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에세이
[에세이] 날씨
한결
하늘이 뿌옇다. 새벽 나절 이슬비가 내리더니 멈추었는데 올해 봄 날씨는 오락가락이다. 볕, 따스한 날을 즐길라치면 어느새 비가 오고 맑았다 흐렸다 하니 변덕이 죽 끓는 듯하다. 회사 앞 정원은 며칠 사이 잡초들의 기가 대나무 처럼 솟았다. 나는 비오는 날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슬그머니 신발로 먹어 들어 오는 빗물도 그렇고 우산을 써도 젖는 축축함이 싫다. 며칠 전에는 비가 오는데다가 바람까지 불어 짜증을 더한 적이 있었는데 내 마음대로 할 수없는 것 중 하나가 날씨이니 받아들여야하지만 그래도 싫다. 싱그러운 초록의 기운도 느낄 수 없고 파란하늘을 배경으로 시시각각 유영하는 구름의 움직임도 없는 그냥 사방이 뿌연, 차라리 여름철 한바탕 내리는 소나기는 날이 개면 맑고 청량함을 주는데 오늘 같은 비는 찜찜함만 더한다. 이것도 기상기이변인지 아직 여름이 오려면 멀었는데 후덥지근함까지 생겨 불쾌지수를 향상시킨다.
하늘이 온통 회색이다. 회사 정문 앞에 들어서니 잠잠했던 하늘이 갑자기 비를 쏟아낸다. 우산을 꺼내어 쓰고 들어가는 사이 잔잔해지더니 잠시 후 또 비가오고 계속 서너 번을 반복한다. 날은 후덥지근하고 비는 찌럭찌럭 오고 전형적인 아열대 기후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기후 이상 증세가 코 앞에 닥친듯한 느낌을 빋는다. 이러다가 회사 정원에 소나무나 감나무 대신 바나나 나무나 파파야 나무를 심어야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은 끊이질 않고 각종 개발에 오염에 핵실험까지 아픈 지구가 얼마나 버틸는지,우리가 평소 올바른 식생활과 운동, 마음 수양,휴식 등으 건강을 유지하는 것처럼 지구도 탄소중립, 에너지 다각화 등을 통해 그만 좀 부려먹고 쉬게 해야할 텐데 참 걱정이다.
빗 속에 출장이다. 도로에 물이 안빠져 차가 지나갈 때마다 물살을 가른다. 차창에 부딪히는 빗방울의 흔적이 브러쉬의 동작에 밀려 지워지는 동안 비도 오는데 이런 날은 집에서 파전이나 부쳐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뜨끈한 파전 한점 찢어 입에 한가득 넣으면 고소한 기름의 향과 뜨끈하고 아삭거리는 전의 식감이 입 안으로 퍼지고 동동주 한 잔 들이키면 딱인데 입 맛을 다시던 바로 그 때 후배직원이 오늘 점심은 뭘로 하겠느냐고 묻는다. 업무 시간이니 동동주를 먹을 수는 없고 얼큰한 칼국수나 한 그릇 하자고 협의를 한다. 보기에도 먹음직스런 빨간 칼국수가 눈 앞에 놓였다. 먼저 국물을 한 숟갈 떠먹어보니 칼칼한 맛이 목구멍을 자극하고 쫄깃한 면발의 감촉을 느낄 사이도 없이 '후루룩' 넘어간다. 오늘같이 비오는 날 제 격인 얼큰 칼국수 한 사발을 배불리 먹고 회사로 갈 시간이다.
식당 앞 조그맣게 무리를 피어 꽃이 피어있다. 처음보는 꽃인데 패랭이꽃을 닮은 것 같기도하고 찾아보니 향기 카네이션이라는 꽃이다.떨어진 가지를 주워 향을 맡아보니 향기가 없는 일반 카네이션과는 달리 장미꽃향이 난다. 빗물을 잔뜩 머금은 것이 꽃잎이 탱탱하니 생기가 돈다. 날은 여전히 흐리고 해가 뜰 생각이 없나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바람이 불지 않아 춥지 않다는 것인데 또 비는 오락가락, 도깨비 장난처럼 변화무쌍하다. 하늘은 꾸물꾸물, 천둥소리나는 하늘은 꼽꿉, 내 마음은 꿀꿀하니 불금은 커녕 힘이 빠지는 날이다. 어쩌겠나. 하늘의 이치를 내가 바꿀 수도 없고 흘러가는대로 따를 수 밖에, 항상 느끼는 거지만 자연 앞에서 인간은 늘 미약하다. 어쩌면 오늘은 내가 원하는 날이 아니라 비를 맞고 더욱 싱싱해져서 향기를 맘껏 뿜어내고 싶은 꽃 들의 날일지도 모르겠다. 회사에 돌아와 자리에 앉아 밖을 내다보는 나, 비는 장마철처럼 억수같이 내리고 난 언제 퇴근 시간이 오나 속절없이 시계만 쳐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