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4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
3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3~4 개역)
여기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에서 인정되셨다는 단어의 헬라어 스트롱 코드사전 정의[1]를 보면 그 뜻은 ‘표시하다’이다. 즉 ‘경계나 한계를 표시하다’는 경계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것에서 ‘결정하다’는 뜻이 파생되었다. 그리고 ‘결정한 것’의 의미에서 ‘법령’이라는 뜻이 파생되고 또 ‘법령’의 의미에서 ‘법령의 포고’라는 뜻이 파생된 것이다. 즉 원래의 뜻은 경계를 인정하여 표시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아들임을 표시하는 것 인정하는 것이다. 즉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다’는 번역이 더 정확한 번역인 것이다. 개역성경과 공동번역 등 이전의 번역들이 개역개정보다 더 정확한 것이다. 인정하여 법령으로 정하고 그것을 게시하여 포고하는 것이다. 즉 선포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주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정됨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정함을 빼고 ‘선포되셨으니’라는 번역은 원래의 뜻을 좀 벗어난 번역이다.
개역개정과 바른성경 등의 번역에서 이와 같은 번역을 한 이유를 유추해 보면 번역한 학자들이 개역성경과 공동번역 원어성경 등을 보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떠올려서 그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예수님은 원래 성자 예수님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었다는 구절이 나오는가? 원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셨다는 말인가? 이러한 내용은 앞에 설명한 대로 이단 교주들이 활용해서 이단적인 교리를 만들어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합법화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내용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변증적 번역으로 ‘선포되셨으니’라고 번역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저자도 이 구절을 보고 원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는가? [2]라는 의문을 가졌었다.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으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신 것이다. 성경을 연구하고 예수님의 구속의 사역을 이해하면서 이에 대한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답은 ‘육신으로는’에 있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 나셨다. 사람이 되신 것이다. 우리를 대속하기 위해 성육신하신 것이다. 다윗의 혈통을 따라 메시야로 오신 것이다. 대속의 삶을 위해 인간으로 오신 것이다. 그리고 그 우리를 대신한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함을 받은 것이다. 그 모든 대속의 삶을 성령님의 기름부음으로 하셨다. 그래서 성결의 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시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은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과 함께 자신이 하늘에 앉았다고 표현을 했다. 자신도 자신을 대속하여 사신 예수님과 함께 죽고 부활하여 하늘에 예수님과 함께 앉은 것이다. [3]
원래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이 부활하시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고 인자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음을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이 신성 즉 신격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시고 하나님 보좌의 우편에 앉으신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원래 하나님이신 분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을 받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다시 받을 이유가 없다. 원래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시다. 그런데 무슨 뛰어난 이름을 또 받아야 한다는 말인가? 이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에베소서 1장에서 설명되어 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여 만물 위에서 예수님의 몸이 되어 만물을 통치하는 자들로 즉 교회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또 하나님께 복종하신다. [4]
이것은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이 두 번째 아담으로 인생의 대표 즉 머리가 되신 것이다. 그리고 그 두 번째 아담으로 예수님은 하나님께 복종을 하신다. 교회는 예수님께 복종을 하고 만물은 교회에 복종하는 것이다.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이 통일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신 두 번째 아담으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이다. 합법적으로 아담의 후손들을 대신하여 모든 구속을 이루시고 아담의 후손들의 대표가 되어 완전한 보증이 되시기 위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이다. 이것은 모든 인류가 하나님과 동등한 관계에 들어선다는 망발과는 관계도 없다. 오직 그 자리는 예수님만의 자리다. 하나님 보좌 우편은 하나님과 동등한 자리가 아니다. 누군가의 우편에 앉는다는 것은 그 중심에 앉으신 분보다 못하지만 그분 옆에 앉는 영광을 얻은 사람인 것이다. 우리는 단지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보증을 받고 예수님의 종들로 또 감히 형제라는 보증을 받고 감격하여 하나님과 예수님의 명을 수행하여 만유를 다스리는 것이다. 예수님은 두 번째 아담의 후손들의 완전한 대표 즉 왕이 되시어 완전한 구속을 이루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질서 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 복종하신다. 인간의 대표로서 하나님께 복종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님 사이의 복종의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형 신들을 섬기던 헬라적 사상이 신학 안에 들어와서 만들어낸 것이다. 원래는 하나님과 동등된 관계이신 예수님께서 동등한 관계를 버리고 사람으로 오시어 하나님께 복종하신 것이다. [5]
여기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실 때에 신으로서 사신 것이 아니라 두 번째 아담 인간으로 사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 양성을 가지셨고 성육신 이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이셨다. 그런데 성육신 이후의 삶은 전적으로 인간 즉 아담의 후손 두 번째 아담으로 사신 삶이었다. 신성을 잃으신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신성의 충만함이 그대로 있었지만 사역은 우리를 위한 대속의 삶이셨기에 전적으로 인간으로 사신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여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았다고 표현했다. [6]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얻으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는데 우리도 예수님 안에서 이 모든 것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몸인 교회가 되어 그 모든 영광을 누리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만물 위에서 통치하는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올라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두 번째 아담 즉 만물의 통치자인 인자 즉 아담의 후손이신 왕이 되시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시고 24장으로는 그 앞에서 통치하고 성도들은 그 보좌 앞에 서있는 것이다. 바로 하늘에 서있는 것이다. 모든 만물 위의 하늘에서 통치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모세의 수건을 벗고 예수님을 거울을 보는 것과 같이 보고 현재에는 예수님의 형상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 화한다고 했다. 그런데 바울은 현재의 보는 것이 청동거울을 보는 것처럼 희미하다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을 다시 뵐 때에는 자신이 예수님 안에서 얻을 영광에 대해 말하면서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그분을 뵈옵는 영광을 얻는다고 했다. 그러면 ‘자신은 예수님이 자신을 아시는 것처럼 그날에는 자신도 예수님을 온전히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7]
또 요한은 ‘우리가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예수님)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라고 했다. [8]
주님의 심판 날 재림의 날에 우리는 주님과 같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부활하시어 하나님께로 들리워지신 그 예수님과 같은 모습이 되어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보좌 앞에 서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로 아들의 신분으로 서는 것이다. 영광에서 영광으로 거듭난 성도들은 피조물로서 최고의 영광의 자리에 값없이 초청받은 것이다. 이것은 태초에 가졌던 하나님의 아들로의 영광의 자리로 다시 회복시키심이다. 그래서 계시록의 마지막에는 생명수 강가에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하나님을 영원히 찬송하는 자리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창세기의 에덴으로의 회복이며 첫 에덴은 지나가며 새 에덴으로의 새롭게 됨인 것이다. 첫 아담의 것은 모두 실패하였기에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에서 새 몸을 입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편 8편에서 다윗은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하고 있다.
4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십니까? 5주께서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셨습니다. 6주께서 그로 주님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으니, 7곧 모든 양 떼와 소 떼와 들짐승과 8하늘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물길 따라다니는 것들입니다. 9여호와 우리 주님, 주님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시편 8:4-9, 바른)
다윗은 이 인자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사자와 곰과 늑대를 이겼고 골리앗과 싸워 골리앗의 머리를 베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적진을 누비고 적의 성벽을 넘었다. 그리고 주변의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렸다. 예수님께 하나님께서 한량없는 기름부음을 주신 것처럼 다윗에게도 기름 부어주셨다. 다윗은 그 기름부음으로 아담의 후손으로 인자로 산 것이다.
[1]
1. to define
a. to mark out the boundaries or limits (of any place or thing)
b. to determine, appoint
1. that which has been determined, acc. to appointment,
decree
2. to ordain, determine, appoint
[2]
저자는 성경연구를 통해 위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를 찾고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 되심은 신성으로서가 아닌 인성으로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임을 알았다. 이에 관해서는 이 책과 함께 쓰고 있고 이 책 이후에 발표될 『하나님의 아들』에서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겠다.
[3]
6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함께 일으키시어 하늘에 함께 앉게 하셨다. (에베소서 2:6, 바른)
[4]
21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시대뿐 아니라 오는 시대에 일컫는 모든 이름들 위에 뛰어나게 하셨으며, 22 또한 만물을 그분의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분을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다. 23 교회는 그분의 몸이며,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의 충만이다. (에베소서 1:21-23, 바른)
[5]
6그분께서는 본래 하나님의 형상이면서도 하나님과 동등되심을 취하려 하지 않으시고, 7도리어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취하여 사람들과 같이 되셨으며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빌립보서 2:6-7, 바른)
[6]
6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함께 일으키시어 하늘에 함께 앉게 하셨다. (에베소서 2:6, 바른)
[7]
12지금은 우리가 거울을 통하여 희미하게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여 볼 것이다.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알고 있지만,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이다. (고린도전서 13:12, 바른)
18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님의 영광을 보면서 주님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이는 영이신 주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고린도후서 3:18, 바른)
[8]
1보아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 불리게 하셨느냐? 우리는 과연 그러하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것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2사랑하는 자들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나,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과 같이 될 것을 알고 있으니, 이는 우리가 그분을 계신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다. 3그분을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분께서 깨끗하신 것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한다. (요한일서 3:1-3, 바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