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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영옥 Mar 10. 2024

겨울의 수학지도

 겨울방학 두 달 동안 진행했던  수학지도가 끝났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을 가르쳤다. 열정뿜어 달린 후 갑자기 멈춰짐에 허무함이 밀려온다. 밀물이 들어오고 썰물이 빠지 듯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과 점점 친숙해졌다. 현관문 열고 들어올 때부터 종알 종알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이들은 오늘 어떤 수업을 하게 될지보다 무슨 이야기를 하며 재미를 만들지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그에 화답하 듯 나는 최대한 수학교구를 잘 활용하여 재미있게 수업을 하려고 이런 저런 준비를 해둔다. 펼쳐둔 상에 쪼로록 앉은 여자 아이들은 말똥거리는 눈으로 앞에 놓여진 색종이를 만지작 거린다. 성질이 급한 아이는 벌써 가위로 자르려고 하고 색종이를 접어도 본다.

 오늘은 직각, 직각삼각형, 직사각형, 정사각형을 직접 색종이로 접고, 오리며 배우는 시간이다. 잘 되지 않는 것은 서로 도와가며 해보기도 한다. 글로 배우는 수학보다 직접 구체물로 조작해 보는 활용수학이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수학개념을 스며들게 한다. 활동 후에 문제를 풀고 틀린 사람은 엉덩이로 이름 쓰는 벌칙도 하니 너도 나도 쇼파에 올라가 춤추듯 엉덩이를 흐물거린다. 별것 아닌 것에 웃겨서 까르르 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나도 덩달아 초등학생이 된 듯 웃는다.

 마지막 수업은 마트 놀이였다. 이 놀이는 이마트 전단지를 활용했다. 우선 전단지에 가격이 적힌 용품들을 오린다. 오린 종이를 펼쳐놓고 아이들이 사고 싶은 물건을 골라오게 한 후, 그것을 도화지에 붙인다. 그런 후 영수증에 자신이 산 물품 이름과 가격을 적으면 된다. 여기 까지 그냥 놀이 일 수 있지만 가격의 숫자를 읽어보고 총 얼마인지 알아보는 계산을 하면서 수학이 실생활에 스며들어 있음을 안다. 계산이 틀리지 않도록 바로잡아 줌으로써 4자리 또는 5자리 수계산도 직접 해본다. 놀면서 수학개념을  흡수시키는 이런 활동들에 아이들은 매료된다.

 그러나 항상 재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를 풀다가 잘 안풀리고 속상하니 울어 버리는 아이도 있다. 옆에 친구는 맞으니 더 속상한 것이다. 또 서로 자기 것 보지 말라고 옆의 아이에게 눈을 흘기기도 한다. 그러니 옆의 아이는 본게 아니라 앞을 보니 그쪽이 보아진 거라고 변명도 해 본다.  장난꾸러기 현석이는 장난이 지나쳐 나에게 호되게 혼나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문제를 풀기도 했다. 울어서 걱정했는데 수업이 끝나고 과일 먹고 가겠냐고 물어보니 저녁도 먹고 가겠다고 한술 더 뜬다.

 이렇게 하루 하루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동안 정이 싹텄다. 아이 엄마들과는 친해서 수업 후에 점심을 함께 먹으며 수다 떨고 놀기도 했다. 그 시간이 좋기도 했지만 점심식사 대접과 아이들이 집에 가고 난 후 집안정리는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은 힘들었지만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부수적인 일들을 견뎠다. 왜냐하면 아이들 가르치는 일이 즐겁고 보람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학 동안 했던 수업이 끝나면서 허전함이 몰려왔다. 며칠정도 외로움이 지속되었다. 짧았기에 나중에 후회되지 않도록 알짜배기 수업을 하려고 노력했다. 교구를 활용했기에 함께 해서 즐겁고, 진도를 마치면 뿌듯하기도 했다. 사람의 정을 좋아하는 나이기에 아이들이 빠진 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을 억지로 막을 수는 없다.

  겨울의 끝자락 눈이 펑펑 내린다. 주변이 온통 하얀나라가 되었다. 쌓여진 눈송이를 보니 눈놀이 하고 있을 아이들이 생각난다. 함께 했던 겨울방학이 추억이 되고 가슴 속에 새겨진다. 눈밭을 밟으며 숭숭 구멍뚫린 기분을 달래본다. 나의 마음을 포근히 감싸주는 눈을 통해 위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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