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2.3.15. 춤추는 자-다윗의 연대기 2

by 에스겔


01.3.2.3.15. 춤추는 자-다윗의 연대기
# 01.3.2.3.15.1. 왕?
# 01.3.2.3.15.2. 사울과 다윗
# 01.3.2.3.15.3. 까닭을 모르는 다윗
## 01.3.2.3.15.3.1. 까닭 모름의 증거
### 01.3.2.3.15.3.1.1. 하프
### 01.3.2.3.15.3.1.2. 골리앗
### 01.3.2.3.15.3.1.3. 사울은 천천, 다윗은 만만



01.3.2.3.15.3.1.3. 사울은 천천, 다윗은 만만


과연 다윗이 자신이 왕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백성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골리앗을 죽였겠는가?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고 우리(하나님)를 향한 열정으로 골리앗 앞에 나갔겠는가? 다윗이 진정 왕이 될 것을 알고 그것을 위해 계획을 세우고 움직였다면 골리앗을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기름부음을 숨기고 사울이 골리앗과 블레셋에 의해 죽임 당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골리앗에 의해 사울이 죽임을 당하면 그때 기회를 노려 자신의 세력을 기르고 왕국을 세웠을 것이다. 그것이 지혜롭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사울과 사울의 군대를 대신하여 골리앗을 죽이면 다윗은 명성을 얻을 수는 있지만 실리는 사울이 취하게 된다. 다윗은 단지 사울의 아래에 있는 장수일뿐이다. 수많은 왕들이 있었고 그들에게 뛰어난 용장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용장들이 왕이 되는 것은 아니다. 또 골리앗을 죽이고 나서의 다윗의 행동을 보면 자신이 왕이 될 것을 아는 자의 행동이 아니다. 그는 단지 사울의 충성스러운 신하로 자신의 정체성을 정직하게 드러낸다.

사울이 보내는 곳마다 가서 전적을 세웠다. 그전에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친구가 되었다. 물론 전략가들이나 모략가들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권력의 가까이 접근하기도 한다. 그런데 보라! 다윗의 모습이 어떠한가? 백성들이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는 말이 나오게 했다. 결국 사무엘이 다윗에게 왕의 기름부음을 부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울도 다윗에게 다음 왕의 기름부음이 있음을 짐작하게 했다. 만약 다윗이 자신이 다음대의 왕이 될 것을 알았다면 의도적으로 자신을 낮추고 백성들이 칭송할 때에 스스로 사울의 이름을 칭송했을 것이다. 그런데 순진한 다윗을 보라! 백성들이 자신과 사울을 비교하여 다윗 자신을 높이는데도 전혀 위기의 식을 느끼지 못한다.

사울의 속 마음을 보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무리와 함께 돌아올 때, 이스라엘의 모든 성읍에서 여자들이 작은북과 악기들에 맞추어 노래하고 춤추며 환호성을 지르면서 사울 왕을 맞이하기 위해 나왔다.

춤추는 여자들이 화답하며 말하였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고, 다윗은 만만이구나."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매우 화를 내며 속으로 말하였다.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을 돌리니, 그가 얻을 것이 왕국 외에 더 무엇이 있겠는가."

그날 이후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그 이튿날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한 영이 사울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집 안에서 헛소리를 해댔으며, 사울의 손에는 창이 있었다.

사울이 그 창을 던지며 말하였다.

"내가 다윗을 벽에 박아 버리겠다."


사울의 말을 들어보면 사울은 다윗이 왕이 될 것을 안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왕위를 잃었다는 것을 알았고 다른 왕이 일어날 것이라 짐작했다. 그런데 다윗을 향한 백성들의 환호를 들으니 사울 자신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했다. 이를 듣고 다음 왕이 일어난 다면 다윗일 것이라 짐작했다. 그리고 다윗에게 창을 던졌다.

자! 여기서 생각하여 보자. 다윗에 대해 현대의 성경학자들이 심리학적 분석을 하는데 다윗은 애니어그렘에서 장형 중 8번이라고 했다. DISC로는 주도형이며 비슷한 고대 히포크라테스의 4 체액설에서는 담즙질이라 한다. 또한 ENFP라고 한다. 그런데 과연 장형의 8번의 주도적 담즙질이 그것도 주변의 변화에 민감한 ENFP가 과연 상대가 죽이려 하는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일반적인 8 번들은 상대의 기류를 방에 들어서자마자 알 수 있다. 상대가 자신에게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알고 본능적으로 경계하며 자신의 살 길을 찾는다. 사울이 창을 던질 정도의 감정을 가졌다면 보통 위에서 현대 심리학적 분석으로 말하는 기질의 사람이라면 당장 도망하였을 것이다. 자신은 일개 백성이고 상대는 왕이다. 왕이 자신을 시기하여 죽이려 한다면 살 길은 미리 아부하고 자신을 낮추어 비천하게 보임으로 상대를 안심하게 하거나, 그도 안되면 도망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다윗을 보면 그 어떤 대비도 하지 못한다. 이로 보건대 다윗은 장형도 감정형도 아니다. 장형이나 감정형은 이 상황에서 아무 눈치도 채지 못할 수가 없다. 이러한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기질은 머리형들인데 7번도 어느 정도 분위기에 대한 눈치가 있다. 6번은 자신의 안전이 최선이기에 사울의 분노를 모를 수가 없다. 그런데 어린 애니어그렘 5 번들은 이 상황에서 대부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단지 자신 내부의 생각에 사로 잡히거나 하프 연주에 집중하여 외부의 상황을 느끼지 못한다. 왕이 하프를 연주하라고 했기 때문에 하프를 연주하여 왕의 악신이 떠나가기를 기도할 뿐이다. 5 번들은 타인들의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차단한다. 심지어 자신의 감정으로부터도 자신을 차단한다. 그러니 죽이려 하는데도 알지 못하고 하프를 연주할 수 있다. 다윗이 사울의 창을 피한 것은 그가 사자나 곰을 쫓아가 그 입을 찢고 때려죽일 정도로 민첩하고 싸움 실력이 뛰어난 탓이다. 먼저 눈치를 채고 피할 준비를 한 것은 아니다. 짐승들의 움직임과 사람의 움직임은 그 빠르기가 비교되지 않는다. 짐승들을 능가할 스피드를 가진 다윗이기에 사울의 던진 창은 하프를 연주하다가 발견하고 여유 있게 피할 수 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의 창을 두 번이나 피할 수 있었다.


다윗이 만약 자신이 다음 왕이 될 것을 알았다면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상황이 흘러가는 것을 보기만 했을까? 아마 그전에 자신을 낮추어 사울의 환심을 사려했을 것이다. 또 사울에게 자신의 충성을 보일 길을 찾았을 것이다. 백성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울의 환심을 사려면 백성들에게 사울을 칭송하였을 것이다. 그래도 백성들의 환호가 멈추지 않는다면 백성들을 꾸짖어서라도 모두 사울의 은덕이라고 사울을 높였을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살 수 있다. 살아남아 다음 왕이 될 수 있다. 왕이 될 것을 준비하거나 왕을 세운 자들의 삶을 보면 자신을 숨기로 세력을 길러 자신의 세력이 왕을 능가할 때에만 본색을 드러내오 현재의 왕을 처단하고 자신이 내일의 왕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윗은 단지 자신이 들에서 양들을 돌보는 것처럼 그냥 백성을 지켰을 뿐이다. 그때도 양의 주인은 아버지와 형들이었다. 자신은 단지 양을 지키고 양을 위협하는 사자나, 늑대와 싸워 양을 지켰을 뿐이다.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기름부음을 받은 왕 사울에 대한 충성이었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하나님)에 대한 충성이라 여겼다. 단지 과거 들에 있을 때나 사울의 백부장이나 천부장으로 있을 때에도 다윗은 단지 목동과 같이 양을 지키는 자였다. 결코 자신이 주인이 될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 일이 없었다. 과거 감동을 주었을 때에도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에도 그 후에 나타난 능력에 대해서도 모두 이렇게 생각하였다. 우리가 다윗을 이스라엘의 목자로 세우리라고 했을 때에도 다윗은 여전히 자신의 역할은 목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01.3.2.3.15.3.1.4. 악신


사무엘상을 보면 이상한 표현들이 나온다. 우리(여호와)가 보낸 악신이라는 말이 나온다. 여러 절에서 이러한 표현이 등장한다.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자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한 영이 그를 괴롭게 하였으므로,

사울의 종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한 영이 왕께 괴로움을 주고 있으니, 부디 우리 주께서는 앞에 있는 주의 신복들에게 말씀하셔서 수금을 탈 줄 아는 사람을 구하게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한 영이 왕께 임할 때에 그가 손으로 연주하면 왕께서 나으실 것입니다."

사울이 그의 신복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나를 위해 수금을 잘 타는 자를 찾아서 나에게 데려오너라."

젊은 종들 가운데 한 사람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보십시오, 제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한 아들을 보니, 그는 수금을 연주할 줄 알고 힘센 용사이며 전쟁에 능한 사람이고 말을 잘하며 준수한 사람으로,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십니다."


사울이 이새에게 전령을 보내어 말하였다.

"양 떼와 함께 있는 네 아들 다윗을 내게로 보내라."

이새가 떡과 포도주 한 가죽 부대와 염소 새끼 한 마리를 나귀에 싣고 그의 아들 다윗의 손에 들려 사울에게 보냈다.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 앞에서 섬기게 되었는데, 사울이 그를 매우 사랑하였으므로 다윗이 그의 무기들을 드는 사람이 되었다.

사울이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였다.

"다윗이 내 앞에서 섬기게 하여라. 그가 내 마음에 들었다."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한 영이 사울에게 임할 때마다 다윗이 수금을 잡고 그의 손으로 연주하면, 사울이 상쾌해하며 상태가 좋아지고 악한 영이 그에게서 떠났다.(삼상 16:14-23 바른)


그 이튿날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매 그가 집 가운데서 야료하는 고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사무엘상 18:10 개역)


우리가 악신을 보낸다는 말인가? 그렇다. 악신들도 우리의 관할 하에 있다.

사울은 자존감이 낮은 자였다. 그 낮은 자존감이 문제가 되었다. 한번 왕이 되고 나서 우리가 폐하였으면 자신의 자리를 내어 놓고 회개하고 조용히 살면 된다. 그런데 자신의 자리와 자신의 정체성을 동일시 여기는 사울의 낮은 자존감은 사울을 괴물로 만들어 갔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남의 평가나 자신의 지위와 자신의 정체성을 별개의 문제로 인식한다. 자신의 돈이나 권력이 자신을 규정짓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외적인 것으로 자신을 포장하려 한다. 권력으로 갑옷을 두르고 돈으로 치장을 한다. 그리고 그것이 없으면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외적인 것을 잃으면 불안하고 초조해지며 우울해진다. 정신이 피폐해지면 그곳에 어둠이 침투한다. 영은 육신이 없는 정신이요, 생각이다. 생각으로 인간 속에 있는 어둠을 점령해 들어간다. 그것이 악신 즉 귀신이다. 사울에게 우리(하나님)가 부리는 악신이 들린 것은 우리가 사울을 미치게 하였다는 것이 아니다. 사울에게 귀신이 들리도록 결정지었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사울의 불안과 병든 생각으로 인해 악령이 들어갔다. 그런데 성령이 사울을 떠남으로 사울에게 오는 악령을 막아줄 자가 없었다.

사울은 정신병적 문제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현대의학은 귀신들림을 인정하지 않는다. 또는 귀신들림과 정신병을 분리하려 한다. 성경에 악신이라고 번역된 악한 귀신은 슬픔의 영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이 악하다는 단어는 원래 약하거나 병든 상태를 의미한다. 진리의 결여는 악이다. 빛의 결여가 어둠이듯 진리의 결여는 악이다. 그래서 약하고 병들어 결여되다라는 뜻에서 의미가 영적으로 파생되어 악함을 뜻하게 되었다. 그런데 병들고 약하여 슬퍼질 수도 있기에 이 단어는 슬픔을 나타내는 단어로도 사용된다. 그래서 문맥에 따라 단어의 뜻을 살펴야 한다.

영어 성경 YLT는 이 단어를 슬픔으로 번역했다. 슬픔의 영인데 그 출처가 우리(여호와)라고 했다. 그래서 "여호와께로부터 온 슬픔의 영이"라고 번역한다. 영은 사실 육체 없는 정신이다. 그러므로 생각 속에 침투하는 영을 자신의 영과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자신의 병적인 생각과 다른 영의 침투를 구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육을 벗은 영의 상태나 아니면 특별한 환상 속에서 우리(하나님)가 볼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인간이 그것을 구분하는 것은 어렵다. 단지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 평소 자신과 너무 다른 생각이 집요하게 괴롭힐 때 어떤 다른 영이 생각 속에 침투했음을 논리적으로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것도 아주 이성적이고 명철한 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무엘서의 저자가 사울의 상태에 대하여 악한 영이 사울에게 임했다 하거나 슬픔의 영이 임했다는 표현은 그 시대에도 현대에도 틀린 표현이 아니다. 인간의 생각은 원래 어둠과 빛 둘의 근원에서 부어졌고 부어지고 부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인격과 사고체계와 가치관은 과거에 스스로 추구하여 부어진 생각들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한 생각과 그 생각에 의해 외부에서 자석과 같이 부어진 생각들의 혼합으로 탄생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는 수동적 관점에서 정신세계의 형성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인간 정신은 능동과 수동의 현상이 동시에 일어난다. 생각이 부어지는 것은 스스로 그 생각을 하여 능동적으로 외부의 생각을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인간 스스로 악한 생각을 하면 옆에 기다리던 악한 귀신이 더 악한 생각을 불어넣는다. 인간은 들어온 악한 생각을 스스로 취사 선택하여 실행한다. 그런데 그 생각이 들어온 생각인지 스스로 생성한 생각인지 분별하기는 어렵다. 대부분 자신의 생각이라 판단한다. 이렇게 인간은 영적인 세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시대에 따라 동일한 현상에 대한 표현도 달라진다. 현대에는 정신병으로 보는 것을 과거에는 귀신들림으로 보았다.

(사무엘상 16:14 YLT) And the Spirit of Jehovah turned aside from Saul, and **a spirit of sadness from Jehovah** terrified him;

(사무엘상 18:10 YLT) And it cometh to pass, on the morrow, that **the spirit of sadness from God** prospereth over Saul, and he prophesieth in the midst of the house, and David is playing with his hand, as day by day, and the javelin is in the hand of Saul

(사무엘상 19:9 YLT) And **a spirit of sadness from Jehovah** is unto Saul, and he is sitting in his house, and his javelin in his hand, and David is playing with the hand


결론적으로 말하면 악한 영도 우리(하나님)가 부린다. 이는 불순종에 대한 형벌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단순히 악한 영이 붙은 것은 아니다. 사울의 정신의 상태가 슬픔과 우울과 불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울은 임금에서 폐하여졌는데 사울이 정상적인 정신이었다면 그의 왕위는 더 오래갔을 것이다. 사울의 정신이 멀쩡했다면 사울이 국정운영을 잘하여 그 아들들에게 왕권이 이어졌을 수도 있다.

그런데 만약 다윗이 자신이 왕이 될 것을 알았다면 우리가 보낸 사울에게 있는 악한 영을 쫓아주었겠는가? 사울의 왕권이 무너져야 우리(하나님)의 뜻대로 다윗 자신이 왕이 될 것인데 사울에게 온 악한 영을 왜 쫓아내겠는가? 그것이 다윗에게 무슨 유이 되겠는가? 여기서도 다윗은 자신이 왕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01.3.2.3.15.3.1.5. 미갈


다윗이 자신이 왕이 될 것을 알아다면 과연 사울이 딸을 준다는 미끼로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다음 성경 본문을 보라.


사울이 그 창을 던지며 말하였다.

"내가 다윗을 벽에 박아 버리겠다."

그러나 다윗은 그 앞에서 두 번이나 피했다.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심을 보고 사울이 그를 두려워하였으므로, 사울이 다윗을 천부장으로 삼아 자기 곁에서 떠나게 하니, 다윗이 백성 앞에서 출입하였다. 다윗은 그의 모든 일에서 지혜롭게 행하였으며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 사울은 다윗이 매우 지혜롭게 행하는 것을 보고 그를 두려워하였으나, 온 이스라엘과 유다가 다윗을 사랑하니, 이는 그가 그들 앞에서 출입했기 때문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보아라, 내 큰딸 메랍이 있으니 내가 네게 아내로 줄 것이다. 오직 나를 위하여 용사가 되어 여호와의 싸움을 싸워라."

그런데 이는 사울이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내 손이 그를 치지 않고 블레셋 사람의 손이 그를 칠 것이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제가 누구이며 제 생명이 무엇이며 제 아버지의 집안이 이스라엘 중에 무엇이기에 제가 왕의 사위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사울이 자기 딸 메랍을 다윗에게 줄 때가 되자 므홀랏 사람 아드리엘의 아내로 주었다.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니,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그것을 보고하였다.

사울이 이 일을 좋게 여겨, 생각하였다.

'내가 그에게 내 딸을 주어서 올무가 되게 하고 블레셋 사람의 손이 그를 치게 할 것이다."

그리고 다윗에게 말하였다.

"오늘 네가 다시 내 사위가 될 것이다."

사울이 자기 신하들에게 명령하였다.

"너희는 다윗에게 은밀하게 말하되 '보아라, 왕이 너를 기뻐하시고 그의 모든 신하들이 너를 사랑하니, 이제 너는 왕의 사위가 될 것이다.' 하여라."

사울의 신하들이 다윗의 귀에 이 말들을 전해 주니, 다윗이 말하였다.

"왕의 사위가 되는 것이 당신들이 보기에는 사소한 일입니까? 저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입니다."

사울의 신하들이 사울에게 보고하였다.

"다윗이 이런 말들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울이 말하였다.

"너희는 다윗에게 이같이 말하되 '왕은 신부 값을 원치 아니하고 다만 왕의 원수들에 대한 보복으로 블레셋 사람의 포피 백 개를 원하신다.' 하여라."

이렇게 말한 이유는 사울이 다윗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 쓰러지게 하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사울의 신하들이 다윗에게 이 말을 전하자, 다윗이 왕의 사위가 되는 것을 좋게 여기고 기한이 되기도 전에, 다윗이 일어나 자기 부하들과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 이백 명을 죽이고 그들의 포피를 가져와 그 수효대로 왕께 바쳐 왕의 사위가 되고자 하였으므로 사울은 그에게 자기 딸 미갈을 아내로 주었다. 사울은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하시는 것을 보고 알았고, 사울의 딸 미갈은 그를 사랑하므로, 사울이 다윗을 더욱더 두려워하게 되어 평생 동안 다윗과 원수가 되었다. 블레셋의 지휘관들이 출전할 때마다 다윗이 사울의 모든 신하보다 더 지혜롭게 행하였으므로 그의 명성이 매우 높아졌다.(삼상 18장)



위에서 다윗이 한 행동들은 자신은 단지 양들의 목동이었으며 자신의 미래는 이스라엘을 지키는 목동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에 한 행동들이었다. 사울에 대한 조금의 경계라도 있었으면 의심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다윗은 전혀 의심이 없다. 단지 자신은 사울에게 충성을 다해야 하는 목동이라 인식하고 사울의 명령을 수행한다.

여기서도 사울의 애니어그렘은 장형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장형 8번이라면 사울의 명령이 무엇을 뜻하는지 바로 알 수 있다. 상대가 자신을 죽이려는 의도가 있다면 장형이 그 왕의 앞에서 그것을 못 느낄 수가 없다. 다윗은 단지 자신이 이스라엘을 지키는 목자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또는 유명한 양치기 개의 이름처럼 자신은 이방 개잡종이지만 이스라엘을 지키는 충직한 종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이렇지 않고 다윗이 자신이 왕의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생각했다면 더 치밀하고 은밀하게 움직여 사울의 사위가 되고 사울에게 온갖 아부를 바쳐 사울을 안심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세력을 길러 사울의 왕권을 빼앗았을 것이다. 사울의 사위가 되고 사울의 아들과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친구가 되었으니 불가능할 것이 무엇인가? 그런데 다윗은 미련하고 멍청했다. 우직했다. 그 결과 그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자신의 정체를 사울에게 들켰다. 그는 미래의 왕이므로 사울은 그와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었다. 이를 모르는 것은 이스라엘에서 다윗 자신뿐이었다. 백성들도 이를 알고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 했다. 다윗은 일을 지혜로운 자였다(삼상 16:18). 그런데도 이렇게 우직하게 행동한 것은 단지 자신을 양치기 개로 알고 주인인 우리(하나님)와 우리가 세웠다고 생각하는 왕(사울)에게 충성을 다한 것이다



01.3.2.3.15.3.1.6. 요나단


만약 자신이 왕이 될 것을 알았다면 다윗은 요나단과 진정한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경쟁자인 사울 왕의 아들과 마음과 마음이 하나 된다는 것은 다윗이 자신을 다음 왕으로 인식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다. 둘의 마음은 하나가 되었다. 이미 다윗에게 창을 두 번이나 던진 사울은 다윗이 죽지 않자, 이제 국가 권력으로 다윗을 죽이려 한다. 다윗을 천인 대장으로 삼아 전쟁터에 보낸 것도 또 사위가 되기 위해 위험한 블레셋에 보낸 것도 모두 다윗을 죽이기 위한 술수였다. 그래도 다윗이 죽지 않자, 사울은 아예 대놓고 죽이라고 한다. 다음 성경을 살펴보자.


사울이 자기 아들 요나단과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다윗을 죽이라고 말했으나,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매우 좋아하여 다윗에게 말하였다.

"내 부친 사울이 너를 죽이려고 하니, 이제 아침까지 조심하고 은밀한 곳에 머물러 몸을 숨겨라. 그러면 네가 숨어 있는 들로 나도 나가서 내 부친 곁에 서 있다가, 내가 내 부친께 너에 대해 말해 본 후, 내가 본 것을 네게 알려 주겠다."

요나단이 자기 부친 사울에게 다윗에 대하여 좋게 말하였다.

"왕은 종 다윗으로 인해 죄를 짓지 마십시오. 그는 왕께 죄를 짓지 않았으며, 오히려 왕께 아주 좋은 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자기 목숨을 걸고 그 블레셋 사람을 쳐 죽였으며 여호와께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베푸셨으므로 왕께서도 보고 기뻐하셨는데, 왜 왕께서는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리는 죄를 지으려 하십니까?"

사울이 요나단의 말을 듣고 맹세하였다.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는데, 다윗이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요나단이 다윗을 불러서 이 모든 일을 그에게 알려 준 후, 다윗을 사울에게로 데리고 갔고 다윗이 전과 같이 사울 앞에 있게 되었다. 전쟁이 다시 일어나게 되어 다윗이 나아가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쳐서 크게 살육하므로 그들이 다윗 앞에서 도망하였다.

사울이 자기 집에서 손에 창을 들고 앉아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한 영이 그에게 찾아왔고, 다윗은 손으로 수금을 연주하고 있었다. 사울이 다윗을 벽에 박으려고 창을 던졌으나 그는 사울 앞에서 피하고, 사울의 창은 벽에 박혔다. 다윗이 피하여 그 밤에 도망하였다. 사울이 부하들을 다윗의 집에 보내어, 그를 감시하다가 아침에 죽이도록 하였다.

다윗의 아내 미갈이 그에게 알려 주었다.

"만일 당신이 이 밤에 당신의 생명을 구하지 아니하면 내일은 죽임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미갈이 다윗을 창문을 통해 내려 보내니 그가 피하여 도망했다. 미갈이 드라빔을 가져다가 침대에 두고, 염소 털로 그 머리를 만들어 옷으로 덮었는데, 사울이 부하들을 보내어 다윗을 붙잡으려 하자 미갈은 그가 병들어 있다고 말했다.

사울이 다윗을 살펴보게 하며 말하였다.

"침상째 그를 내게로 데려오너라. 내가 그를 죽이겠다."

부하들이 들어가 보니, 침상에는 드라빔과 염소 털로 만든 그 머리가 있었다.

사울이 미갈에게 말하였다.

"왜 너는 이처럼 나를 속여 내 원수를 보내 도망하게 했느냐?"

미갈이 사울에게 대답하였다.

"그가 제게 말하되 '나를 보내라. 왜 내가 너를 죽여야 하겠느냐?' 했습니다."

다윗이 피하여 도망한 후, 라마의 사무엘에게 가서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모든 일을 알리고 사무엘과 함께 가서 나욧에 머물렀다.

누군가가 사울에게 보고하였다.

"보십시오, 다윗이 라마의 나욧에 있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다윗을 붙잡으려고 부하들을 보냈는데, 그들이 선지자의 무리가 예언하는 것과 사무엘이 그들의 지도자로 서 있는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영이 사울의 부하들 위에 임하니 그들도 예언을 하였다. 사람들이 이것을 사울에게 보고하니, 그가 다른 부하들을 보냈고, 그들 역시 예언하였으므로, 사울이 다시 세 번째로 부하들을 보냈는데, 그들 역시 예언을 하였다.

그러므로 사울이 라마로 가서 세구에 있는 큰 우물에 이르러 물어 말하였다.

"사무엘과 다윗이 어디에 있느냐?"

사람들이 말하였다.

"보십시오, 라마의 나욧에 있습니다."

사울이 거기서 라마의 나욧으로 갔는데, 그에게도 역시 하나님의 영이 임하자, 그가 라마의 나욧에 이르기까지 계속 예언하며 걸어갔다.

또한 그가 자기 옷을 벗어 버렸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했으며, 그날 온종일 벗은 채로 쓰러져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하였다.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삼상 19장)



다윗과 같이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자가 자신의 사명이 이스라엘의 다음 왕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이와 같이 멍청한 행동들을 하였겠는가? 사울의 창에 자신이 표적이 되고 아내가 될 수도 있었던 사울의 맏딸 메랍과 아내였던 미갈을 빼앗기고 도망자가 될 수 있었을까? 권력의 속성은 냉정하여 이를 나눌 수가 없다. 그래서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한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다윗이 이를 몰랐을까? 그런데 다윗은 자신이 왕이 될 것을 알지 못했기에 우리가 사울을 폐하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사울이 폐해졌다는 것은 사울과 사무엘 사이의 비밀이었다. 그래서 사울을 우리가 세운 기름부음이 있는 왕으로 믿었다. 그것이 패착의 원인이었다. 사울의 정체를 알지 못하고 사울을 신뢰함으로 사울에게 아낌없는 충성을 다하였고 자신에게 부어진 기름부음으로 이스라엘이라는 양 떼를 위협하는 원수들을 쳐부수었다. 그 결과는 자신의 목숨이 스올에 떨어질 위기였다. 만약 사울이 폐해졌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할 정당한 왕이라는 사실을 상상이라도 했다면 지혜로운 다윗이 죽음의 위기에 내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사울에게 우리가 돌이킬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사울에게 깨닫도록 우리의 영을 부었다. 그럼에도 사울은 결국 자신의 왕좌를 지키기 위해 다윗을 죽이는 선택을 했다. 그래서 우리(하나님)는 어찌할 수 없어, 사울이 이방 블레셋에게 죽임 당하는 일을 허락했다.

다음 성경을 보자 다윗은 사울이 자신의 생명을 찾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자신이 다음 왕이 될 것을 알았다면 사울이 찾는 이유를 어찌 알지 못했을까? 당연히 사울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 예상했을 것이다. 사무엘은 자신이 다음 왕에게 기름을 붓는 것만으로도 사울이 죽일 수 있음을 알았다. 그런데 그 기름을 부음 받은 자가 그 기름부음의 정체가 왕의 기름부음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어찌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는 이유를 알지 못했겠는가?



다윗이 라마의 나욧으로부터 도망하여 요나단에게 말하였다.

"내가 무엇을 했으며, 내 죄가 무엇이며, 내가 형의 부친 앞에서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분이 내 생명을 찾고 있습니까?"

요나단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너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내 아버지께서는 큰 일이든지 작은 일이든지 내게 알려 주지 않고는 하지 않으신다. 내 아버지께서 왜 이 일을 내게 숨기시겠느냐?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실 것이다."

다윗이 다시 맹세하며 말하였다.

"내가 형에게 은혜받은 줄을 형의 부친께서 분명히 알고 생각하기를 '요나단이 슬퍼하지 않도록 그가 이 일을 알지 못하게 하겠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로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형의 생명을 두고 맹세하지만 나와 죽음 사이는 한 발짝 차입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내가 너를 위해 하겠다."

다윗이 요나단에게 말했다.

"내일은 초하루이니, 내가 마땅히 왕과 함께 앉아서 식사해야 할 것이나, 형이 나를 보내주면 내가 삼일 저녁까지는 들에 숨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형의 부친께서 나를 찾으시면, 형은 '온 가족을 위한 매년제가 있기 때문에 다윗이 자기 성읍 베들레헴으로 급히 가기를 내게 간절히 청했습니다.'라고 말씀드리십시오. 만일 그분이 '잘했다.'라고 말씀하시면 형의 종이 평안하겠지만, 만일 그분이 심히 노하시면 그분이 나를 해하려고 결심하신 줄 알고, 형은 종에게 호의를 베푸십시오. 이는 형이 종과 함께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내게 허물이 있다면 나를 형의 부친께 데려갈 이유가 없으니, 형이 나를 직접 죽이십시오."

요나단이 말하였다.

"결코 그러한 일이 네게 없을 것이다. 만일 내 아버지께서 너를 해하려고 결심한 것을 내가 정말 안다면 그것을 네게 알리지 않겠느냐?"

다윗이 요나단에게 말하였다.

"혹시 형의 부친께서 형에 엄하게 대답한다면, 누가 내게 알려 주겠습니까?"

요나단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오너라, 우리가 들로 나가자."

그리고 두 사람이 들로 나갔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말했다.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증인이시니 내가 내일이나 모레 이맘때쯤 내 아버지를 살펴서 '다윗 너에 대하여 좋게 생각하시면 그때에 내가 네게 사람을 보내 너에게 알려 주지 않겠느냐? 만일 내 아버지께서 너를 해치려 하시는데, 네가 평안히 가도록 내가 알려주지 않는다면, 여호와께서 요나단을 해하시고 또 더 하시기를 바라며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와 함께하신 것처럼 너와도 함께하시기를 바란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너는 내게 여호와의 인애를 베풀어 내가 죽지 않게 하여라. 여호와께서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릴 때에도 너는 영원히 내 집에서 네 인애를 끊지 마라."

그래서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을 맺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여호와께서 다윗의 원수들을 벌하시기를 원한다."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로 다시 맹세하도록 했는데, 이것은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것만큼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내일은 초하룻날이니 네 자리가 비어 있으면 너를 찾으실 것이다. 네가 사흘 있다가 빨리 내려가서 그 일이 있던 날 네가 숨으려고 했던 그 장소로 가서 에셀 바위 곁에 머물러라. 내가 과녁을 향해 쏘는 것처럼 하여 화살 세 개를 그 곁에 쏘고, 소년을 보내면서 '가서 화살을 찾아라.' 하고 만일 내가 소년에게 말하기를 '보아라, 화살이 네 이쪽에 있으니 가져오너라.' 하면 너는 돌아와라. 여호와의 살아 계심으로 맹세하니 네가 평안할 것이며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내가 그 소년에게 '보아라, 화살이 너보다 멀리 있다.' 하고 말하면, 여호와께서 너를 떠나게 하신 것이니 가거라. 보아라, 나와 네가 말한 일에 대해서는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에 영원토록 계실 것이다."

다윗이 들에 숨었다. 초하룻날이 되자 왕이 음식을 먹으려고 앉았는데,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자기 자리, 곧 벽 쪽의 자리에 앉았고, 요나단은 일어섰으며, 아브넬은 사울 곁에 앉았고, 다윗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사울이 그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겨 그가 정결치 못하구나. 그가 참으로 정결하지 못하구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곧 그 달 둘째 날에도 다윗의 자리가 비어 있었으므로 사울이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 말하였다.

"이새의 아들이 왜 어제와 오늘 식사에 참여하지 않느냐?"

요나단이 사울에게 대답하였다.

"다윗이 베들레헴으로 가기를 제게 간청하여, 말하기를 '부디 나를 보내 주십시오. 고향에서 우리 집안의 제사가 있으므로, 내 형이 내게 오라고 명령했으니, 이제 만일 내가 형의 호의를 입었다면 내가 가서 내 형을 보게 하여 주십시오.' 하였으므로 그가 왕의 식탁에 오지 못했습니다."

사울이 요나단에게 화를 내면서 말하였다.

"이 패역무도한 계집의 자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선택한 것이 네 수치이며 벌거벗은 네 어미의 수치임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겠느냐? 이새의 아들이 땅 위에 사는 동안에는 너와 네 왕국이 든든히 서지 못할 것이니, 이제 사람을 보내 그를 내게로 데려와라. 참으로 그는 죽어야 할 자이다."

요나단이 자기 아버지 사울에게 대답하여 말하였다.

"그가 왜 죽어야 합니까? 그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사울이 창을 던져 요나단을 죽이려 하니, 요나단은 자기 부친이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한 것을 알았다. 요나단이 몹시 화가 나서 그 식탁에서 일어났고, 그는 그 달 초이틀에 음식을 먹지 않았으니, 이는 그의 아버지가 다윗을 모욕하므로 그를 위하여 슬퍼했기 때문이다.

아침이 되어 요나단은 다윗과 정한 시간에 소년을 데리고 들로 나가, 자기 소년에게 말하였다.

"너는 달려가서 내가 쏘는 화살을 찾아라."

그 소년이 달려갈 때에 요나단이 그의 위로 지나가도록 화살을 쏘았다.

그 소년이 요나단이 쏜 화살이 있는 곳까지 갔을 때, 요나단이 그 소년 뒤에서 소리쳐 말하였다.

"화살이 너보다 멀리 있지 않느냐?"

그 소년 뒤에서 외쳤다.

"지체 말고 빨리 달음질하여라."

요나단의 소년이 화살을 주워서 그 주인에게 돌아왔다. 그러나 그 소년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고, 오직 요나단과 다윗만 그 일을 알았다.

요나단이 자신의 무기를 소년에게 주며 그에게 말하였다.

"이것을 가지고 성읍으로 가거라."

그 소년이 떠나자 다윗이 바위 남쪽에서 일어나 땅에 엎드려 세 번 절한 후에 그들이 서로 입 맞추고 울었으나 다윗이 더 심하였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에,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영원토록 함께 계실 것이라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친히 맹세하였다."

그 후 다윗이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읍으로 돌아왔다.



이 사건을 보라. 다윗이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는 까닭을 알고 있는가? 심지어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그 까닭을 알고 있는가?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이 있다. 그렇다면 다윗은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고난을 왜 견뎠을까? 일반적인 인간은 자신에게 이익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다윗은 무슨 생각으로 까닭 모를 고난을 견뎌낸 것일까?

그런데 다윗이 왕이 될 것을 스스로 알지 못했다는 것이 이렇게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할 문제인가? 그 이유가 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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