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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Jun 08. 2023

박완서의 '그리움을 위하여'

박완서의 '그리움을 위하여'에서 배우는 곁에 있을 때의 소중함

'그리움을 위하여'라는 작품은 작가의 자전적인 단편이다. 박완서 작가(1931~2011)가 2000년대에 쓴 작품으로 노년이 된 작가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드러나 있고 화자의 여덟 살 아래 사촌 동생의 사랑 이야기 이기도 하며 화자가 사촌 동생과의 관계를 솔직하게 서술한 이야기다. 작품은  박완서 소설집 '그리움을 위하여의 표제작이며 제1회 황순원 문학상을 수상했다.


공부도 잘 했고 시집을 잘 가 부유한 삶을 살고 있는 '나'는 어렸을 때 한 집에서 자란 사촌 동생을 가정부로 들이게 된다. 사촌 동생은 부지런하고  얼굴도 예뻤는데 열 두 살이 많은 유부남과 연애를 해서 그 남자를 이혼 시키고 결국 결혼에 성공한다.  그러나 남편이 사기를 당해 늦은 나이에 집을 날리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사기로 충격을 받아 쓰러진 남편의 병 수발 까지 하고 있었다. 남편이 죽고 사촌 동생은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 옥탑방에서 혼자 살고 있었는데 옥탑방은 여름에 너무 더워서 사촌 동생은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을 지경이었지만 화자는 사촌 동생의 끊임없는 수다를 핑계로 집에 와서 자라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화자는 십 수년 동안 일주일에 몇번 씩 와서  집안 일을 도맡아 해주던 사촌 여동생에게 물질적으로 충분히 넘치도록 보상해 왔다. 폭염이 심하던 어느 날 동생이 돌연 섬으로 바캉스를 떠난다. 감감무소식이었던 동생이 추석을 앞두고 희색이 만면하여 돌아왔다. 사량도에서 어떤 영감님을 만나 사랑에 빠졌단다. 화자는 친인척을 동원하여 막으려 했지만 실패하고 추석 일거리를 앞에 두고 망연자실 한다. 들뜬 동생은 살림 못하는 언니를 걱정하며 다시 사량도로 떠났다.

겨울이 시작될 무렵 동생이 다시 상경했다. 반갑게 동생을 맞아 들이고 동생과 포도주를 마시며 같이 자자고 붙들었다. 동생은 조잘 조잘 잘도 말한다. 혹시 그 집에서 내가 재산이라도 노리는 줄 오해할 수도 있어서 호적은 포기했고 자신이 그 사람의  와이프 제사상 차려주고 자기 남편 제사상 차리는 거, 그사람이  도와주는 거 당연하고 그렇게 살고 있으며 하루 종일, 밤새워 얘기해도 할 얘기가 또 생긴다고 말이다. '나'는 시 냇물 위로 점점이 떠오르는 복사꽃 같은 동생의 말을 듣고 비로소 사량도 작은 섬의 선주인 그 남자를 그녀의 남편으로 인정하게 된다.


'나는 동생에게 항상 베푸는 입장이라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상전 의식이지 동기 간의 우애가 아니었다. 나는 상전 의식을 포기한 대신 자매 애를 찾았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도 춥지 않은 남해의 섬, 노란 잎이 푸른 잔디 위로 지는 곳, 칠십에도 섹시한 어부가 방금 청정 해역에서 낚아 올린 분홍 빛 도미를 자랑스럽게 들고 요리 잘하는 어여쁜 아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풍경이 있는 섬, 그런 섬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에 그리움이 샘물처럼 고인다.'

- 그리움을 위하여 본문 중에서 -


사촌 동생의 나이는 육십 대였고 화자에겐 살림 걱정 안 할 수 있도록 도와주던 동생이었다. 화자는 그런 사촌 동생이 그립지만 그리움을 간직하기 위해서 동생이 살고 있는 섬에 가지 않고 싶다고 말하며 작품은 끝난다.


필자는 이 작품을 자신의 필요성에 의해 상대와의 관계를 마음대로 정하는 인간의 이기심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본다. 화자는 그 무더운 옥탑방의 찜통 같은 더위에서 자는 것을 알면서도 사촌 동생이 수다를 심하게 떤다고 집에 와서 자라는 마음이 있었으면서도 부르지 않는다. 이 마음은 곧 더위를 피하려는 사촌 동생의 사량도 행과 직결되고 사촌 동생은 그곳에서 연애에 빠진다. 섬으로 아주 가겠다는 사촌 동생을 말리는 것도 그녀가 떠나면 넘쳐 나는 집안일에 대한 걱정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사촌 동생이 떠난 후 떠난 후의 존재감에 대하여 느끼게 되고 그리워하게 된다. 그리고 그 그리움은 사촌 동생이 자신에게 있어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친구든 연인이든 나의 필요에 의해서 만나고 좋아하지만 내가 불편해지면 과감히 돌아서는 감탄고토의 마음을 갖고 있지는 않은가. 세상은 내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나만의 시각으로 오로지 내 편의대로만 상대를 바라보고 대하는 이기심에 빠져 살지는 않았는가.  삶도 사랑도 내가 필요할 때 찾는 것이 그리움이 아니며 늘 가슴에 순수한 이슬처럼 맺혀있는 것이 그리움이라고 작품은 말다. 곁에 있을 때는 소중함을 잊는다. 내가 가진 그리움이 완전히 잃어버린 안타까움이 되지 않도록 소중하게 지켜가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삶은 생각만큼 기회를 많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 전체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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