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는 것이 부끄럽다. 그래서 울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드라마 ‘도깨비’를 보고 울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종종 눈물을 흘릴 때가 있다. 아이들을 혼내고 난 후이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혼내는 것은 참 마음 아픈 일이다. 혼을 내고 나면 아이를 한참 동안 안아준다. 어쩌면 안기고 싶은 것일 수도. 아이의 등 너머로 나도 같이 눈물을 조금 흘린다.
눈물은 여러 종류가 있다. 누군가를 보고 싶어서 흘리는 눈물은 순수하고 아름답다.
어제저녁 아이들은 엄마와 외갓집에 갔다. 모처럼만의 자유인지라 기분이 좋았다. 밤늦게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아주 슬프게 울고 있었다. 아빠가 보고 싶다고 했다. 아빠를 사랑한다고도 했다. 아들은 전화기를 켜둔 채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잠이 들었다. 나라는 사람은 아이에게 이렇게 소중하고 간절한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누군가가 보고 싶어 이렇게 눈물을 흘린 적이 있나?’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엄마와 아빠가 보고 싶어 울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났다. 요즘은 부모님이 보고 싶어도 울지 않는다.
아이들은 매 순간을 영원처럼 산다. 그래서 그 순간의 그리움은 무한의 그리움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다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때문에 매 순간을 영원처럼 살지 않는다. 그래서 슬픔도, 아쉬움도, 기쁨도 그렇게 크지 않다.
어른에게도 무한의 감정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영원히 이별을 할 때이다. 다음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순간은 영원이 되고 슬픔과 후회의 무한을 느끼게 된다. 이미 어른이 되어 아이들처럼 순간을 영원처럼 살지는 못하지만, 소중하고 간절한 것을 익숙함으로 인해 놓쳐버리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엄마에게 전화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