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었다. 그것도내가 싫어하는 등산이다. 산을 좋아하는 동료들은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신나했지만 '내려올껄 뭐하러 올라가나'라는 사고 방식을 가진 나는 툴툴거리며 마지못해 억지로 따라갔다. 등산로 초입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등산을 시작하려는 순간 술을 좋아하는 주당들 몇몇은 벌써 낮술을 마시기 위해 슬쩍. . 빠져 버리고 산도 술도 별로인 나는 혼자 남아있다가 저녁식사 시간에 식당에시 합류하기로 한다.
숨이 턱턱막히는 열기와 뜨거운 태양을 피해 쉴 곳을 찾던 중 근처.에 근사한 정자가 보인다. 정자에 가까이 이르러보니 이상한 점이 사나 있었는데 정자 기둥에 작은 구멍이 여러 개가 나 있는 것이다. 기둥에 반짝반짝 니스까지 칠을 해놓았는데 이렇게 구멍 뚫린 나무가 있는지 희한했지만 일단 누워서 낮잠을 자기로 했다.한참을 뒤척이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이게 왠 날벼락인가. 정수리 부근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충격을 받고 벌떡 일어났다. 주변을 살펴보니 정자가 무너진 것도 아니고 무엇이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머리를 만져보니 뒷통수에서 피가 나고 엄청 아프고 쓰라리다. 땅벌 몇 마리가 유유히 정자 주위를 날고 있다.
"거기서 왜 자고 있어! 거기 벌집 있는데, 구멍난 곳이 다 벌이 다니는 통로요. 거기 계속있으면 큰일 나요. 빨리 다른 곳으로 가요. 아이고 벌써 쏘이셨구만, 그거 진짜 아픈데, 조만간 119에서 와서 없애주기로 했는데 빨리 불러야겠네"
지나가던 할아버지 한 분이 한마디 하신다.
'아니 그럼 벌 조심이라고 좀 붙여놓던가'
투덜거리며 일어났는데 얼마나 아픈지 쿡쿡 쑤시는 것이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 정신이 멍하다. 통증에 한참 정신을 못차리다 근처 냇가에서 찬물로 머리를 식혔더니 그나마 견딜만하다. 다시 정자로 갔다. 얼마나 억울하던지 벌집을 찾아서 돌이라도 던져야했다. 그러나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찾을수가 없었다. 천정에도 없고 주변에도 안보이고 아마 엄청 두꺼운 기둥 속에 지었을 가능성이 커보였다. 분노에 찬 나는 벌들을가만히 놔두지 않겠다고 씩씩거리며 복수를 하기로 결정했다. 주변을 돌아다니며 길다랗고 뾰족한 돌을 주워 말벌이 다니는 구멍을 막기 시작했다. 구멍은 수십개는 넘는 듯 했으나 온몸에 비오듯 땀을 흘리면서 구멍 하나 하나 안에 있는 벌들이 비집고 나오지 못하도록 빠진 곳이 없는지 수없이 찾아가며 네 개의 기둥에 나있는구멍을 모두 막아버렸다.
'이제 니들은 집에 못들어가고 나오지도 못해'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 억울해서 그자리를 떠날 수 없을 듯 했다. 태양의 뜨거운 기세가 약해질 무렵, 전투에서 패배한 패잔병의 모습이었지만 나름 복수를 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욱신거리는 퉁퉁부은 머리를 만지며 그냥 혼자 사택으로 돌아왔다.
단체행동을 거부한 나에대한 벌이었을까.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가만히 있던 내가 위협적이었던걸까.
살면서 벌에 쏘이는 일이 흔할까. 어느 순간 갑자기 내게 예상치 못한 위기나 황당한 일을 닥쳤을 때 놀라지않고 차분하게 이성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벌의 갑작스런 습격처럼 언제 어디서 생길지 모르는 돌발상황에서 당황하지않고 대처하는 여유가 있어야한다는 것과 정자의 편안함만 생각하고 그곳이 벌집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은 어떤 일이나 상황을 대함에 있어 신중히 접근해야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 거였다. 힘들다고 산에도 오르지 않고 정자에서 낮잠이나 자면서 시간을 때우려고 한 내게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한 댓가로 땅벌이 일침을 가한 것은 세상에는 싫어도 해야할 것이 있고 반대로 내 마음내키 대로안 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 거다. 아닌줄 알면서도 가벼이 보고 그냥 내 맘대로 하겠다는 생각이 나를 망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