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3.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시 2)

by 에스겔


33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일으키셔서(G450) 그들의 자손인 우리에게 이 약속을 이루어 주셨기 때문이다. 이는 시편 둘째 편에 기록된 바와 같으니,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라고 하였다.

34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셔서(G450 [1]) 다시 썩음으로 돌아가지 않게 하셨으니, 말씀하시기를 '내가 다윗에게 한 신실하고 거룩한 약속들을 너희에게 주겠다.'라고 하셨고, (행 13:33-34, 바른)


2.3.1.3.1. 부활: 영원한 몸으로 다시 태어나심(사심)


위의 행 13:33절의 ‘일으키셔서’와 다음절인 행 13:34의 ‘일으키셔서’는 동일한 단어이다. 뜻은 부활케 하심을 의미한다. ‘34절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셔서’에서 일으키심은 부활케 하심이라는 뜻이 선명하다. 또한 이 단어는 부활을 뜻하는 헬라어 아나스타시스(ἀνάστασις)의 동사형이기도 하다. 즉 이 단어에서 부활이라는 명사가 파생된 것이다.


행 13:33의 ‘일으키셔서’를 예수님의 부활이 아닌 탄생이나 또는 구주님으로 세우심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해석은 수사학적 문맥에서 그 흐름을 벗어난 해석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바울이 한 이 전도 설교에서 바울은 예수님을 구주로 세우심에 대해 23절에서 이미 언급을 했다.


23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에게 구주 예수님을 일으키셨다. (행 13:23, 바른)



23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 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G71 ἤγαγεν) 곧 예수라 (행 13:23, 개정_strong)


행 13:23의 ‘세우셨으니”(개정)는 구주로 세우셨다는 뜻이다. 즉 어떠한 인물을 직분을 주어 세운다고 말할 때 쓰이는 표현인 것이다.

행 13:23의 ‘세우셨으니(G71 ἤγαγεν 원형 ἄγω)’는 뒤의 33절의 ‘일으키셔서(G450 ἀναστήσας 원형 ἀνίστημι)’와 단어가 다르다. 이것은 단어의 사용에 있어 수사학적으로 구분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바울이 헬라와 히브리의 수사학에 탁월했던 학자였음을 감안하면 이는 다분히 의도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행 13:33절의 ‘33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일으키셔서(G450) 그들의 자손인 우리에게 이 약속을 이루어 주셨기 때문이다.’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부활시키셔서’로 해석함이 타당하다.


그렇다면 33절의 후반부에 나오는 시편 2편의 인용

[이는 시편 둘째 편에 기록된 바와 같으니,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라고 하였다.]는

그 해석이 예수님의 성육신을 뜻하는 것이 아니게 된다. 이것은 부활에 관한 구절로 해석되어야 한다. 우리가 석의에 의하지 않고 통념적으로 예수님의 탄생으로 읽어왔던 이 구절의 뜻이 석의적으로 보면 다른 뜻인 예수님의 부활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33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일으키셔서(G450) 그들의 자손인 우리에게 이 약속을 이루어 주셨기 때문이다. 이는[as also(YLT[2]) ως και(UBS5)] 시편 둘째 편에 기록된 바와 같으니,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라고 하였다.(행 13:33, 바른)


행 13:33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잇는 접속사 ‘이는 ~와 같으니’는 영어로 as also(YLT), 헬라어로는 호스 카이 ως και(UBS5)이다. 이것은 전반부와 후반부가 그 뜻이 동일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전반부 '33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일으키셔서(G450) 그들의 자손인 우리에게 이 약속을 이루어 주셨기 때문이다.’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부활시키심으로 후반부’ 이는[as also(YLT) ως και(UBS5)]

시편 둘째 편에 기록된 바와 같으니,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라고 하였다.’(행 13:33, 바른)도 그 뜻이 동일하게 된다. 시편 2:7절의 나심은 성육신이라기보다는 부활을 통하여 새 몸을 입고 다시 사심 새롭게 나심을 뜻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롬 1:4절에서 이 단어 ‘행 13:33절의 일으키셔서’의 명사형인 부활을 뜻하는 단어가 쓰였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ἀναστάσεως 원형 G386 ἀνάστασις 아나스타시스)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4, 개역)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4, 개정)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여(G386)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임이 인정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롬 1:4, 현대인)


이미 이 책 속의 앞부분[3]에 언급된 구절이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은 죽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 하나님의 아들로 확정이 되신 것이다. 그러면 그 이전에는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지 못하셨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잘못된 교리를 가지고 설명을 하자면 답을 찾을 수 없다. 2위 하나님의 영원 독생설을 주장한다면 이는 무언가 논리상 맞지 않게 된다. 이미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면 어떻게 인정을 받는다는 말인가? 그래서 이 부분은 사람으로서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그리고 잉태케 하신 아버지 하나님과 인간 예수님과의 관계인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으로 성육신 하셨다. 그리고 물과 성령님으로 세례를 받음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나셨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죽고 부활하심으로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다시 사셨다. 예수님은 우리 대신 죄의 몸은 죽고 다시 하나님의 아들로 새롭게 나셨다. 그것이 부활이다. 그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임이 인정되셨다.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신 것은 우리를 위하여 사람으로 나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성을 가지셨으나 철저한 사람으로 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사람으로서 세례를 받으시고 하나님의 아들로 나셨다. 그리고 그 분량에 있어 장성하시어 죽기까지 복종하시고 그 복종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측량하여 합당함이 인정되셨다. 우리 인생을 대신하신 구속의 삶으로 우리의 구원을 통해 설명하면 처음 세례를 받으심은 그 구원의 시작이요 부활하심은 마지막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완전한 새 몸을 입고 새 예루살렘에서 하늘 성전으로 주님의 몸이 되는 것 즉 구원의 완성이다. 이는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완성이 부활인 것이다.


행 13:33절의 일으키심은 전후 문맥상 부활이다. 행 13:30~37절 전체가 부활을 증거 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 중반부에 33절이 위치해 있다.

그리고 그 후 반절에 시 2:7을 인용한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도 부활에 관한 것이다. 부활은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로 다시 태어남의 완성이다. 부활은 새로 나는 것이다. 예수님은 부활 즉 새로 나시어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 즉 우리를 대신하시어 사람으로 오시고 그 사람으로서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신 것이다. 그 다시 태어남의 시작은 물과 성령님의 세례로 시작되었고 그 완성은 부활인 것이다. 썩어질 몸을 벋고 영원히 썩지 않을 것을 다시 입으신 것이다. 썩을 몸이 썩지 않는 부활의 몸으로 화하신 것이다. 우리도 부활할 때가 되면 부활하신 주님과 같은 형상으로 화할 것이다. 이것은 썩어질 것을 벗고 영원히 썩지 않을 것을 입는 것이다. 영원히 썩지 않을 것을 입어야 완성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구원의 완성이 되는 것이다.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어 썩지 않을 몸을 입고 영원히 예수님의 몸인 교회로 연합되어 섬기는 것이다. 그리고 완전한 하나님의 보호 안에 있는 것이다. 그것이 구원의 완성이다. 창세기의 타락으로부터 계시록의 마지막 구속의 완성의 시점 그 끝에 부활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의 부활에 들지 못한 불신자들은 사망으로 다시 일어나 영원한 심판을 받고 불 못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부활은 다시 태어남이다. 그래서 시 2:7을 인용한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도 회심과 세례 중생의 뜻을 넘어 부활에 관한 것이다.


2.3.1.3.2. 시편 2:7은 누구에게 주어진 구절인가:?


시 2:7절은 다윗을 통하여 이미 정복한 땅들을 다스렸던 솔로몬에게 주어진 시편이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해진 왕은 솔로몬이 유일하다. 그런데 시편 2:7은 시 2:6에서 이미 시온에서 왕으로 세워진 이후에 솔로몬이 하나님께 직접 받은 것이다. 아이로 태어난 솔로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또는 세례[4]를 받은 솔로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미 왕으로 세워져 열방을 다스리는 왕으로 세워졌을 때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지혜는 만방에 알려졌다. 그는 인류역사상 가장 부유한 왕이 이미 되어있었다. 이 모습은 고난당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라 부활 승천하시어 하늘에서 다스리는 모습의 예표인 것이다.


6"내가 나의 왕을 나의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실 것이다.

7내가 여호와의 칙령을 선포한다. 그분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시 2:6-7, 바른)


솔로몬은 시온성에서 왕의 보좌에 앉아 다스렸다. 이 시편의 구절은 예수님께서 하늘의 예루살렘의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다스리심을 예표하는 장면인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의 일이다.[5]

그러므로 시 2:7절의 나심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신 다시 살아나심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열방을 유업으로 받는 것은 부활 이후에 주어지는 것이다. 1[다윗의 시] 여호와께서 내 주께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받침대로 삼을 때까지 내 오른쪽에 앉아 있어라." 하셨습니다. (시 110:1, 바른)


원수들이나 열방을 유업으로 얻는 것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이후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미 권세는 얻으셨으나 그 실질적인 회복은 점진적으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를 통해 확장되고 마지막 날 그 모든 교회가 부활하여 새예루살렘성을 이루고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거하시고 그 하나님의 통치가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내려졌듯이 온 만유 위에 부어진다. 이렇게 새 하늘 새 땅인 만물이 통일되어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신 것이다. 우리를 대신하시어 실패한 아담의 몸으로는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시어 새 몸으로 부활하셨다. 우리 대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것이다. 새롭게 태어나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우편에 앉아 다스리시는 것이다.


다시 아담의 권세를 최종적이고 다시 무를 수 없는 완전한 판결로 회복하신 것이다. 그리고 원래 하나님이시기에 그 부활의 몸을 입으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다스리시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인류에게 최종적인 승리를 확증하신 것이다. 하나님으로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최종 승리를 확정하시고 그 승리의 권위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위치함으로 그 누구도 빼앗지 못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 아래에서는 첫 번째인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 보좌 우편인 것이다. 첫 아담의 보좌는 인간 스스로 교만해지고 범죄 하여 잃어버렸지만 이제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하나님의 권세로 그 보좌를 확증하시니 더 이상 두 번째 아담의 보좌는 흔들림이 없다. 첫 아담 안에서 모든 인류가 죄에 빠져 실패했지만 완전한 보증이 되신 두 번째 아담 안에서는 거듭난 자들은 더 이상 완전한 제사장안에서 흔들림이 없다. 그 완성이 되는 재림과 심판 이후의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과 하늘의 성전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완전한 안식의 처소가 될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오시어 사람이신 우리를 대신하시어 이루시는 것이다.


33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일으키셔서(G450) 그들의 자손인 우리에게 이 약속을 이루어 주셨기 때문이다. 이는 시편 둘째 편에 기록된 바와 같으니,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라고 하였다. (행 13:33, 바른)


5하나님께서 언제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으며, 또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에게 아들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느냐? (히 1:5, 바른)


5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시려고 스스로 영광스럽게 하신 것이 아니다. 다만 그분께 말씀하시는 분께서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라고 하셨으며 (히 5:5, 바른)


14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될 것이니, 그가 만일 죄를 지으면 내가 사람들의 막대기와 인생의 채찍으로 훈계할 것이나, (삼하 7:14, 바른)


10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 것이니, 그는 나의 아들이 되고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내가 그의 나라의 왕위를 이스라엘 위에 영원히 굳게 세워 주겠다.'라고 하셨다. (대상 22:10, 바른)


위의 구절들은 모두 구약에서 예수님의 예표로 솔로몬을 통해 나타난다. 솔로몬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아들로 부름을 받았다고 구약은 기록하고 있다. 이것도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 아담의 아들, 인자로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음을 나타내어주는 성경적 메타내러티브인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예수님께서 2위 하나님이신 자신의 신성으로 이루신 것이 아니다. 오직 아담의 후손 사람으로서 오직 성령님의 한량없이 부어지심으로 오직 하나님의 행하심만을 따라 복종하여 이루신 것이다.


6"내가 나의 왕을 나의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실 것이다.

7 내가 여호와의 칙령을 선포한다. 그분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8 너는 내게 구하여라. 내가 민족들을 네 유업으로 줄 것이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를 것이다. 9 네가 쇠 막대기로 그들을 깨뜨리며 질그릇처럼 부술 것이다." 10 이제 왕들아, 지혜롭게 행하여라. 교훈을 받아라, 땅의 재판관들아.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하여라. 12 그 아들에게 입 맞춰라. 그렇지 않으면 그분께서 진노하시므로 너희가 길에서 망할 것이니, 이는 그분의 분노가 순식간에 타오르기 때문이다.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에게 복이 있다. (시 2:6-12, 바른)




[1] 성경 각각의 단어를 코드화한 스트롱 코드


[2] 영문 번역성서: YOUNG’S LITTERAL VERSION-원어 성경과 같은 어순으로 번역되었고 성경을 원문 그대로 번역하여 원문의 뜻을 파악하기 쉽게 한 것이 특징적인 번역본이다.


[3] P34 2) 롬 1:4 개역 성결의 영으로는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


[4] 세례는 물론 신약에 등장함으로 구약의 솔로몬이 세례를 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5] 이와 같이 우리도 생명의 부활 이후에 하늘로 들려져 하늘에서 주님을 영접하고 그 하늘에서 예수님의 몸 성전이 되어 만물을 다스리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몸으로 머리 되신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만물을 통치하는 것이다. 이는 창세기와 계시록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을 뜻하는 성경적 메타내러티브의 문맥에 기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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