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초가을, 자전거 타기 정말 좋은 날
나에게는 병이 하나 있다. 거절을 못하는 병. 어느 날은 친구가 나에게 광화문 광장 앞에서 월드컵 공원까지 완주하는 서울 자전거 대행진이라는 프로그램에 같이 참가하자고 말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좋아’라고 외친 나는 한 가지 문제점을 깨달았다. 바로 내가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는 것. 나의 한 달 자전거 특훈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나의 자전거 배우기 역사는 참으로 눈물겹다. 어렸을 적 엄마는 귀한 외동딸이 사고라도 당할까 자전거의 ‘자’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킥보드, 힐리스는 다 사주면서도 유독 자전거만은 맹렬하게 뜯어말렸던 엄마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던 나는 자전거 타기를 포기했다.
두 번째 자전거 배우기는 성인이 되고 나서 20살 초반 무렵의 일이다. 친구 하나가 자전거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거절을 못하는 병을 겪었던 나는 흔쾌히 따라나섰고 그 친구는 위급 상황에서 더 빨리 배우는 법이라며 자전거를 탄 나를 급경사 길에서 밀어버렸다. 급경사 길에서 운 좋게 균형을 잃지 않고 무사히 내려오자 이 방법에 확신이 들었던 친구는 나를 두어 번 더 밀었고 그 결과 나는 자전거에 대한 두려움을 얻고 그 친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자전거를 다시 배울 생각에 벼랑 끝으로(과장이 아니라 정말 내겐 벼랑처럼 느껴졌다.) 떠밀렸던 공포감이 생생히 살아나는 듯했다. 자전거 대행진에 나가기로 한 날부터 괜히 두통과 복통이 번갈아가며 찾아왔다. 두통과 복통에서 날 구원해 준 건 게보린이 아니라 바로 동거인 H였다. 그녀는 호기롭고 당차게 말했다.
“자전거를 열심히 배웠는데도 못 타겠으면 대회 중간에 그만두면 되는 거야.’
H가 툭 건넨 말이 굉장히 그럴듯하게 들렸다. ‘언제든지 나는 그만둘 수 있다.’ 내가 원하는 때에 멈출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용기가 샘솟았다. 모든 일을 깊게 생각하고 최악의 최악을 고민하는 나와 달리 H는 뒤끝 없는 성격을 가졌다. 어차피 무너질 돌다리를 두드려보고 건너서 뭐 하게,라고 생각하는 타입이랄까. H가 해주는 조언이 백발백중이라 교주처럼 그녀를 따르는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조용히 따릉이 앱을 깔았다.
나와 H는 집 근처 한강 공원 공터에서 자전거 훈련을 시작했다. 아니, 실시했다. 벼랑 끝으로 떠밀린 기억을 온몸이 기억하는지 균형 잡는 데는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핸들을 제어하는 일이었다. 사시나무 떨듯 팔이 덜덜 떨려 도저히 손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 핸들이 고장 난 8톤 트럭에 몸을 실은 사람처럼 나는 공터 여기저기를 비틀거리며 내달렸다. 멀리서 보면 나는 분명 귀신 들린 자전거에 탄 사람처럼 보였을 게 분명하다. 험한 것이 붙은 자전거에 몸을 맡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H는 구마를 시작했다.
“자, 핸들을 그냥 꽉 쥔다고만 생각해. 그리고 방향만 트는 거야.”
“근데 자꾸만 핸들 쥔 손에 힘이 들어가.”
“힘을 빼면 돼. 그럼 방향을 바꿀 때 더 유연해져.”
그렇구나. 힘을 빼는 사람은 유연해지는구나. H의 조언대로 핸들을 쥔 손에 힘을 빼자 핸들이 부드럽게 돌아갔다. 갑자기 나를 스치는 기분 좋은 바람과 공놀이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일렁이는 한강의 물결이 훅하고 눈앞에 펼쳐졌다. 힘 빼기란 참 즐거운 일이구나.
이후 몇 차례의 한강 특훈이 끝나고 자전거 대행진의 날이 가까워지자 다시 두통과 복통이 찾아왔다. 행사 전에 신청해 둔 티셔츠와 번호표가 집으로 배송된 것을 보고 급기야 나는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대회 당일이 되자 H와 나는 집 근처에서 따릉이를 빌려 광화문으로 출발했다. 지하철에서 마주친 '상급자'들은 타이트한 타이즈를 뽐내며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뿜어냈다. 광화문역이 가까워지자 나는 ‘자전거 대행진 사고 이력’ 같은 키워드를 검색해 스스로의 불안감에 불을 지폈고 H는 내 옆에서 덤덤하게 라테를 마시고 있었다.
행사장에 들어서자마자 우리와 같은 ‘초급자’ 코스를 신청한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아무리 같은 초급자 코스라지만 설마 나처럼 자전거를 지금 막 배운 사람이 있으려나. 사회자는 우렁찬 목소리로 자전거 대행진의 시작을 알렸고 나는 정말 기절 직전인 사람이 되었다. 같이 대행진에 참가했던 친한 동생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점점 멀어져 갔고, 나는 달달 거리는 팔과 함께 비틀거리며 뒤꽁무니에서 한숨을 쉬며 페달을 밟았다. 이대로는 월드컵 공원은커녕 집 앞 편의점도 못 가겠군. 고심 끝에 나는 동거인 H에게 비장하게 이야기했다.
"나 버리고 가. 난 틀렸어. 너라도 가서 살아"
동거인 H는 끄덕도 하지 않았고, 내 따릉이에 들린 귀신을 퇴치하기 시작했다. 몇 차례의 엑소시즘을 거치며 구마에 성공한 듯했던 내 따릉이는 다시 귀신 들린 자전거가 되었다. 자전거는 완벽하게 자아를 갖춘 물체처럼 자신만의 길로 나아갔고 이제껏 유능한 엑소시스트였던 H마저 어쩔 도리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러면 그렇지. 나와 자전거는 정말 상극이구나. 울면서 중도 하차를 외치려던 순간, H가 이렇게 말했다.
“나 찾는다고 옆에 쳐다보지 말고, 앞만 보고 페달을 밟아. 내가 옆에 계속 같이 있으니까.”
이 말을 듣는 순간 괜스레 울컥해졌다. 앞만 보고 페달을 밟은 나는 비로소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자전거 대행진에서 인생을 함께할 페이스 메이커이자 동반자를 얻었고, 인생을 살아갈 교훈을 얻었고 완주 메달도 얻었다. 자전거 대행진이 끝나고 친구들과 모여 냉면을 먹었다. 냉면을 먹는 도중 애지중지 가지고 있던 메달을 집에 오는 길에 지하철역에서 잃어버렸다. 메달은 잃어버렸지만 그날의 추억은 너무도 생생하다. 정말 근사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