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아이를 예뻐해 준 선생님을 만났다. 미국으로 출국을 앞둔 딸이 인사를 드리고 싶어 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 산뜻하게 울려 퍼지는 내 목소리와는 반대로 아이와 선생님은 서로를 보자마자 그렁그렁 한가득 눈물이 맺혔다.
주책맞게시리,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해졌다. 아이들이 선생님과 편히 이야기하라고 서둘러 자리를 피해 주었다. 이 선생님으로 말하자면, 딸아이의 자가주도학습을 완성시켜 주고 아이가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품을 내어주셨던 분이다.
딸의 좋은 공부 습관을 만들어준 덕에, 동생도 누나 따라 이곳으로 공부를 배우러 다녔다. 이리 좋은 선생님을 공부방 학원에서 만났다 하면 다들 놀라 한다.
딸은 현수막에 걸릴 정도로 수학을 아주 잘했다. 공부 태도도 아주 우수하였고 매번 칭찬을 들었다. 그러나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이 학원 하나 다니지 않고, 아파트단지 작은 공부방에서만 공부해서 과연 좋은 점수가 나올까?
실력이 출중한 아이를 앞에서 조금만 끌어주면 더 멋진 결과가 나올 것만 같았다. 학원에 가기 싫다는 아이를 달래어 학원가에 등록을 시켰다. 한 달 만에 국어와 영어 내신 점수가 올랐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아이는 고등학생들이 경쟁하는 시스템인 학원에 다니는 걸 힘들어했다. 주말 늦은 밤까지 시간을 쏟아야만 하는 공부가 너무 힘들다며 하소연을 했었다. 다른 애들도 모두 그렇게 공부한다고 달랬지만 통하지 않았다. 스트레스가 어찌나 강했는지 평소 안 하던 욕을 하고 나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러다 애한테 뭔 일 나면 어쩌나 싶어 학원을 그만 다니라 했다. 그 뒤로 아이는 혼자서 공부를 했다. 혼자 하는 공부니 요령도 기술도 부족했을 테고, 나태함의 유혹도 있었을 테다. 고3 입시 결과는 딸아이가 원하는 수준이 나오지 않았다.
아이의 결과물은 아이가 만들어낸 거지만, 엄마인 나는 자책감이 들었다. 그때 내가 학원에 보내지 않았더라면, 다니던 공부방에 계속 보냈더라면, 아이가 공부에 진절머리 나지 않았을 텐데, 정서적으로 안정이 됐을 텐데. 그렇게 속절없이 자책을 했었다.
지난날의 나처럼 자책감에 괴로워하는 엄마들도 분명 어딘가에 있을 거다. 아이가 다치거나, 아프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괜히 엄마인 내가 무언가 잘 못해서 혹은 잘 돌보지 않아서 '이런 일이 생긴 게 아닐까' 자책감이 들곤 한다.
나의 자책감은 작년 최고조였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위험한 감정이다. 예전에 청소년 자녀를 둔 학부모를 위한 강연을 들은 적 있다. 상담가 선생님은 지역에서 꽤나 유명한 강사님이었다. 수업이 끝나갈 무렵 이런 말씀을 하셨다.
" 청소년 상담가인 저도 제 아이는 다루기 힘들어요! 제가 이런 강연하고 조언을 해서, 제 아이는 공부도 잘하고 바른 자녀일 거라 생각하고 부러워하시는 학부모님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저의 직업일 뿐 온전한 제가 아니에요. 저 역시 제 아이로 학부모님과 같은 고민을 합니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자녀의 문제에 있어서 후회와 자책을 합니다. 절대로 자책하지 마세요. "
우리는 자녀를 통해 온갖 감정을 배우게 된다. 나 같은 경우는 그 많고 많은 감정 중 '노심초사' 감정을 완벽히 배웠다. '노심초사'는 걱정과 불안 분노 자책감으로 연결되고, 그런 감정은 나를 위축시킨다. 위축된 나는 어떠한 상황 속에 던져졌을 때 분별력을 흐리게 하여, 판단력마저 힘을 잃게 된다.
가정에서 엄마의 감정은 정말 중요하다. 엄마가 스트레스받으면 그 감정이 자녀에게 고스란히 전달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자책감이야말로 엄마들이 갖어선 절대 안 되는 감정이다. 내 아이가 어떻게 성장하면 좋을까를 생각하면 답이 쉽게 보인다.
고로 나의 행복이 우선임을 수시로 상기한다. 엄마가 행복하고 건강해야 아이도 행복하고 건강하다. 실수를 한 순간엔 내가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자책감보다는 나 스스로를 격려하고, 잘하고 있는 부분을 인정해 주고, 나의 감정을 돌본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내 마음을 다잡기 위함이지, 어떤 진리를 깨우친 사람인 양 뽐냄이 절대 아니다. 또한 내 경험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공감이 간다면 "절대 슬퍼하거나 자책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하고 싶다.
엄마는 꽤나 어려운 직업이다. '노심초사'라는 어려운 감정을 배우는 극한 직업이지만 꼭 힘든 것만은 아니다. 나의 아이를 지극정성 사랑해 주고 보살펴주는 선생님을 만날 때는 '벅찬 감사'라는 감정도 배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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