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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은 Mar 22. 2024

26.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王陵) - 양주 온릉

1. 조선왕릉 알아보기 온릉(溫陵)』 경기도 양주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에 있는 조선 제11대 왕 중종의 원비였던 단경왕후(端敬王后) 신 씨의 능으로 사적 제21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공인 문화재이다.     


 온릉은 거창 신 씨 가문의 선산에 조성되어 있는데, 이는 남편인 중종이 반정으로 옹립되면서 반정 세력의 요구로 역적 가문의 후손인 단경왕후는 사가로 폐출되었고 복위되지 못한 채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후 영조 15년(1739년)에야 단경왕후로 복위되면서 그녀의 무덤 또한 온릉으로 격상될 수 있었다. 왕비가 된 지 7일 만에 폐위된 ‘7일의 왕비’로도 불려진다.   

   

 주변으로 군 관련 시설이 밀집해 있는 점 때문에 오랫동안 비공개 영역으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2019년 11월 14일부로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2. 중종의 원비 단경왕후의 능온릉(溫陵)』      

 단경왕후 신 씨는 본관이 거창인 익창부원군 신수근과 청원부부인 한 씨의 딸로 성종 18년 (1487)에 태어났다. 연산군 5년(1499)에 성종의 아들인 진성대군과 가례를 올려 부부인이 되었으며, 1506년에 중종반정으로 진성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연산군 12년(1506) 9월, 중종반정 당일 반정군이 먼저 진성대군을 호위하려고 집을 에워싸자 진성대군은 자신을 죽일 것이라 짐작했다.      

 이때, 부인 신 씨는 “군사의 말머리가 이궁(진성대군의 자택)을 향해 있으면 우리 부부는 죽어야 하지만 말머리가 궁궐을 향해 있다면 공자(진성대군)를 호위하려는 뜻일 것”이라며 남편을 설득했고 사람을 보내 알아보게 하니 과연 말머리가 궁궐을 향해 있었다. 이에 진성대군은 문을 열고 무사들을 맞이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중종반정 이후 생으로 이별하게 된다. 단경왕후의 할아버지 신승선은 세종의 4남 임영대군의 사위이자 연산군의 장인이었으며, 아버지 신수근은 좌의정에다 연산군의 처남이었다. 작은아버지 둘은 모두 형조 판서를 역임했고, 작은어머니(신수영의 부인, 둘째 작은아버지)는 예종의 비 안순왕후의 여동생이다. 그녀의 고모는 다름 아닌 연산군의 정비인 폐비 신 씨이다.      

 단경왕후의 아버지가 역적(연산군의 처남으로 중종반정을 반대)이라는 이유로 단경왕후는 왕비 책봉 7일 만에 폐출되게 된다. 중종 10년(1515) 중종의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 윤 씨가 세상을 떠나자 폐비 신 씨의 복위론이 있었으나 무산되었고, 명종 12년(1557)에 사저에서 71세로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난 지 182년이 지난 영조 15년(1739)에야 복위되어 시호를 단경왕후라 하고, 신주를 종묘에 부묘하였다.


 “거사할 때 먼저 신수근을 제거한 것은 대업(大業)을 이루고자 해서였습니다. 지금 신수근의 친딸이 대궐 안에 있습니다. 만약 (그를) 왕비(宮壼)로 삼는다면 민심이 불안해지고, 민심이 불안해지면 종묘사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사사로운) 은정(恩情)을 끊고 밖으로 내치소서.” 하니, (임금이) 전교하기를, "그러나 조강지처(糟糠之妻)인데 어찌하랴?" 하였다. 모두 아뢰기를, "신 등도 이미 요량하였지만, 종묘사직의 대계(大計)로 볼 때 어쩌겠습니까? 머뭇거리지 마시고 쾌히 결단하소서."라고 말하며 왕을 압박했고, 결국 전교하기를, 종묘사직이 지극히 중하니 어찌 사사로운 정을 생각하겠는가. 마땅히 여러 사람의 뜻을 따라 밖으로 내치겠다.”하였다.     

                                                                         중종실록 1권, 중종 1년 9월 9일 을유 2번째 기사     


 단경왕후는 중종반정으로 친정이 멸문지화를 당하고 남편인 중종과는 강제 이혼당하는 등, 중종반정의 최대 피해자로 전락했다.     


온릉은 조선 11대 중종의 첫 번째 왕비 단경왕후 신 씨의 능으로 단릉의 형식이다. 

영조 15년(1739) 단경왕후가 복위되면서 조선 후기의 추존 왕릉 제도로 새롭게 조성하였다. 

진입 및 제향 공간에는 홍살문, 판위, 향로와 어로, 정자각, 비각이 배치되어 있고 능침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였다. 문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 1쌍과 석호 1쌍을 배치하였다.

한겨울 온릉에 새하얀 눈이 내려 굴곡 많았던 단경왕후의 일생을 잠시나마 위로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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