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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꿈 Nov 27. 2022

늑대는 억울했다

이건 어쩜 우리네 이야기


그냥 늑대 아니고, 팬티 입은 늑대 이야기

‘팬티’, ‘똥’, ‘오줌’ 등 지저분하거나 창피함을 느끼게 만드는 단어만 들으면 까르르 웃어대는 아이들에게도 책을 펼치기 전, 표지에서 먼저 만나는 제목, 그리고 알몸에다 팬티 하나 달랑 걸친 늑대의 모습은 웃음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 책 소개 중 일부-


  맞다. 왜 아이들은 저런 말에 크게 반응하는지 되게 좋아한다. 하긴 나도 궁금했다. 늑대는 늑대인데 팬티 입은 늑대? 팬티 입은 늑대의 모습이 그려진 표지만 보고 “오, 이 책 신선하겠는데.” 했었다. 무서운 늑대가 아니고 우스꽝스러운 늑대, 이 새로움에 구미가 당겼다. 책을 펼치면 펼쳐지는 숲속 동물들의 이야기에 빠져보자.


윌프리드 루파노 글, 마야나 이토이즈 그림, 『팬티 입은 늑대』, 김미선 옮김, 키위북스, 2018년 (이미지 출처: YES 24)


  여기 숲속 동물들이 입을 모아 무섭다는 동물이 있다. 매서운 눈빛에 뾰족뾰족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동물은? 늑대다. 숲속 동물들은 하나같이 늑대를 무서워한다. 산꼭대기에 사는 늑대가 숲으로 내려오면 끝장이라고 겁을 먹었다. 숲속 신문에는 늑대가 숲속 동물을 둘이나 또 잡아갔다고 한다. 무시무시한 소문이 자자하다. 동물들이 한데 모여 자리 잡고 앉아서는 늑대 분석 브리핑을 듣고 있다. 어떻게 생겼나 분석하고 앉았네. 너무 무섭다며 오들오들 떨며 겁에 질렸다.


  그냥 내내 덜덜 떨고만 있을 수 없었나 보다. 값비싼 세금을 내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늑대 잡는 부대가 있다. 그럼 안전해? 토끼의 “늑대가 나타났다!” 한 마디에 모두 삼십육계 줄행랑에 늑대 잡는 부대도 제자리에 얼어붙은 걸 보니 미덥지 않다. 숨어서는 다들 “늑대 코는 정말 엄청나게 길구나! 말로만 듣던 번득이는 눈빛 좀 보라고.” 늑대를 처음 본 듯이 놀란다. 이제 보니 진짜 늑대는 한 번도 못 봤으면서 늑대에 대한 말만 많았구나.


  “가만, 늑대 맞아?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팬티 입은 늑대는 상상도 못 했나 보다. 늑대 잡는 부대가 긴급 상황이라며 아주 해로운 늑대가 나타났으니 얼른 숨으라고 말한다. 누구에게? 늑대에게.

죄송합니다만... 제가 늑대거든요. (정적)

늑대가 자기가 늑대가 맞다고 말하는 이상한 상황이다. 맞다고 맞다고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는다. 나쁜 늑대와 귀여운 팬티는 어울리지 않는단다. 모두 내가 믿는 것만 정답인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나 보다. 참 답답하다.


  근데 왜 팬티야? 위기에서 늑대를 구해준 소중한 팬티란다. 얼음장 같은 바위에 앉으면 엉덩이가 꽁꽁 얼게 추워 큰 소리로 “아울~~~” 울고는 기분 나쁜 채로 산 아래로 내려왔단다. 이때 포악한 눈빛에 털이 곤두선 늑대를 봤나? 이때부터 팬티를 입게 되어 늑대는 더 이상 추위에 떨지 않게 되었다. 항상 그랬던 것이 아니라 화났을 때의 늑대만 보고는 오해했나 보다. 그럴 리가 없다며 아기 돼지 삼 형제도 늑대가 데려가 잔인하게 먹었을 거라며 아무도 믿지 않는다. 하지만 늑대는 아기 돼지를 본 적도 없단다. 반대편 숲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다 먹는단다. 오호 재밌네.


  다음 동물들의 반응도 재밌다. 으앗 다들 큰일 났다. “이제 울타리, 늑대 덫은 누가 사지?” 늑대 사건이 없다면 숲속 신문에 실을 이야기가 없다. 앞으로 모여서 할 얘기도 없다. 평생 연구한 늑대 공포증 이겨 내기 강연은 끝이다. 늑대 잡는 부대도 해체다. 일거리이자 아주 재밌던 가십거리가 한순간에 없어지니 그야말로 멘탈 붕괴다. 이때 늑대가 뼈를 때리는 한마디를 한다.

“그동안 내가 무서워서 힘들었던 거 아니야? 내가 무섭지 않다는 걸 알았는데도 왠지 더 힘들어 보인다? 도대체 왜 사는 거야? 두려움이 삶의 이유야?”

잔잔했던 동물들에게 작은 돌멩이가 하나 툭, 큰 파장이 일어난다.

“아까 늑대가 말한 ‘삶의 이유’가 뭐야?”, “너희들은 사는 이유가 뭐야?”, “두려움이란 뭘까?”

이제 안심하고 좋아할 줄 알았는데 또 다른 걱정이 앞서나 보다. 늑대가 간 뒤 동물들은 생각에 잠긴다.


  마지막 장면은 꽤 무섭다. 숲속 세상의 변화를 가장 잘 캐치하고 발 빠르게 움직이는 동물이 있다. 그새 “삶의 이유를 찾고 싶으세요? 견과류에 답이 있습니다!”로 광고판을 바꿨다. 덕분인지 손님 줄이 뒤로 길게 이어졌다. 견과류 듬뿍 소시지가 인기가 많나 보다. 근데 아기 돼지 삼 형제는 진짜 어디로 간 거지? “쉿! 알면 다쳐.” 마지막 대사였다. 손에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있다. 뒤에는 소시지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설마? 씨익 웃는 표정에서 섬뜩함이 느껴졌다. 그랬구나. 팬티 입은 늑대만 억울했고 범인은 따로 있었구나. 마지막 반전까지 그림책 하나에도 이렇게 많은 스토리가 담겨있고 재미와 깨달음까지 얻을 수 있다니 놀라웠다.


출판사 책 소개 사진 (이미지 출처: YES 24)


모두가 맞다 해도 나는 아니라고 할 수 있어

  이 그림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늑대의 팬티다. 늑대야, 그래서 그 팬티 어디서 났어? 올빼미가 늑대가 추워 엉덩이 시리다고 엉엉 우는 걸 보고는 손수 떠서 선물했단다. 동물들은 못된 늑대에게 선물을 줬다며 놀라지만 올빼미는 당당하다. 이 숲에 늑대한테 팬티 주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냐 되묻는다. 이야 멋지다. 우리에게도 올빼미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모두 맞다 할 때 내가 아니라 생각하면 아니라고 혼자라도 말할 수 있는 사람. 휩쓸리지 않고 내 주관을 지키는 사람. 기세당당하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말하는 올빼미였다. 올빼미는 이 책에서 유일하게 사회에 만연한 편견에 맞섰다. 다 같이 서 있는데 올빼미만 혼자 반대편에 서 있었다. 어떻게 모두가 무서워하는 늑대를 편견 없이 대할 수 있었을까? ‘모두가 맞다 해도 나는 아니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한때 내 인생 모토였는데 요즘은 “그래 그것도 맞겠지. 나만 다르게 튀면 안 되겠지.” 하고 따라 휩쓸리기도 한다. 그러지 말고 주체는 나, 확신을 가지고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하는데 말이다.



왜 하필 늑대일까?

  숲속 동물 세상을 떠올려보자. 그중 가장 무서운 동물은? 호랑이? 늑대? 역시 유명하다. 동화에서도 고정 역할이다.  하필이면 늑대일까? 언제부터 늑대가 무서운 동물로 각인되었을까? 어떤 이유로 낙인찍혔을까? 생각해보면 많은 동화에서 늑대는 악의 존재로 등장한다. 주인공과 대립하는 악당으로 말이다. 두려움과 기피의 대상이다. 유일하게 착하게 나온 책은 ‘폭풍우 치는 밤에정도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아기 돼지  형제에서 늑대는 돼지들의 집을 날려버리다 결국 끓는 물에 엉덩이 화상을 입고 멀리멀리 도망친다. ‘양치기 소년에서도 결국 늑대가 모든 양을 잡아먹는다.  유명한 그림 형제의 동화 ‘빨간 모자에서도 늑대는 빨간 모자 소녀의 할머니를 잡아먹고 기어코 소녀도 잡아먹는다. 다행히 사냥꾼의 도움으로 늑대  안에서 할머니와 소녀는 구출되지만, 끝까지 늑대는 아주  많은 악당으로 결국 벌을 받는 역할이다. 배는 갈라지고 무거운 돌들로 채워져 죽는다니. 늑대의 결말은 처참하다. 어째서 늑대는 악역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까? 어쩜 날카로운 이빨, “아우우우울~” 처절한 울부짖음, 맹수라는 이유만으로 무서움의 상징으로 이미지 메이킹   같다.  



  그럼 왜 하필 부엉이일까? 지배적인 여론에 휩쓸리지 않고 편견 없이 늑대를 이해해주는 역할로 부엉이라는 동물을 설정한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부엉이는 이 그림책에서 내내 나무 위에 올라가 있다. 나무 위에서 세상을 조망하며 동물들의 모습을 관찰했던 건 아닐까? 높은 곳에 올라 밑을 내려다보면 밑에서는 보이지 않던 모습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어쩜 야행성인 부엉이는 모두가 잠든 밤, 높은 곳에서 늑대의 본모습을 보지 않았을까? 늑대가 남을 해치는 그런 동물이 아닐 거라는 것도 그렇게 판단하지 않았을까? 나무 위 정상에서 발아래의 풍경을 전망할 수 있다는 점, 밤에도 생활한다는 점 때문에 남들이 모르는 것도 발견할 수 있는 동물이 부엉이가 아닐까 그저 추측해본다.


  그럼 왜 하필 다람쥐일까? 진짜 악역은 다람쥐였다. 사실 다람쥐는 콩콩 점프하는 모습이 생각나는 작고 귀여운 존재다. 그런 다람쥐를 악역으로 설정한 이유가 있을까? 아마 겉모습으로 사나운 늑대를 선한 역으로, 아무런 해도 없을 것 같은 다람쥐를 악한 역으로 설정한 것 같다. 겉모습으로만 판단하지 말라는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어째서 늑대는 착한 주인공이 될 수 없을까? 했는데 이 작품은 늑대가 선한 역할이었다. 예상을 엎고 전형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더 잘 전달되어 좋았다. 이 책 하나로 선입견, 편견, 군중심리가 얼마나 무섭고 위험한지 알 수 있었다. 한 번 색안경을 끼고 보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처음에는 편견에서 시작해 점차 차별이 된다.



소문에 사는 우리

  “늑대가 나타났다!” 하면 모두 대피한다. 뒤꽁무니 빼며 숨기 바쁘다. 늑대도 억울하지 않을까? 이 책을 읽고 나서 늑대를 생각하니 늑대의 울음소리가 어딘가 처연하다. 늑대의 하울링에 슬픔이 담긴 것 같다. 억울함 같기도 하고. 근데 늑대가 진짜 잡아가는 거 본 동물 있어? 아무도 없어? 그럼 이거 누가 선동하고 있는 거 아냐? 모두 가짜 뉴스, 과장된 소문에 속고 있는 것 같다. 왜 늑대에 대한 이런 소문이 생긴 걸까? 이 책은 우리네 이야기 같다. 우리는 소문에 산다. 뒷말이 계속 돈다. 여기에 속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귀 기울이게 된다. 궁금하고 듣고 싶다. 지금도 사람 여럿 모이는 곳에는 항상 가십거리가 넘쳐난다. 늑대를 본 적도 없으면서 늑대는 어떻게 생겼다, 어떻다 입들을 떼는 게 카더라 통신을 사실보다 더 사실로 믿는 우리네 모습 같았다. 출처도 불분명하고 신빙성이 없는 정보인데도 사실인 양 전달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편견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본질을 보지 못했다. 심지어 사실이 밝혀져 진실이 드러났을 때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너와 내 생각이 다를 수는 있는데 내 생각에만 사로잡혀 내 생각이 틀렸음에도 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끝까지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어딘가 우리를 보란 듯이 비판하는 것 같아 뜨끔했다. 카더라 통신 이제 그만! 작가의 메시지에 나도 같이 반성하며 이 책을 읽었다.


내 생각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기
열린 자세로 바라보기
겉모습보단 내면을 보기
주위에 휩쓸리지 않기
자기 확신, 주관을 지키기


  이 책은 특히나 인상 깊은 장면이 많았다. 먼저, 늑대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하는 장면이다. 늑대 경보기, 늑대 올가미, 늑대 울타리, 늑대 범죄 소설을 판다. 한편에선 늑대에게 살아남기 위한 태권도 수업을 하고 있고 늑대가 무서우신 분은 견과류를 드시라며 팔고 있다. 두려움이 사라지는 아몬드 과자란다. 이거 완전 허위·과장 광고 아니야? 어쩜 우리랑 같네. 뭐 하나가 이슈가 되면 그걸로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고 뜨겁게 불타오른다. 물론 뜨거웠던 관심이 무색하게 쉽게 사그라들곤 또 새로운 주제로 넘어가지만 말이다.


  늑대가 무서운 동물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다들 다른 걱정에 휩싸이는 장면이 있다. 인생은 걱정의 연속이라 했던가? 동물들은 앞으로 늑대 없이 뭐 먹고살지, 뭐 하고 살지 걱정한다. 두려움의 대상이 사라졌지만, 삶의 이유는 찾지 못했다. 처음부터 삶의 이유 같은 건 생각해보지 않았다. 모두 고민에 빠졌다. 이제는 소문에 살 게 아니라 내 생각을 정립해야 할 때다. 억울한 누명에도 산책이나 마저 하겠다며 쿨하게 계속 가던 길을 가는 늑대도 인상 깊었다. “삶의 이유”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던져주고는 다른 동물들에게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도 모른 채 떠났다.


  마지막으로 반전 있는 결말이 인상 깊었다. 태세 전환 빠른 다람쥐가 사실은 모두 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철저히 계산해 준비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충격이었다. 다람쥐 같은 사람이 어딘가 있을 것 같아 두렵고 쓸쓸하지만, 부엉이 같은 사람이 있다는 걸 꼭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나머지 동물들처럼 누구 말에 쉽게 혹해 그게 정답이라 믿는 대중으로 살지는 말아야지. 누군가의 이야기를 가십거리 삼아 재미 삼아 살지는 말아야지.



아이들과 이렇게

  이 그림책은 구석구석 자세히 보면 보이는 그림과 글들이 있다. 작가가 숨겨둔 것들을 찾으며 다시 읽으니 또 재밌었다. 이 책으로 아이들과는 어떤 수업을 할 수 있을까? 이 책 하나에도 전달하는 주제가 많아 아이들과 다양한 주제로 독서토론을 해볼 수 있겠다. 분명 아이들도 이 책으로 느끼고 깨닫는 바가 있을 것이다.


늑대는 어떻게 지낼까? 이 뒤에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가짜 뉴스와 진짜 뉴스를 구별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삶의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나에게 두려운 대상이 있을까? 이런 두려움이 나에게 좋을까?
허위·과장 광고에 속지 않고 현명한 소비를 하는 좋은 방법이 있을까?
편견을 갖지 않고 사람을 대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의 공간에 나의 글을 남깁니다.


글자국 하나하나가 모여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현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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