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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Sep 14. 2024

평탄한 길(3:1-20)

주의 오심을 예비하라

세례요한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는 자로 소개된다. 그는 이사야 말씀을 인용하여 말한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주가 오시는 길을 평탄케 하는 자. 그가 세례요한이다. 그는 어떻게 평탄화 작업을 했는가?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였다. 회개는 주의 오심을 준비하는 평탄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무슨 의미일까? 예를 들어 식사예절을 배우는 한 아이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물과 음식으로 장난을 치지 않고, 소리를 내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식사를 방해하는 행위 등을 하지 못하게 교육을 받는다. 꼭 필요한 교육이어도 아이의 마음은 불편해질 수 있다. 자유가 억압당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규범과 예절을 지키는 일은 때론 억압을 받는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규칙을 위반하는 걸 그냥 둘 수 있을까?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규칙과 예절은 필요하다. 그렇다면 억압된 마음은 어찌해야 할까? 행위 이전에 받아들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아이 스스로 식사예절이 필요하다고 여길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러면 아이는 어떻게 규칙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억울하면 억울하다고 말하고, 이해가 되지 않으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아 식사예절은 사회생활을 할 때 정말 중요하구나.'라고 받아들이게 된다면 예절은 더 이상 아이를 억누르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규칙과 예절을 모두 받아들이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 규칙과 예절이든 또 문화와 풍습이든 어느 시대와 어느 사회든 그 사회를 관통하는 흐름이 있다. 가부장제도가 당연시 여겨졌던 시대가 있었고, 성과주의가 당연시되는 사회도 있다. 그러면 개인에게 부과되는 시대의 요구가 모두 선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때로는 관습을 타파해야 하는 때도 있다. 그러니까 관습은 필요하나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며 때로는 변화시켜야 할 때도 있다는 거다.


이상적인 삶을 생각해 보자면 받아들여야 할 건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아야 할 것은 받아들이지 않으며, 변화시켜야 한다면 변화시키는 삶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변화시켜야 할 구습을 만족히 받아들이고 살기도 하고, 받아들여야 할 규칙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억울해하기도 한다. 스스로 생각하지 못한 채 끌려다니기도 하고, 스스로 택한 일이라고 여기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 속에서 저마다의 잣대를 가지고 서로를 비난하고, 스스로를 옳게 여기며 살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삶은 평탄하지가 않다. 오르막길만 걷는 듯한 삶이 있고, 내리막길만 가는 듯하나 골짜기에 빠진 삶도 있다. 어느 위치에 서는지에 따라 너무 다른 세상이 펼쳐지다 보니 사람은 일단 좋아 보이는 자리로 가려고 든다. 대체로 높은 자리를 탐한다. 그러나 평탄하지 않은 세상에서 어디에 선들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험한 산새를 이루고 있는 세상. 굴곡 가득한 삶.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문명이 시작된 이래로 평탄한 사회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현실에 발붙이고 사는 한 평화로운 삶을 영위할 있을까 싶다.


그래도 한 가지 희망을 가져본다. '주의 오 실 길을 예비하는 자' 그가 제시하는 삶을 따라가 보고자 한다. 바로 회개하는 삶이다.


흔히 사람들은 회개를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실 근본적으로 무엇이 잘못인가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식사예절을 배우는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아이가 식사예절을 받아들이지 않고 반항을 한다면 아이에게 기대하는 회개는 반항을 멈추고 식사예절을 받아들이는 게 된다. 그런데 만약 아이에게 요구된 식사예절이 남성과 여성이 한 상에서 밥을 먹을 수 없다는 구습이었다면 어떨까? 회개를 해야 하는 건 예절을 따르는 자들이지 아이가 아니다.


그러면 참된 회개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일까? 역시 생각하는 힘이다. 무조건적으로 관습에 따르지 않으며 관습의 역사와 필요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익숙함을 의심해 보고, 낯섦을 받아들여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가만히 생각해 보고 가만히 기다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흐름의 휩쓸려 살기보다 흐름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하면 어느새 평탄한 길이 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신을 만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평탄하지 않은 삶에서 건져내고, 사랑과 평화의 길로 안내하는 신의 음성이 들려온다.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 각자의 자리에서 돌이켜 새로운 삶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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