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에세이
[에세이] 먼지
한결
휴일 아침 너무 늦지않은 시간에 깨어난 나는 편의점에가서 커피를 사서 얼음에 부은 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파라솔 의자에 앉았다. 난 가끔 휴일 아침마다 이렇게 앉아 세상이 깨어나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한다. 해가 서서히 떠오르는 기간과 맞물린 시원한 아침공기가 포근함을 선사해 주기에 일찍 출근하는 평일에는 느낄 수 없는 아주 평안한 시간이다. 물론 숲과 나무가 많은 곳에서 즐기면 좋겠으나 지금은 이게 최선이니 이것도 감사할 따름이다.
얼마나 앉아 있었을까. 목구멍이 케케하니 무언가 목에 걸린듯 불편하다. 일기 예보를 보니 미세 먼지가 많다는 걸로 봐서 아마도 그탓인듯 싶다. 한 줄기 강한 햇빛이 응달을 피해 나를 향해 쏜다. 원통형의 굵은 광선 안에는 먼지로 가득 차 있다. 눈에 보이지 않았던 세계가 펼쳐지고 황급히 응달로 자리를 피했다. 그곳이라고 다를 까마는 그래도 먼지가 안보이니 그나마 깨끗한 곳에 있는 듯하다.
편의점 아주머니가 나와 바닥에 물을 뿌린다. 호스에서 시원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고 바닥에 쌓인 시커먼 먼지들이 배수구로 빨려들어간다. 일순간에 주변이 한층 깨끗해지고 시원해진다. 일종의 정화작용이다. 그러고 보면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세상은 먼지로 가득차 있을 수도 있겠다. 수많은 먼지로 뒤덮힌 세상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빛의 프리즘에 비친 떠다니는 먼지가 이렇게 많은데 그게 전부 눈에 보였더라면 마스크를 쓰고도 밖에 나가기가 꺼려졌을 것이다.
내 삶은 어떠했는가. 수많은 우여곡절 속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는 것은 운이 좋아서 그랬을 수도 있겠고 먼지가득한 세상에서 때때로 곁에서 물을 뿌려준 사람 들이 있었을 수도 있으며 눈에 보이지 않기에 그냥 생각없이 헤쳐나왔을 수도 있었겠다. 한 점같은 작은 존재로 이 커다란 우주 안에서 살아있고 살아간다는 자체가 얼마나 위대하고 감사한 일인가. 먼지 한 웅큼도 안되는 미미함을 모르고 세상에 우뚝 서겠다는 용기와 꿈으로 포장한 젊은 시절을 보내고 중년의 한가운데 삶과 세상을 조망하는 지금도 내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내 모습은 어쩔 수 없는 범부이다. 먼지로 가득한 세상에서 좀더 잘 살아
보겠다고 좀더 깨끗한 공기를 마셔보겠다고 먼지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기위해 난 얼마나 많은 먼지를 스스로 일으켰던가. 빛에 비추어진 보이는 먼지를 피해 자리를 옮겼지만 단지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그곳에도 먼지는 가득했다.
그렇다면 타인에게 내가 먼지는 아니었음을 장담할 수 없다. 수많은 날 들 가운데 내게 상처받거나 날 싫어했던 사람 들도 있었을 것이다. 가장 위안이 되는 것도 인간이고 가장 악한 존재도 인간이다. 인간다움을 삶의 중심으로 삼고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허울 좋은 빛이었을지도 모른다. 먼지의 존재를 더욱 드러내는 빛보다 먼지를 가라 앉히는 물이 되었어야하는데 그리 하도록 노력한다고는 했지만 먼지를 피해 그늘을 찾았을 수도 있다. 남은 삶은 작은 면적이나마 정화시킬 수 있는 공기청정기의 역할을 하고 싶다. 비록 세상의 모든 먼지를 없앨 수는 없어도 내 가까이라도 깨끗해진 것을 보고 공기청정기가 늘어나지 않을까.
푸른 잔디밭, 예쁘고 화사하게 핀 꽃 들, 저 높이 솟아오른 소나무의 향기가 도시의 삭막함을 달래주는 희망이다. 뜨거운 시멘트 위로 솟아오르는 열기에 허덕거리는 일상이라도 한바탕 소나기가 열기를 싹 식혀주듯 우리들의 먼지 가득한 세상도 아주 작은 착한 존재들이 모여 정화시키듯 내 마음 한 조각 맑은 세상을 위해 푸른 한 점이 되고 싶다.