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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레몬 May 18. 2024

E인데 누워있는 엄마,  I인데 전교회장 아들

[못났어도 가족입니다.]

경력보유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생 중 한 명인 'K'는 교육이 진행되는 두 달 동안 열정적으로 교육에 참여했다. 주 5일을 맨 처음 도착해 예습을 했고 동기들과도 잘 어울리며 지냈다.


교육생들 중 나이가 있던 'K'는 큰 언니 역할을 하며 모두를 챙기는 리더였다.

그런  'K'와 상담을 하게 되었다.


"선생님이 함께 해주셔서 이번 교육반은 참 분위기가 좋아요.  열심히 하시니 구직활동도 분명 좋은 결과가 있으실 거예요." 나의 얘기를 들은 'K'는 안심된다는 표정을 하며 "제가 지금 잘하고 있나요?"  'K'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주시고 자격증 공부도 열심히 하시고 너무 잘하고 계시는걸요." 나의 대답을 듣고 'K'가 말했다.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네요.... 정말..."  'K'는 여러 번 같은 말을 하더니 훌쩍이기 시작했다. 항상 밝아 보였던 'K'의 울음에 당황했다. 잠시 후에 울음을 그친 'K'는 왜 자신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말해주었다.


 'K'는 결혼과 출산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경력단절이 되었지만 특유의 밝은 성품으로 가정에서도 즐겁게 지냈다. 결혼 15년 차가 되고 아들이 중학교 입학을 앞둔 어느 날 한통에 전화를 받았다. 출장을 가던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가장의 부재에 가족의 일상이 무너졌다. 'K'는 이웃의 걱정 어린 시선이 불편해 여동생이 사는 동네로 멀리 이사를 왔다.

툭하면 눈물이 났고 사람을 만나기 두려웠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몸은 여전히 무거웠고 늘 두통이 있어 누워만 지내니 여동생이 살림을 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오후가 다 되도록 누워만 있다가 'K'는 물을 마시기 위해 일어났다. 테이블에 상장이 하나 있었다. '전교회장 임명장' 이였다. 아들의 이름이 있었다. 머리가 멍했던 'K'는 몇 번을 다시 읽어 보았다.

아들이 전교회장이 된 것이다. 그날 'K'는 그제야 아들의 입장을 생각하게 되었다.

아들은 낯가림이 심하고 자기표현에도 소심했었던 MBTI로 치면 'I'인 내향적인 성격이었다. 그런 아들은 자신과 제일 잘 통했던 아빠와 갑작스럽게 이별을 하게 된 것이다. 또 낮선동네로 이사 왔고 어려워진 형편에 집은 좁아졌으며 엄마는 아파서 계속 누워있었다. 이모가 챙겼다지만 엄마였던 'K'는 아들에게  중학교 생활은 어떤지, 친구는 사귀었는지, 공부가 어렵진 않은지 묻질 못했다.


그런 아들이 전교회장이 되었다는 것이 비현실처럼 느껴졌다.  상장옆에는 쪽지가 있었다.

[엄마! 나 전교회장 되었어. 친구도 사귀었고 선생님들도 모두 좋은 분이야. 이모가 해주는 밥도 맛있고 외동이라 심심했었는데 이제는 사촌동생 두 명이랑 같이 PC방도 다니고 재미있고 좋아요. 엄마! 아빠는 지금 안 계시지만 우리 잘해보자! 나 잘해보고 싶어서 씩씩하게 도전하고 있어. 근데 엄마, 나도 내가 될 줄 몰랐는데 열심히 하니까 이게 되네. ㅎㅎ 그러니까 엄마도 많이 힘들겠지만 힘을 내세요.]

아들의 글을 읽고 'K'는 펑펑 울었다. 언제 이렇게 커버렸는지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자신은 슬픔에 매몰되어 허우적거리고 있었는데 아들은 자신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부끄러웠다. '어린 아들도 삶에서 최선을 다하는데 '엄마'라는 사람이 너무 나약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K'는 거울을 보았다. 지치고 까칠한 모습이었다. 창문을 열었더니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간단히 샤워를 했다.  

아들이 좋아하는 딸기를 사기 위해 오랜만에 집 밖으로 나왔다. 그때 거리에서 '취업교육훈련'을 안내하는 현수막을 보고는 신청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왕 받는 교육 아들처럼 최선을 다해서 즐겁게 열심히 해보았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이 교육을 받게 되었고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K'도 아들도 너무 멋졌다. 우리는 취업까지 함께 최선을 다해보자고 했다.


'K'는 교육 후에 바로 취업에 성공했다. 들어간 회사에서도 승진도 했으며 연봉도 많이 받는다고 가끔 안부 전화를 했다. 아들의 안부를 물었더니 엄청 잔소리를 한다며 행복한 투덜거림을 했다.






몇 해 전 가족심리상담 공부를 한 적이 있다.

몇 달의 과정이 끝나고 누군가가 교수님께 질문을 했다.

*학생 :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건강한 가족'은 무엇입니까?"

*교수님 : "제가 많은 가족을 상담하면서 느낀 건강한 가족이란 모두 성인이라는 전제에서는 매일 전화하고 관심 갖고 일상을 항상 공유하는 소통이 친밀한 가족은 아닙니다. 몇 년씩 못 봤고 각자의 환경에서 열심히 살다가 가족구성원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순간적으로 단합하고 응집해서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할 수 있는 가족 '건강한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 문제 없이 평온한 일상이 감사한 것은 그것이 유지하지 못하게 될 사건들이 늘 생기기 때문이다.

그 사건들은 늘 상처가 되고 너무나 사적이어서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하더라도 나누기 힘든 일도 있다.

못났던 잘났던 가족이 있기에 투정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괜히 원망을 쏟아 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세상에 태어나 '인생'이라는 고된 여행을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오늘도 한 발 한 발 미약하게 내딛고 살도록 응원하는 동반자가 가족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부산에 사는 남동생이 생각난다.

 몇 주에 한 번씩 톡이나 하지만 사실은 누나가 마음속 깊이 많이 사랑하고 뜨겁게 응원하고 있다는 이 마음은 저 깊이 잘 접어두고(부끄럽고 낯간지럽다) 생존신고를 서로 해보는 단답형 카톡을 날려 볼까 한다.  


가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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