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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Jul 02. 2024

장마

마음 에세이

[에세이] 장마

한결


오늘 하루 회사를 제낄까 말까 심각하게 고민하게 하는 장대 비가 아침부터 쏟아진다. 누가 장마 아니랄까봐 우산으로도 당해낼 재간이 없는, 5분도 안걸리는 버스정류장까지 가는데 허벅지 밑으로는 축축히 젖고 신발 틈으로 물이 스며들었다. 밤새 후덥지근함과 씨름을한 탓인지 피곤한데다가 비까지 찝찝함을 더해주니 짜증이 나는 날이다. 출근 버스에서는  에어컨 바람에 옷이 마를 때까지 추위에 떨어야하고 젖은 신발을 신고 찝찝한 기분으로 또 퇴근을 할 것이다. 해마다 장마철이면 겪는 일임에도 그냥 슬리퍼를 신고 나가거나 우비를 입고 나가면 좀 덜할텐데 알면서도 귀찮아서 겪는 장마철의 연례행사가 나를 귀찮게 한다.


젖은 어깨와 바짓단을 접어올리며 비가 들이쳐 머리 밖에 막지 못하는 우산을 들고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길을 나선다. 평소보다 버스가 느리게 오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내릴 때까지 콩나물시루에서 시달려야한다.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다가 이내 빗물 뚝뚝 떨어지는 우산을 접어 차가운 물방울이 혹시 튈까 조심하면서 버스를 탄다. 겨우 버스를 탄다 해도 꾸리꾸리한 냄새와 섞여야하기에 이런 상황을 딛고 출근을 하면 비 속에 빠져 하루종일 허우적 거린다.


그러나 나름 좋은점도 있다. 비오는 날은 잠깐 동안의 비 그친 하늘이 주는 만족감도 있고 비릿한 비 내음 속에서 감정의 미묘한 민감함의 흐름을 따라 센티멘탈한 감정으로의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한 겨울에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창밖을 바라보면 혹시 나를 생각하는 누군가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을 까하는 하얀 설레임을 갖게 되는 것처럼 장마철에는 언제 해가 반짝하고 뜰지 비 그치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다. 잠시동안 비가 그쳤을 때 동네 한 바퀴 산책을 하고 아이스 커피를 마시는 여유로움도 좋고 주말이라면 커피 숍에 앉아 하루 종일 떨어지는 빗방울과 지면의 마찰을 응시하는것도 나름 분위기가 있어 나쁘지 않다. 하루 종일 음울한 비구름이 만든 회색빛 장막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라도 비추면 장마에 구겨진 세상을 벗어난듯  맑은 민음이 되지만 오늘도 추적 추적 그칠 듯 그치지 않고 비는 내린다, 바닥에 파닥 튀겨 파열음을 내는 비를 한동안 바라보고 있자면 슬픈 연인의 눈물 섞인 이별도 스쳐 지나가고 어둑어둑한 하늘에서 쏟아붓는원인 모를 그리움도 바닥에 고인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물이 고여 웅덩이를 만들고 그 웅덩이에 마음이 젖어 쭈걱쭈걱한 공기빠짐의 소리가 지배하는 장마의 오후, 이 비가 그치면 잡초더미 무성해진 공원의 잔디밭에서 꽃 들이 더 화사한 모습으로 피어날테고 후끈한한 바람이 뺨을 데우는 여름 날에 지겹도록 울어대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무한 반복을 할것이다.


이 번 여름은 내게도 진짜 힘들다. 회사일에 부모님의 병환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 아등 바등  24년의 여름을 보내고 있는데 좋아하지 않는 비까지 오니 마음이 온통 습기 투성이다. 그래도 이 비가 그치면  구름 장막을 헤치고 맑은 날이 찾아오는 것처럼  이 번 여름에만  세번 째 병원에 입원하신 아버지의 병마도 요양병원에서 투병 중이신 어머니의 괴로움도 그치고 나아지셨으면 좋겠다.  원두막 그늘에서  옥수수를 삶아 먹으며 여름을 노래하는 풀벌레의 울음 소리를 듣고 모깃불을 피워놓고 평상에 앉아 수박을 쪼개어 먹던 어린 시절의 고향 마을이 떠오른다. 그 때는 아버지, 어머니도 참 젊으셨는데, 어느 새 내가 젊은 시절의 부모님보다  더 많은 나이가 되었으니 세월이 참 무상하다.


따스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눅진했던 마음이 조금은 녹는듯하다. 오늘은 꽤나 익숙해진 듯 하면서도 늘 진을 빠지게 하는 곤비한 어깨의 버거움을 좀 잊고 천천히 흩어지는 비안개처럼 느리게 하루를 살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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