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에세이
[에세이] 졸음
한결
왜 이리 졸음이 쏟아 지는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계절이 바뀌어 여름을 향해 치닫고있는 즈음 봄에나 있음직한 아지랑이가 자꾸만 눈 앞에 아른거린다. 아침부터 하품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자리에 앉으면 졸음이 쏟아지고 쉬고만 싶다. 봄은 왔는지 모르게 지나가고 환절기인가 갱년기인가 왜 이리 피곤한지 만사가 귀찮다. 어쩌면 매일 똑같은 패턴으로 돌아가는 일상의 무미건조함에서 오는 무기력함인지도 모르겠다. 운동이 세월을 따라잡지 못하는 몸상태라고 할까. 이제 나이가 들어감을 여실히 느끼는 때인듯 하다.
회사에서 한참을 졸다 겨우 움직여 일을 하거나 출장을 다녀온 후 집에 돌아오면 만사가 다 귀찮아 또 뒤굴거린다. 운동을 가야지 하면서 머리속에서만 맴돌 뿐 몸을 일으키기가 왜이리 귀찮은지 그래도 억지로 몸을 추스려 운동을 가면 그렇게 퍼질 수가 없다. 내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은연중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만성피로증후군이 있다더니 그건가. 별의별 생각을 다하다가 제법 그럼직한 하나의 원인을 밝혀냈는데 지난 주 몸살을 앓았던 것이 떠오른다. 금, 토, 일 이렇게 삼일간이었는데 처음엔 하체에 근육통 비스무리한 통증이 살짝 오더니 점점 심해지고 나중엔 손목까지 아린 거였다. 특별히 무리한 적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생각 되면서도 약국에서 몸살약을 사 먹은 후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나이 탓인듯 하다. 체력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쇠퇴기로 접어드는 50세부터 64세 정도의 나이를 중년이라고 본다면 나도 중년의 한가운데 있는 것이고 당연히 청년기만큼의 체력이나 면역력이 안되기에 명확한 이유없이 감기가 쉽게 들 수 있는 나이인 것이다. 어느새 이렇게 나이를 먹었는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앞으로의 시간은 지금보다 더 빨리 흐를터 부모님의 경우에 비추어보면 70세 이후에 눈에 띄게 쇠약해지셨으니 나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듯하다.
지금의 중년은 베이비 붐 세대에 태어나 산업화시대를 살았고 디지털 시대를 처음 맞았다. 변화와 격변의 시대를 온몸으로 부대끼며 살았지만 중년의 한가운데에 있는 즈음 , 삼사십대에 사회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던 관계망도 이젠 느슨해지고 서서히 남은 삶에 대한 걱정이 시작되고 있다. 예전에는 나이 60이 되면 환갑잔치, 70이 되면 칠순잔치까지 할 정도로 장수를 인정했지만 지금은 100세 시대이다. 과거에는 60정도에 은퇴해 70대에 삶을 마감했다고 하면 요새는 수명의 연장으로 60에 은퇴하고도 거의 3, 40년을 더 산다. 결국 중년은 새로운 시기를 위한 도약의 시기로 삼아야하는 셈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책임감과 의무감을 이행해야하고 아직 자녀들은 독립하지 못했다. 억지로 추스려 앞으로 나아가지만 새로운 도전을 하기엔 너무 늦은감이 있고 멈추기엔 이르다. 바로 끼인 세대인 것이다. 나또한 그렇다. 아직까지는 직장이 있어 덜하지만 이제 은퇴하고 나면 삼식이 취급받을 날이 머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들로 볼 때 남자의 중년은 위기의 시기로 명명할 수있다. 육체적 쇠퇴, 정신은 아직 청년처럼 짱짱한데 몸은 따라주지 않고 평생을 바쳐 일해온 회사에서의 퇴직, 그것도 중간에 권고사직이나 명퇴가 빈번하고 어찌어찌해서 남아 있다고 해봐야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어쩌면 대다수의 중년은 외로움에 파묻혀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제, 그제부터 앓았던 몸살도 그동안 참아왔던 중년의 몸살일지 모른다. 젊은 시절엔 한 두시간 낮잠으로 개운해질 피로가 중년엔 몸살로 온다. 그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어느새인가 끙끙 앓을 정도로 찾아오는거다.
넋놓고 있을수많은 없다. 인생에 단 한 번밖에 없는 중년의 시기를 놓아버리고 노년을 맞이할 순 없지 않은가. 중년은 조용히 노년을 기다리는 쉼의 시간이 아닌 제2의 인생 출발점이다. 나는 아직 젊고 할 수 있는 일도 많음을 깨닫고 제2의 삶을 멋지게 살아갈 준비를 해야한다. 사회적 역할이 줄어들지라도 어떻게 나만의 삶을 살 것인지 생각하고 계획하며 실천해야하는 시기다. 지금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출발점이 되기도하고 종료지점이 되기도하는 중년, 스스로에게 격려와 용기를 주고 내게 주어진 인생의 후반부는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늘 각인해야한다.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 외출을 위해 집을 나선다. 아들이 아프든 무슨 일이 있든 주말에 외출을 못시켜드리면 난리가 날 것이기에 어째어째 마른 수건에서 물방울을 짜내듯 있는 힘을 다 짜내 점심도 대접하고 산책도 시켜드리고 다시 요양병원으로 모셔다 드리는 길, 또 이렇게 또 하루가 저물어간다. 내가 건강해야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를 외출시켜 숨통도 트이게 해드릴것이고 아버지께서 또 아프시면 입원도 시켜드릴 것이다. 이깟 몸살 쯤이야 아플 때는 정신못차릴정도로 죽겠더니만 이제 몸이 조금 살아나니 주변도 눈에 보이고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도 이만하니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주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