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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겔 Jun 01. 2024

3.5. 1 세기 대적의 도전

1세기의 거짓신앙

                                                      바울의 2차 전도여행


1세기에도 복음을 대적하는 거센 도전이 있었다. 영지주의와 헬라적 이단 사상 등 복음을 대적하는 여러 어두움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신약 성경에 기록된 바울의 1~2차 전도여행 당시 다른 이들이 복음을 전하지 않았던 이방지역이었던 갈라디아(Galatia) 지역에 개척했던 에클레시아[1]를 향한 도전이다. 바로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거짓신앙을 말하는 것이다. 


3.5.1. 갈라디아


갈라디아는 바울의 고향이었던 다소(Tarsus)의 북쪽에 위치한 지역이다. 다소는 시리아와 터키가 만나는 지역에 있다. 다소(Tarsus 타르수스)는 타르수스 산맥의 남쪽 자락에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갈라디아와 다소가 있는 길리기아의 사이에는 리카오니아(Lycaonia)가 있다. 갑바도기아(Cappadocia)와 브리기아(Phrigia)와도 남쪽으로 닿아있다. 리카오니아 지역에는 이고니움, 루스드라, 더베(테베)와 같은 도시들이 있었다. 비시디아에는 안디옥이 있었다. 갈라디아 지역을 말할 때 보통은 터키 북부 현재 터키의 수도 앙카라가 있는 지역 갈라디아를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때로는 터기에 골족(켈트족, Celts)이 거주하던 지역전체를 일컫기도 했다. 북부의 갈라디아와 터키 중부의 비시디아와 리카오니아를 포함하는 넓은 골족 거주지 전체가 갈라디아였을 것이다. 사실 갈라디아라는 말 자체가 골족의 거주지라는 뜻이다. 그렇게 보면 갈라디아서는 골족들이 거주하던 갈라디아 지역으로 보낸 서신이 된다. 


갈라디아 교회는 지금처럼 한 지역에 세워진 교회당이나 그 교회당에 소속된 회중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었다. 그 지역 전체에 흩어져 있던 그리스도인 공동체였다. 갈라디아서의 수신지는 대한민국 국토 넓이 전체가 넘는 광범위한 지역 기독교 공동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교회의 개념과는 차이가 많다. 그 수신지가 그렇게 광범위하다는 것은 갈라디아서의 율법주의가 영향을 미친 범위가 광범위하고 그만큼 그 피해가 막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사실 갈라디아 지역 외에도 교회가 개척된 곳이면 어디든 파고들어 교회를 교회가 아닌 생명 없는 주검으로 만들어버렸던 것이다. 이런 배경을 알아야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바울의 절규를 이해할 수 있다.


3.5.2. 갈라디아 교회의 시작


갈라디아 교회의 문제를 살피려면 교회의 시작부터 살펴봐야겠다. 갈라디아 지역 교회의 시작은 사도행전 13장에서부터다. 시리아 안디옥에서 시작된 1차 전도 여행은 밤빌리아의 버가 그리고 비시디아 안디옥 리카오니아의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지역을 거쳐 다시 지나온 곳을 돌아 장로들을 세우고 에클레시아를 든든히 한 후 시리아 안디옥에서 마쳐졌다. 바울은 이 과정에서 수많은 고난을 당했다. 처음 출발한 전도여행 중 키프로스(구브로)에서 출발한 배는 풍랑을 만나 난파했다. 그럼에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그들은 강도의 위협과 굶주림에 노출되고 걸어서 왕복 약 1,000km 전도여행길을 갔다. 마가 요한이 그 길에서 중도 이탈한 것에 대해 사람들은 그를 쉽게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시대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10명 중 10명 모두가 그 길의 출발부터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시대 이렇게 편한 선교도 모두 망설이는데 그런 길에 참여하겠는가? 바울은 마가 요한이 떠난 다음에도 그 길에서 수많은 고난을 당했다. 루스드라에서는 돌에 맞아 거의 주검이 되었다. 그가 죽었다가 부활한 것인지 기절했던 것인지 알 수 없다. 실제로 바울이 형제들 가운데서 일어났다는 표현을 할 때 쓴 단어는 부활의 뜻도 있고 ‘일어서다’는 뜻도 있다. 그래서 문맥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는데 사실 문맥상으로도 판단하기가 난해하다. 그때 바울의 고난은 그렇게도 극심했다. 여인이 해산하는 고통과 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낳은 교회가 율법주의에 오염되어 주검이 되어가는 것을 본 바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자식이 병들어 죽어가는 것을 보는 어미의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3.5.3. 율법주의-갈라디아 교회의 거짓 신앙


이런 심각한 결과를 낳은 율법주의의 근원을 살펴보아야겠다. 처음 이방인 선교가 시작되었을 때 이방인 교회에 대해 유대인 교회는 그들의 민족적 선민사상에 기인한 잘못된 관점을 수정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했다. 바로 할례를 포함한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사람들과 그것을 반대하는 사도바울과 바나바 등 이방 교회 사람들 간의 갈등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사도행전 15장 예루살렘 회의가 이루어졌다.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회의에서 이방인의 구원과 이방인의 율법준행 문제를 다루었다. 이 회의가 있기 이전에 이미 야고보에게서 온 사람들이 시리아 안디옥에 와있었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갔을 때 이 율법주의자들은 더 발 빠르게 움직여 시리아 안디옥을 거쳐 바울이 1차 전도 여행 때 새로 개척한 다소와 다소의 서북쪽에 있었던 리카오니아와 비시디아 지역을 향해 갔다. 그곳에서도 율법주의를 주장하며 하나님의 교회에 악한 누룩을 퍼트렸다. 후에 그 누룩은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때 개척했던 북부의 갈라디아 지역에 있는 교회에 까지 퍼졌다. 거짓 신앙은 유대주의 안에 포함된 누룩이다. 바로 예수님께서 주의하라고 했던 바리새인의 누룩이다. 그들 안에 있던 거짓 신앙은 그 근본이 율법주의 인본주의 기복주의다. 심지어 신비를 추구하고 그 신비를 자기의로 삼아 자신을 높이고 타인들의 숭배를 받는 신비주의(영지주의)도 자기의를 추구하는 율법주의의 변종임을 앞에서 언급했다. 이에 대해서는 후에 더 자세하게 글을 쓸 예정이다. 일반적으로 이 율법주의의 수장으로 언급되는 사람이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다 예루살렘 교회를 이끌던 야고보다. 그가 율법주의를 주장한 것이고 그에게서 온 사람들이(갈 2:12) 모세의 관례를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고 여겨진다(행 15:1)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잘못된 추측임을 알 수 있다. 야고보의 말에 따르면 그들이 야고보에게서 온 자들은 맞지만 그들은 야고보와 사도들의 뜻과는 상관없는 주장을 했음을 알 수 있다(행 15:24) 물론 사도들이 이방인 전도 초기에 이방인들의 율법 준수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없었음은 사실이다. 심지어 이방인들에게 구원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베드로의 환상과 고낼료 사건 등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발견했다. 또 사도행전 15장에 예루살렘 회의를 통해 이들은 확실한 기준을 정했다. 


아마 갈라디아서는 예루살렘 회의 이전에 기록되었던 것 같다. 이렇게 보면 갈라디아서는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에 다녀온 비시디아 안디옥과 리카오니아의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지역의 교회가 최초 수신지가 될 것이다.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을 만난 후라면 행 15:1절의 율법주의자들의 주장이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의 견해와는 다름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갈라디어서를 보면 사도들에 대해 책망하는 부분들이 많이 보인다. 이것을 보면 갈라디아서 집필은 최소한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회의에서 사도들의 입장을 정리하기 이전일 것이다. 예루살렘 회의 후라면 사도들의 의도를 알았고 최소한 사도들이 바울이 주장하는 이방인 성도들과 율법준수에 대한 견해에 동의했음을 알았기에 갈라디아서에서처럼 사도들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갈 2장의 바울의 책망을 보면 베드로와 바나바가 율법주의자들의 눈치를 보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명확한 입장을 정리한 후라면 베드로는 그러한 태도를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바울은 사도들에 대해 공격적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3.5.3.1. 율법주의의 심각성


사도바울은 왜 사도들까지 비난을 했을까? 율법주의가 그렇게 무서운 것인가? 율법주의는 교회에 극심한 해를 끼친다. 바울이 율법주의에 대해 확실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 사도들까지도 대놓고 비판해야 할 정도다. 율법주의 안에 더 이상 복음은 없다. 복음은 파괴되고 예수님 대신 율법의 의가 자리하게 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 율법주의 안에 있는 자들은 자신들이 복음을 잃어버렸음을 눈치채지 못한다. 자신들은 정상적인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한다. 바울 자신이 바리새인으로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율법주의는 교회를 그렇게 만들어 버린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하지만 실상은 생명 없이 죽어가는 죽음에 죽음을 덧대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죽음이다. 바울은 자신이 그 수많은 고난과 죽음을 무릅쓰고 개척한 자식 같은 교회가 병이 퍼져 죽어가는 것을 눈으로 목도해야 했다. 그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이름은 거짓신앙이었다.

갈라디아서를 통해 초대 교회도 거짓신앙으로 인해 진통을 겪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베드로도 율법주의자들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 그 정도로 거짓 신앙이 초대교회 안에서 왕성했음을 알 수 있다. 초대교회는 특히 예수님이 오시고 나서도 구약의 율법적 전통을 준수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성취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승천하신 이후에는 구약의 제사제도가 사라졌다. 그러나 이에 대해 사도들이 처음부터 명확하게 안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구약 성전 희생과 화목 성취라는 것을 성령님의 계시를 통해 알게 되고 그 신앙을 사도들이 전파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 과도기에 율법의 준수에 대해 혼란이 발생한 것은 당연했다. 

원래 구약이나 신약이나 믿음에 의한 의를 설명한다. 구약과 신약 시대를 막론하고 율법주의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는 의를 대적한다. 1세기에도 유대주의는 구약을 율법적으로 해석했다. 거짓 신앙은 1세기에도 있었으며 이사야나 예레미야 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했다. 1세기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앙은 앞선 시대의 거짓신앙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그 본질이 동일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구원을 인간의 행위로 얻으려는 것이 율법주의의 특징이다. 사도행전 15장 1절에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 자체가 율법주의의 특징인 것이다. 예수님을 믿지만 그래도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는 구원받기에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구원도 구원 이후의 삶도 모두 예수님의 공로로 가능한 것이 아니면 모두 거짓신앙이다. 심지어 그것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열심이라도 예수님을 통한 구원을 대적하면 그것은 거짓신앙이다. 바로 율법주의인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6절과 같이 구약도 믿음에 의한 의를 말씀한다. 심지어 율법에 의한 의에 속한 자들은 저주를 받은 자라고 선언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율법 중 단 하나라도 어기면 의로울 수가 없고 율법의 정죄를 받기 때문이다(갈 3:10) 


3.5.3.2. 율법의 본원적 기능


여기서 율법의 기능 중 하나가 설명되고 있는데 율법은 정죄하여 모든 사람이 죄인임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기준이기는 하나 자연인은 그것을 완벽하게 지킬 수가 없다. 그래서 율법은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낙인찍는다. 사실 죄인이라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율법이다. 그래서 현대 교회 안에서도 이런 과정을 거쳐 예수님을 믿게 되는 극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율법을 통해 자신이 죄인임을 철저히 깨닫게 된다. 율법을 정말 지키려고 해 본다면 알게 된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결코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율법을 지키지만 마음속에는 탐심이 가득한 것을 철저히 깨닫게 된다.





[1] 신약 성경에 부름 받은 자들 즉 구원받은 백성들의 공동체를 나타내는 단어다. 한국어로는 교회라고 하지만 사실 그 뜻이 많이 다름을 알 수 있다. 교회는 가르침과 모임이라는 뜻이 합해진 예배당에서 목사에 의해 설교를 듣는 모임이라는 뜻이 강하다. 원어 성경에 기록되어진 에클레시아는 가르침도 중요하지만 그 공동체 자체를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차라리 거룩한 무리 구별된 무리를 뜻하는 단어가 성경의 에클레시아를 대체할 더 적합한 단어로 보인다. 좀 더 이 땅 흩어진 나그네 된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라는 개념을 강조하면 그것은 분회나 지방회라는 번역이 더 어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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