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시계를 잃어버렸다. 좋은 차 한 대쯤은 타고 다니고 명품 시계 하나 정도는 갖고 있어야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는다는 알량한 생각으로 비상금을 탈탈 털어 나름 그나마 이름 있다는 시계를 큰 맘 먹고 하나 장만했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인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는다. 어디 있겠거니 하다가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어느 날 중요한 모임에 갈 일이 있어 악세사리겸 시계 좀 차볼까해서 찾는데 집안을 아무리 샅샅이 뒤져도 나오지 않는다. 이 정도 찾아서 나오지 않으면 어디에 놔두고 온 것이다. 최고 명품도 아니니 잃어버려도 크게 아깝지 않다라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아마 그 시계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비싼 시계였다면 아마 잠도 못자고 밤새도록 속상 했을터였다.
누구나 인간에게는 좋은 것을 갖고 싶고 풍족한 삶을 영위하고픈 욕구가있다. 나 역시 그 범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범인임은 부인할 수 없다. 어떤 이는 부와 명예를 또 어떤이는 학식과 그에 따른 높은 지위를 삶의 바로미터로 삼을 것인데 이 모든 것들을 헛된 욕심이라고 단정지어 말할 수도 없는 것이 어떤 욕심도 없이 무념무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내가 알기로는 아주 옛날 극소수의덕망높은 선비나 고승같은 도를 닦는 분 이외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의할 점이 있다. 실현불가능한 목표를 잡으면 허상이 되고 잘못된 방법으로 욕구를 실현하려고 하면 탐욕이 되는데 인간다움을 잃어버리는 경우라면 동물보다도 못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세상은 욕구와 욕망을 진열해놓은 백화점이다. 우리는 매일 매일 원하는 상품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삶이라는 긴 여행을 하기 위해 열차를 타고 정착역도 종착역도 없는 것처럼 끊임없이 달리도록 석탄을 쏟아 붓는다. 일상의 열차는 달려야하고 그 끝은 욕구와 욕망을 만족시키고도 남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상상한다. 중간 중간 물도 마시고 쉬기도 하고 땀도 식혀야하는데 그러면 종착역에 도달하는 시간이 늦어진다. 다른 사람이 더 좋은 것을 차지할까 마음이 급해지는 이유다.
죽어라고 달리고 나니 저만치 종착역이 보인다. 그런데 원하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보이지 않고 무덤들이 즐비하다.수많은 묘비명들이 늘어서 서 있고 묘지기가 내게 말을 건다.
"그동안 달려오시라고 수고하셨습니다.움직일 필요가 없는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제 편히 누우실 차례입니다."
이렇게 죽어라 달려왔는데 이제 눈 앞에 영원한 파리다이스가 펼쳐질 줄 았았는데 누우라니 아무리 발버둥쳐도 소용없다.
욕망은 결코 모두 충족될 수 없다. 하나를 얻으면 더 큰 하나가 날 잡아 보라고 손짓한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열차를 탄 나는 빨리 달리면 달릴수록 더 큰 욕망이 기다리고 있다. 문제는 열차를 탔을 때는 그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달리는 열차를 멈춰세우고 시원한 샘물도 마시고 이름없는 풀들과 새 소리도 들으면서 열차를 탄 사람 들과 함께 대화하도 산책하는 여유와 쉼이 있어야 열차에 무리가 가지 않고 승객들도 안전 운행을 할 수 있는데 쉼없이 달리기만 해서는 중간에 고장이 날 수도 있다.
오늘 날, 인간의 중심이라고 볼 수있는 휴머니즘의 가치는 점점 퇴색하고 있다. 사람들은 사랑의 가치를 최우선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가 있다. 이것을 우리는 현실이라고 말한다. 무엇이 우리에게서 사랑의 본질을 앗아갔을까. 물질, 지위, 권력이 그 사람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니 욕망의 달성도가 사랑의 마음을 넘어서는 것이다.
사랑에는 인내, 희생, 양보 등 내가 지불해야할 비용이 많다. 때로는 고통도 감수해야한다. 이러한 까다로운 조건을 수용하고 채워가기보다는 그냥 눈에 보이는 물질로 가치 판단하는 것이 더 화려해 보이기에 결국 삶의 가치를 이루는 인간적인 요소들을 버리고 오로지 욕구와 욕망의 상품만을 바라보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탐욕에 가까운 가치를 최선에 두고 사랑을 논할 수는 없다. 자신의 안위와 안락함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영속성에 물질을 대입하지 말라고 말해봐야 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자신들의 물질과 편안한 생활을 위해 사랑을 가장한 타협임에도 애써 모른 체 한다.
오르면 더 오르고 싶고 가지면 더 가지고 싶은 극히 인간적인 마음 앞에서 나는 얼마나 초연할 수 있을까. 내가 가진 휴머니즘 실천의 신념이 절대로 바뀌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굳이 없어도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명품시계를 가지고 싶었던 것도 욕망을 키우는 작은 씨앗일 수 있겠다. 하지만 ‘욕망이라는 이름의 열차’ 가 일등석으로 모시겠다고 내 앞에 선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 딱부러지게 대답할 자신이 없다. 세계적으로 불황의 늪에 빠진 이 어려운 시대에 사람 들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계속 달린다. 어떤 이는 여행도 해보지 못하고 달리는 열차에서 떨어지는 사람도 있다. 그 때마다 중간 중간에 허름한 묘지가 세워진다.
함께 도시락도 나누어 먹고 창밖의 경치도 즐기며 손잡고 떠나는 여행을 할 수는 없을까. 열차가 조금 비좁고 시끄러워도 서로의 온기와 웃음으로 가득하다면 모두가 행복할텐데, 무리한 탐욕의 여행 대신에 오늘처럼 맑은 하늘과 한들거리는 꽃의 나풀거림을 함께 나누며 여행을 하다가 종착지에 다다른다면 세상에 쌓아두고온 탐욕의 찌꺼기들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옆자리에 있는 그 누군가에게도 재미있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을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