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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Jul 20. 2024

멈춤

공감 에세이

[에세이] 멈춤

한결


어린 시절 고향마을에서 우리 집은 동네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최신식의 집이었다. 그것도 그럴것이 1970년대는 새마을 운동이 한창인 때로 겨우 초가집에서 기와집으로 교체하던 시기 였고 그나마 형편이 여의치 않은 사람 들은 슬레이트 지붕을 얹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집은 비록 단층이었지만 양옥이었고 옥상에 올리가면 동네 집 들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 좋은 집이었다.


그런 집을 아버지께서는 더욱 정성을 들여 가꾸셨다. 직접 블럭 틀을 만들어 보도블럭을 제작해 마당에 까셨고 정원수로 밤나무, 배나무, 대추나무를 심어서 가을이 오면 밤과 대추가 풍성히 열려 풍요로운 광경을 연출했고 꽃을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잔디 이외에도 채송화 꽃밭을 만들고 나팔꽃을 심어 난 어린 시절을 나무의 연주와 꽂의 노래를 들으며 자랐다. 그 시절 나는 우리 집과 마당이 살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집의 골격과 블럭 들은 뼈대, 정원의 잔디와  꽃, 나무로 살을 붙이고 벌과 잠자리로 장식한 작은 동산이었고 난 그 곳에서 노래를 부르고 잠자리를 잡으러 뛰어다니는 피터팬이었다.


추운 겨울 눈이 펑펑 내리는 날, 거실에서 커다란 통 유리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면 마당의 펌프 위에도 장독 뚜껑  위로 온 세상을 하얗게 덮고 하염없이 내리는 흰 세상을 바라보다 잠든 검둥이를 바라보며 한없이 편안한 마음이 들었던 시간, 무릎까지 빠지는 눈이 쌓인 골목길에서 눈 사람을 만들어 세우고 눈, 코, 입을 그리며 흐뭇해하던 동심의 계절은 마냥 행복하기만 했는데 이러한 자연과의대화는 초등학교 5학년 서울로 전학을 함과  더불어 끝났다. 그 이후 도시 생활에 적응을 해야했는데 천편인률적인 집들과 똑같은 대문은 진짜 적응이 안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디어지긴 했지만 숨쉬지 않는 시멘트의 거리는 늘 답답함을 동반했고, 목구멍에 무언가 걸린 느낌은 늘 해결되지 않는 숙제였다. 지금도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는 자연의 숨쉬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단지 내에 있는 나무 몇 그루,  돌 몇 개로는 해결될 일이 아니다. 발 밑에 시멘트, 머리 위로 시멘트, 그 중간에 끼어 내가 산다. 늘 답답하고 꽉 조인 일상에서 여유를 찾는다는 것은 태만이며 죄악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그렇게 도시는 사람을 몰고 다니며 채찍질한다. 그리하지 않으면 무언가 뒤떨어지거나 열심히 살지 않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 도시다.


지금은 옛 사진에서나 볼 수 있는 어린 시절 고향의 시간이 그립다.  고향  마을은 만나는 그 무엇이라도 가던 길 멈추고 대화할 수 있는 느림의 시간이 허용되었고,  많은 자연의 부속물을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자유, 내가 자연을 만지면 자연이 내 안으로 들어오고 나는 또 자연의 일부가 되는 상호 동화의 교류가  마음의 결핍을 채워 부자가 되는 곳이었다. 그 자연의 시간에  얼마나 많은 멈춤이 있고 행복이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내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복잡 다변한 현대인의 사회에서 우리는 생존을 위해 밤낮없이 자신을 혹사한다. 삶은 그런 것이라고 자위하면서 모두가 똑같이 산다는 강압하에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틀 안에서 로보트처럼 말이다. 그러다 보면 생존은 욕심으로 바꿔고 조금만 더에 매달리는 생활의 반복이 된다. 그런 도시의 세상은 아프다. 나도 아프고 타인도  아프다. 아픈 걸 알면 그나마 다행인데 아픈 줄 모르기도하고 아픈 것을 외면하고 앞만보고 걷는다. 나도 모르게 아파오는 마음에게 쉴 자리하나 마련해주는 곳, 그것이 자연일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담배 고린내에 찌든 아파트 금연구역이아니라  가벼운 커피 향과 함께 사랑하는 사람과 나란히 볕을 받으며 세상과 가벼운 인사를 주고 받고 잠시라도 함께 걸을 수 있는 그런 자리면 그 어느 곳보다 행복하겠다. 멈춤이란 시간과 동작을 정지시키는 것 뿐만은 아니다. 빨려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소용돌이같은 세상에 매몰되지 않고 잠시나마 쉼의 시간을 갖는 것, 탁한 마음을 자연과 함께 정화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 이 모두가 멈춤이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사는 것, 높은 지위와 명예를 누리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푸르른 산과 들길과 꽃이 있는 곳에서의 멈춤이 최고 행복아닐까. 누가 뭐래도 난  그곳에서의 행복한 멈춤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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