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오늘은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를 외출시켜드리는 날이다. 아침 일찍 출발 전 아파트 앞 휴게터에 앉았다. 주로 퇴근 후 잠시 앉아서 여유를 느끼는 장소인데 오늘은 아침이다. 지나가는 주민도 뜸하고 나무들 사이로 가을 햇살이 은은히 비추는 포근한 날씨다. 나름 조경을 잘해놓아 바쁜 일상에 초록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곳, 나뭇잎 들의 부드러운 살랑임에 스며들어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돌봄에 대한 의지를 다진다.
'오늘은 별 일이 없어야 할텐데.'
일주일에 한 번있는 외출일에 꼭 자잘한 사건들이 생겨 늘 긴장하고 대비해야한다. 초록의 풍경을 보니 한층 마음이 가벼워진다. 내가 예전부터 초록을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초록색 티, 초록색 가방 등 왠지 세련되지 못하고 촌스러운 느낌을 받아 자연의 녹음은 좋아했지만 여름이라는 계절을 선호하거나 전원의 아름다움을 좋아한 것이지 초록을 유심히 들여다보지는 않았다. 어느때부터인가. 아마 본격적인 중년에 들어서부터였을 것이다. 초록색의 다양함이 눈에 들어왔고 쉼과 평안을 주는 초록의 스펙트럼에 흠뻑 빠졌다. 그후엔 생활에 초록을 가까이 하여 여름에 초록색 티를 샀고 가을엔 연초록 긴 팔 티를 샀다.
시커멓고 길다란 그림자처럼 늘어진 아파트에선 그 황량함을 작은 초록들이 대적한다. 화단, 묘목, 작은 나무들, 커다란 소나무, 각각의 초록 들은 높은 빌딩 들의 메마름에 생기를 더하고 인간이 만든 조형물 세상에 인간이 꾸며놓은 초록이라도 자연의 살아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곳 저곳에 자리를 잡고 소중함을 뽐낸다. 눈맞춤을 한다. 볕을 받은 초록들이 빛을 발하며 저마다의 색을 뽐내고 있다. 짙은 초록, 옅은 초록, 청록의 두꺼운 초록, 투명하리만치 보드라운 연두, 초록과 연두가 섞인 알록달록한 초록, 마치 사람의 얼굴처럼 수십가지 표정을 갖는다. 멀리 떨어진 숲이나 산에서 일부러 찾아가서 느끼는 초록도 좋지만 익숙한 곳에서 느끼는 초록, 특히, 맑은 하늘의 푸르름과 어울려 도시를 정화시키는 초록은 더욱 청량하게 느껴지기 마련이어서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에 더 깊은 감사와 소중함을 느낀다.
병원을 들러 부모님 댁에 도착했다. 보행기로 어머니 걷기 운동을 시키면서 어머니께도 초록을 선물한다. 여름 날의 진한 초록향도 좋지만 가을 속에 물감 번지듯 부드럽게 스며드는 녹색도 아름답다. 정형화된 세상의 레고 블록 한조각 같은 부속물로 살아가는 시대, 눈 뜨면 밀려오는 문명의 파도 더미와 부대끼며 끝없이 막혀가는 혈관처럼 찐득찐한 삶 속에서 초록이 주는 기쁨으로 잠시나마 활력과 위안을 얻는다. 어쩌면 초록이 되고 싶은 꿈을 꾸는 건지도 모르겠다. 점점 혼탁해지는 오염된 마음을 초록이 주는 깨끗함, 싱그러움, 편안함, 초록의 일렁임으로 가득 채우고 싶다. 난 누구에게 초록과 같은 존재였던가. 오렌지색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빨강처럼 튀지도 않지만 누구에게나 없어서는 안될 산소 같은 꼭 필요한 존재, 부모님에게 자녀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그 누구에게라도 있는 듯 없는 듯 하지만 없어서는 안될 초록으로 살아가고 싶다. 사방이 온통 초록으로 가득한 가을의 한 가운데 나도 초록이 되어 하루를 보낸다. 초록의 풍경으로 초록의 마음으로 온통 초록으로 나를 색칠하고픈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