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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나 Oct 14. 2024

참을 수 없는 풋살의 즐거움

2024년 늦여름, 여름이 지나도 계속되는 폭염


끈질긴 폭염에 몸도 마음도 나른해져 간다. 출근길에 따가운 햇볕을 맞으며 회사에 들어가 앉으면 등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다. 이럴 때면 그냥 마음껏 땀을 흘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 머리가 망가질까 봐 얼굴이 땀에 젖을까 걱정하지 않고 어디론가 나가서 자유롭게 달리고 싶다. 마음껏 달리는 상상을 하면 어느새 내 마음은 잔디밭 위를 누빈다. 공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끊임없이 구장 위를 달리고 또 달린다. 아직도 마음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운동, 풋살은 내게 첫사랑처럼 다가왔다. 


풋살을 하며 나는 전생에 골든 레트리버였을까 생각했다. 개처럼 뛰어서가 아니라 공만 보면 행복해서. 한 풋살 클래스에서 나처럼 공만 보면 행복한 동생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유솔이로, (현) 싱어송라이터 (현) 필라테스 강사 (현) 미용사이지만 (현) 식당 사장으로 살고 있는 다능인이다. 풋살 클래스에서 그녀와 친해지게 된 건 플레이 호흡이 잘 맞아서가 아니라 순전히 식성이 비슷해서였다. 


풋살에 미쳐있던 우리는 2회 레슨과 1회 동호회 참석과 같은 국가대표 상비군 스케줄을 소화했고, 수요일엔 풋살 후 치킨 금요일엔 풋살 후 삼겹살 등의 위장 강행군을 멈추치 않았다. 공과 음식을 주거니 받거니 하던 6개월 차엔 풋살 실력뿐만 아니라 우리의 몸집도 상당히 늘어나 있었다. 그 당시 우리는 한 놈만 팬다는 심정으로 순두부찌개에 쫄면을 푼 ‘쫄순이’를 루틴처럼 먹어댔다. 호날두가 체지방 6%를 유지하기 위해 식단을 했다면 우리도 풍채를 유지하기 위해 콜라를 가까이하고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섭취했다. 우리는 인조 잔디와 천연 잔디를 넘나들며 “헤이! 유솔이~” “유나야 왼쪽으로 찬다.”를 외쳤다. 그리고 1년 뒤 우리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니 나 요즘 왜 이렇게 숨이 차지?”
“그러게. 나 어제 먹은 쫄순이 뚝배기를 몸에 달고 뛰는 거 같아.” 


우리는 자뭇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의 건강을 염려했다. 이렇게 잘 먹고 잘 뛰고 잘 자는데! 왜 이렇게 몸이 무거운 거지? 이게 바로 호르몬 이상인가? 만성 피로 누적? (왜 그냥 살이 쪄서 그런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까?) 장고 끝에 우리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이것은 운동량 부족이다. (네?) 이제 우리는 국가대표 상비군이 아니라 국가대표처럼 운동하기 시작했다. 매일 저녁 밴드로 근력 운동에 인터벌 달리기 훈련에 스텝 훈련까지. 우리는 서로에게 가혹한 채찍질을 가하기 시작했다.


“언니, 풋살이 계속하고 싶어?”
“허억, 헉…(마른침을 삼킨다.)”
“이렇게 하면 데뷔 절대 못해.”


취미로 시작한 풋살에 너무나도 진심이었던 우리는 모든 일에 죽자고 덤벼들었다. 그래도 힘들었던 훈련(?)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운동장에 서있었던 서로의 존재가 듬직했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 나와 솔이는 각자 힘든 연애와 직장 생활을 겪으며 인생의 고비를 넘기고 있었고 어딘가 내 편이 있다는 것을 풋살로서 감각할 수 있었다. 언제나 내가 부르면 달려와주는 내 편. 나의 패스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 시절 우리는 멈출 줄 몰랐고 운동장에선 무서울 게 없었다. 


가열하게 달리던 우리의 풋살 열차는 나의 새로운 직장과 연애로 솔이의 새로운 도전으로 달리기를 멈추게 되었다. 가끔 나는 은퇴한 선수처럼 신발장 한구석의 풋살화를 만지작 거린다. 요동치는 감정을 위한 분출구가 필요했던 그 시절의 나는 내 마음을 타인에게 표현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솔이는 운동장 위에서 내 패스만으로도 내 달리기 만으로도 내 기분을 알아챘다. “오늘 패스는 영 힘이 없네.” “오늘 왜 이렇게 빨라! 기분 좋은 일 있어?” 마음을 들키는 일을 싫어하는 나는 그땐 솔이가 내 마음을 한껏 알아차려 주길 바랐던 것 같다. 나는 네모난 운동장을 달리고 또 달리며 누군가를 미워하는 네모난 마음을 공처럼 둥글게 만들었다. 미워하는 마음을 잠시만 멈춰두고 울고 싶은 마음을 조금은 미뤄둔 채 해사하게 웃으며 솔이에게 외쳤다.


“헤이! 솔이. 나 오른쪽으로 들어간다!”


나와 솔이가 연락하는 횟수는 전보다 많이 줄어들었다. 지금은 그때의 이야기를 자주 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한 시절을 함께 살아냈다는 것을. 우리가 한 시절을 살아낸 증거는 내 몸에도 남아있다.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는 가자미근과 종아리근육을 볼 때면 내심 뿌듯하다. 이 근육들은 내가 그 시절을 견뎌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날씨가 선선해지면 우리는 입버릇처럼 “한 게임 뛸까?”를 외친다. 아쉽게도 이 약속이 성사된 적은 없다. 지금 나와 솔이는 조금 다른 삶의 궤도에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삶의 궤도가 맞닿는 순간 우리는 같은 운동장에 설 수 있겠지. 그리고 나는 확신한다. 우리는 그때도 끝내주게 재미있는 공놀이를 할 것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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