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나 차려입은 듯하지만, 누가 봐도 촌스럽다. 갑자기 호텔 방문 앞에서 원피스를 찢는다. 진한 립스틱도 바르고, 헤어도 정리한다. 앙 다문 입모양이 비장한 각오다. (아래 영상 보기를 추천)
그녀는 왜 옷을 찢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박장대소한 영화 속 장면이다. 현실에 찌든 아줌마가 자신이 스파이라도 된 듯 심취한 모습이 코믹스러워서일 거다. 과연 그럴까. 내 눈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걸로 보인다.
최근에 이사를 했다. 「이사하기」는 '아이의 미국 유학'을 결정한 후, 우리가 가장 먼저 한 액션이다. 친척 중에 삼성전자도 없고 국회의원도 없는 평범한 유리지갑 직장인이라 그래야만 했다.
쓰기 나름이라지만, 보통 미국 1년 유학 비용이 7 ~ 9천만 원 내외라 한다. 즉 아이가 미국에 간다면 매월 고정적으로 해외송금을 해야 하며, 이 말은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필요하다는 걸 의미한다.
우리는 살던 집을 전세 주어 작은 평수 집으로 이사하면서, 지출 비용을 줄이고 여유자금을 재테크하기로 시작했다. 오해가 생기면 안 되니, 일단 경제 전문가가 아님을 강조한다. 나하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단지, 1년째 안 나가던 집이 작년 겨울부터 매물을 찾는 사람이 늘어난 점. 금리 인하가 언젠가 될 거라는 점. 이 두 가지 사항으로 단순히 생각한 거니까.
40평을 포기하고, 그 절반도 안 되는 크기다. 방도 작고 옷장도 작고 불편한 게 이만저만 아니었다.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온 후 한동안 우울감이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대화가 끊이지 않고, 웃음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처음에 집을 마주했던 우울감이 점점 시간과 반비례한다. 상대적으로 희망은 정비례로 증가하고 있다.
주방이 보이는 거실 구조다 보니, 서로가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요리 결과물인 ‘음식’에 집중하는 주방이 아닌, 요리 시간인 ‘과정’에 집중되는 주방이다. 오르락내리락 귀찮기만 한 복층을 좌식 스터디룸으로 꾸며 아이가 책에 집중하도록 활용했다.
물론 '옹기종기'여서 다툼도 있지만 '옹기종기'여서 화해도 금방이고 반가운 마음도 크다. 아이가 커 버리면 더 누리지 못할 것들이다.
'집'은 우리 이야기의 자연스러운 주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작은 집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앞으로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어떤 미래로 갈 건지 희망찬 계획을 세운다.
이건 마치 ‘자기만의 독립공간’을 보장받는 큰 집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가족의 숨결을 느끼는 거다. 그렇다. ‘어떤 집’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꾸며가며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 단절이 아닌 소통이 가능한 집. 그런 집이야말로 마음의 안정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아이도 이 집이 소통이 가능한 집으로 생각할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여주인공 헬렌이 그랬듯이 아이를 지키기 위한 나의 몸부림일지도.
부끄럽게도 내 이야기다.
그때는 예적금 차이점도 몰랐고, 저축에 관심이 없었다. 의외로 우리 주변엔 '과거의 나'와 같은 주부님들이 상당수다. 놀라운 건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여행 · 쇼핑 · 자녀교육 등에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반면, 재테크 관련에는 관심을 두지 않아 저축을 누리지 못하는 가정이 많다는 사실이다.
한심한 주부라 생각 드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10대 20대 싱글로 살다가 '주부'가 처음인 여자다. 미숙한 건 당연하지 않은가. 살기 너무 바빠서, 관심사가 달라서, 어려운 경제용어라서. 저축생활에 문외한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러나 반드시 온다. 언젠가 온다. 재테크에 관심이 생기는 시기가 말이다. 아이는 비싼 옷 사주면서 본인은 싸구려 인터넷 옷 사입을 때, 옆집 엄마가 골프 배운다고 자랑할 때, 비싼 학원비를 감당하기 힘들 때 등 일상 속에서 수많은 이유들이 불쑥불쑥 다가올 것이다.
가장 슬픈 이유는 수중에 비상금 하나 없어 처량한 자신의 처지를 발견할 때다. 그러니 맞벌이가 영원할 거라는 '착각'에서 깨어나길 바란다. 하루라도 빨리 저축에 관심을 갖는 게 자신을 위한 길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안정적인 현금흐름만이 살 길이다. 특히나 미국으로 아이를 독립시키려고 준비 중인 우리 가족에겐 더더욱 필요하다.
나는 지금껏 살면서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그것'을 루틴화하기로 결심했다. 도전은 누구나 쉽게 하지만 중도포기자가 많다는 「가계부 쓰기」를 말이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매 달, 원활한 현금 창출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무슨 돈이 새어나가는지 확인부터 해야 하고, 새어나가는 돈을 붙잡을 수 있다.
내 주변에는 가계부를 쓰는 사람 한 명 없다. 새해 목표로 장부를 샀다가도 슬그머니 지쳐 나가떨어지곤 한다. 스마트한 세상에 스마트하게 App을 사용하겠노라 호언장담한 자도, 스마트하게 나가떨어졌다. 그렇다! 가계부 작성은 정말이지 어렵다. 그러나 가장 돈을 빨리 모으는 방법으로 필수 조건이다.
다시 말하지만 「가계부 쓰기」는 쉽지 않다. TV 보는 시간을 줄여야 하고, 매번 가게에서 영수증을 챙겨야 하고, 지출이 맞지 않을 때는 계산기를 몇 번이고 두들겨야 한다. 이런 번거로운 작업이 지치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 앞에서 끌어주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나에게는 그 '무언가'가 책이었다. 적어도 재테크에 관심이 있다면 「가계부 쓰기」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통장 쪼개기 지식과, 돈을 대하는 자세를 알아야 한다. 위 그림 역시 아래 서적들을 통해 습득한 거다. 정말 도움을 많이 받은 책으로, 손을 뻗으면 언제든 잡을 수 있는 곳에 비치돼 있다.
이 책을 꼭 읽으라는게 아니다. 기왕 작성하기로 맘먹은 거, 우리는 「가계부 쓰기」를 좋아하고 좋아해야 한다. 「가계부 쓰기」가 지치는 건 방식을 잘 몰라서다. 방식을 알면 재밌어지고 지치지 않는다. 그 어떤 책이라도 상관없다. 나와 맞는 책 · 나만의 방식을 만들면 된다.
나 역시 아마추어다.
가계부를 밀릴 때도 있고, 절약하는 생활패턴으로 바뀌지도 않았다. 「가계부 쓰기」를 시작했지만 눈에 띄는 진보가 보이지 않으니 나 역시 답답했다. 가계부 따위 포기할까 생각도 들곤 한다.
딱히 나아지는 결과물도 없으니 마음만 조급해진다. 어느날, 우연히 시청한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이런 말을 했다. '같은 장소를 걷고 있다 하더라도 나선계단이라면, 분명 조금씩 위로 올라간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성장하니, 포기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그 대사 한마디에 마음의 안정을 받았다. 내가 위안을 받았던 것처럼 누군가도 위안을 받길 바란다. 지출내역만이라도 열심히 쓰다 보면, 분명 3개월 후 「가계부 쓰기」 노하우가 생기겠지. 그런 믿음으로 나는 오늘도 영수증을 챙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