에 풀어지는 하얀 실타래가 나는 늘 생경해서 숨을 자꾸만 불어넣는다. 곧 사라져 버릴 거라는 걸 알면서도.


모든 게 입김처럼 사라져도 그 애만큼은 남아 있을 거라는 알 수 없는 믿음이 있었다. 십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늘 여전했던 유일한 사람이니까. 그래서 그 애를 일 년 만에 다시 만났을 때 나는 어디까지 어색해하고 어디까지 익숙해해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자주 입는 검은색 후드티에 편안한 차림. 약속시간에 늦고서도 손만 열심히 흔들 뿐 달려오지 않는 한결같은 태평함. 달라진 점이 있다면 웬일로 목도리를 두르지 않았고, 귀를 두 군데 더 뚫었다는 것 정도. 나는 무의식 중에 다른 그림 찾기를 시작했다.


숨은 그림은 영원히 숨어있기를 바라면서.


괜히 춥다는 말을 반복하며 그 애에게 팔짱을 끼고 수도 없이 함께 걸었던 홍대 거리를 또 한 번 걸었다. 내 가벼운 핑계에 그 애는 내 손을 가만히 잡아보더니 핫팩을 쥐여줬다. 나보다 나를 잘 챙기는 건 여전하고, 나와 정반대로 손이 따뜻한 것도 그대로이고.


그 애는 혼자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늘 나보다 야무지고 여유로운 성격이긴 했다. 원래의 섬유 유연제 향 대신 약간의 담배 냄새가 났고, 생활비를 스스로 벌기 시작한 덕분인지 낭비하던 습관이 사라졌다. 어떤 변화는 발전적이었지만 그것조차도 조금쯤 아쉬워서 눈으로 허공을 헤매었다.


어느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느냐는 나의 물음에 처음 듣는 번호가 들려왔다. 그 애는 여전히 나의 현실이었지만 더 이상 일상은 아니었다. 나와 같은 버스를 타고 집까지 돌고 돌아가는 수고를 언제까지나 익숙하게 바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정류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매달리듯 그 애의 팔을 붙잡고 계속계속 걸었다. 내가 잡아두고 싶었던 건 현재의 관계였는지 과거의 추억이었는지 무엇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신호등을 같이 기다려주는 건 여전하고, 헤어지고 나서 뒤돌아보지 않는 것도 똑같고, 잘 들어가라는 연락에 다정함이 대놓고 묻어 나오는 건 달라졌다. 새로워진 그림들을 다 찾지는 못했지만 여기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사람이 변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늘 오랜 시간이 걸린다.


최근 두 달 동안 거의 글을 쓰지 않았다. 순간순간에 별로 질척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글자라는 실체를 남겨두지 않으면 확실히 기억은 오래가지 않는다.


무엇도 깊게 좋아하지 않고, 깊게 슬퍼하지 않고. 비눗방울을 불어 하늘로 띄우는 대신 계속 숨을 불어넣어 터뜨리고 터뜨려 보았다.


나는 늘 영원하지 않을 것들을 좋아한다. 벚꽃 잎이 떨어지는 순간, 밀려 들어오는 파도, 한겨울에 속눈썹 위로 내려앉는 하얀 눈. 누군가와의 시작과 끝을 지독하게 힘들어하면서도 자꾸만 사람을 좋아하는 건 나를 향하는 마음이 시시각각 바뀌는 게 투명해서 어렵지만 그만큼 예뻐서인 것 같다.


뜬금없는 시간과 장소에서 내 생각이 났다는 말을 들으면 자주 의문에 부딪힌다. 과연 내 생각을 언제까지 할까, 라는 혼잣말이 늘 불변의 첫 문장이 된다. 기뻐하기만 하면 좋을 텐데 동시에 바늘에 찔리는 것 같아서 자주 슬퍼진다. 가끔은 내가 변하는 것조차도 버겁게 느껴질 정도로 나는 사소하게 달라진 그림을 기어이 찾아내고 마는 사람이니까.


올해의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아플 시간이 아주 많이 주어지면 좋겠다. 변화에 아파하다가도 계속 계속 다시 좋아할 수 있게. 과거에 살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나의 하루는 입김처럼 빠르게 과거가 되어 버려서 시간의 경계에 지우개질을 하며 뭉뚱그리는 연습을 하고 있다.


덩어리 진 좋은 시간들이 고이지 않고 흘러가기를 바란다. 별 것 없는 나의 신년 일기장은 그렇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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